그냥 일기

in #kr-pen6 years ago


ⓒkim the writer





  접시를 닦아야겠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사람들과 많은 말을 섞지 않아도 되는, 많은 사람과 마주치고 그래서 감정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접시닦이가 딱일 것이라고. 그때의 나는 그럴 것이다. 늦은 오후부터 밤늦게까지 묵묵히 접시만 닦다 퇴근해 좁은 방에 홀로 몸을 누이고 날이 밝기를 기다리는 삶. 이런 상황이라면 당연히 한국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곳은 캐나다가 될 터였다. 마침 나를 접시닦이 중 최고의 대접을 해 주겠다는 후배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실제로 나는 설거지를 매우 잘한다.

  그렇게 접시를 닦아야만 하는 인생을 생각한 적이 있었다. 모든 글쓰기를 포기하고 나락으로 떨어진 나를 상정한 것이다. 그 삶은 예상과는 다르게, 그리고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왔다. 내게 최고 대우를 해 주겠다 약속한 후배의 일도 예정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한국에서 최초로 제안 받은 일자리는 쓰레기차 운전이 되었다.

  처음에는 도로를 청소하는 청소차 운전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쓰레기차라니. 고민이 깊어졌다. 우선 대형차 면허가 없다. 면허를 따는데 시간과 비용이 든다. 비용은 투자라 생각하면 아쉬울 게 없지만 시간이 문제다. 하루아침에 딸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또 하나의 문제는 운전대를 놓은 지 벌써 몇 년이라는 것. 운전대만 잡으면 분노 조절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나 억 소리 나는 외제차로 도로를 사유하는 졸부들도 그간 늘면 늘었지 줄지는 않았을 텐데, 결코 쉽지 않은 운전이 될 것이다. 여기에 청소차가 쓰레기차로 바뀌면서 가뜩이나 비좁은 골목길을 점령한 차들 사이로 대형차를 몰아야 하는 부담과 새벽에 일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더해져 망설임은 배가 된다.

  아, 이런 고민을 하는 걸 보니 나는 아직 멀었구나. 아직도 먹고살 만하구나.

  지난번 1차 귀국 때 길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가 스타트업을 준비한다고 해서 합류하기로 했었다. 6월 투자 유치 예정이었는데 7월 말로 미뤄졌다. 투자 유치는 언제나 불투명한 과업이다. 그래서 플랜B에 관해 얘기했다. 투자 유치에 실패하면 각자 본업으로. 그게 결론이었다.

  어쨌거나 한 달이 붕 뜬다. 그사이의 생계가 문제다. 그냥 생계라면 어찌어찌하겠는데 새롭게 일구는 삶이다. 기초부터 다시. 언제나 돈이 든다. 휴지부터 휴지통 하나까지 전부 추가 지출 비용이다. 거기에 손을 벌리기엔 민망한 나이까지 되었으니, 젊음을 방패 삼아 호기를 부리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이럴 줄 알았으면 코인질이나 열심히 할 걸. 스팀잇 한다고 손을 놓은 지 반년이 넘었더니 감을 잃었다. 하긴 단타는커녕 굴릴 코인도 남은 게 없다.

  다음 주에 일식집 셰프로 있는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한국이라고? 아예 귀국한겨? 일은? -백수야. -너 잘나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잠깐 반짝하다 말았지. -기회가 있을 때 잘 잡았어야지. 어쩌냐….

  간절했던 미래는 멀어지고 외면했던 예상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역시 접시를 닦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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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마음인지는 알 것 같습니다.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해본 경험이 있는데 거의 정해진 출퇴근 시간에 수십년 전에 비해 오르지 않은 인건비지만 그래도 다른 아르바이트에 비해 높은 인건비에 몇달 다닌 적이 있는데 나름 만족하면서 살았습니다.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언제든 갈 준비는 되어 있답니다. ^^;

저도 한동안 호주에서 접시를 닦았었는데.. 썩 나쁘지만은 않더라구요..하핳...

역시 제 선택은 틀리지 않았군요. 히힛.

참 요즘 세상 빡시네요.
정말 외면했으면 하는 것이 현실이고, 간절한 것은 꿈이었나봐요.

우리나라는 접시 닦으면 얼마나 주려나요?

담 주에 친구 만나면 물어보려구요...

대박사건!!

저도 알려주세요...

주말 알바를 도전할까? 합니다. ^&^

저는 "봉투 붙이는 일 하고 싶다"고 종종 말하곤 했어요. 머리는 비우고 정량적으로 일이 채워지는 그런...

어떤 마음이신지 조금은 알 것 같긴 해요.

그렇죠. 아무 생각 없어도 되는 일... 그러면서 돈도 벌고. 일종의 힐링 아닐까 싶네요.

이 글을 읽으니, 공무원이 되어 오전 아홉시에 출근하여 오후 다섯시에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발 씻고 침대에 드러누워 새벽 두시까지 책을 읽는 것이 어린 시절의 꿈이었다는 장정일의 글이 떠오르네요. 실은 제가 그러고 싶습니다.

공무원을 꿈꾼 적은 없는데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가진 공무원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는 좋아합니다.

공무원을 꿈꾼 적은 없고 될 마음도 능력도 없지만, 김작가님처럼 저도 규칙성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하는 듯싶네요.

창작자에게 있어 간헐적인 육체노동은 또다른 영감의 장이 아닐까요?
지금의 상념들은 지지선 다지는 과정입니다.
움직이는 이는 때가 되면 반드시 올라갑니다.
좋은 시간으로 작용할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요.

저는 평생 쓸거리가 이미 있어서 영감이 더 필요하진 않습니다. 히힛. 어릴 때부터 육체 노동을 주기적으로 해 오기도 했구요. 인간인 이상 희망 고문에 정신적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는데 사실 한계를 돌파한 지 오래입니다.

우리가 무슨 기계도 아니고 말이죠..정신적으로 버티는 것의 한계는 저도 많이 공감하는 부분이네요.저는 그냥 이런 것들을 받아들이든,해답을 찾든,뭐든 하는 과정에 삶의 의미를 두기로 했습니다.뭐 달리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요.작가님을 응원합니다.

김작가님의 망설임이 이해되려고(?) 해요
완벽히 알 수는 없지만요
그냥 갑자기 중학생 때 우체국에서 봉사활동하며 소인 도장 꽝꽝! 찍던 게 생각나네요
아무 생각없이 두드리면 꽝! 울리는 소리에 스트레스가 확 풀렸었는데...히힛!

재밌을 거 같아요! 뭔가 중요한 의사 결정자가 된 것 같은 느낌도 들 거 같고...

한국에서 자리잡아야 하는 큰 과업이 남았군요. 부디 큰 산을 잘 넘으시길 바랍니다. 만족하실만한 일 찾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자리 잡기 전에 사람 먼저 잡게 생겼습니다 ㅋㅋ

때론 단순노동이 편안함과 행복을 주더라구요~
아무 생각없이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구요^^ 종종 접시를 닦는 건 힐링일지도 모르지요^^

설거지만큼은 일부러 고집하던 어느 작가의 얘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결혼하시고 애기가있는 부양가족이 있는 가장이시라면 삶의 무게에 대한 짖눌림이 잔인하죠. 그렇지만 가장 힘들때가 修道의 최적기라죠.

시바, 말은 쉽지

하지만 이런들 저런들 어쩌겠어요. 현재의 삶에 충실할 뿐이죠.

ps.연예인같이 고급지고 인텔리한 김자카님께서 곁에 와있는 느낌입니다. 저도 접시닦기라면 神功수준입니다.

제 한 몸 건사하는 것도 힘든 세상. 그래도 접시닦이로 대동단결하니 좋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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