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essay] 사람을 세우던 한 사람을 추억함
누군가를 추억하기 좋은 12월 밤이다. 내 삶에 진한 흔적을 주었던 한 사람을 추억한다.
1990년대 후반 초여름의 어느 날 정오 무렵, 난 R형의 집 주방에서 그가 끓여준 라면을 먹고 있었다. 우린 라면을 먹고 나서도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최근에 읽었던 책에 대해서, 그가 깨달았던 점에 대해 이야기 하는 중이었다. 그때 들었던 이야기, 그리고 그 말을 하던 그의 표정은,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의 가슴에 깊이 박혀있다.
“십자가 위에서 살이 찢기고 피를 흘리며 죽어갔지만, 결국 예수 그리스도는 승리했지. 악의 세력이 죽음이라는 최후의 필살기를 썼지만, 부활하신 예수 앞에선 아무 것도 아니었지.”
그는 나보다 4살 위였던 교회 형이었다. 그의 최종 학력은 고졸이었고 내가 막 대학생이 되었던 그때에도 학교나 직장을 다니지 않는 이십대 중반의 백수 청년이었다. 십대 학창 시절 그의 간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고, 그는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 때문에 대학 입시를 포기했다. 성인이 된 후에도 몇 년 간 그는 몸을 돌보면서 그저 집과 교회를 오가며 책 읽기와 교회 봉사로 소일했다. 유독 재수생이 많았던 우리 동기들은 툭하면 평일에도 교회에서 만나 탁구를 치거나 수다를 떨며 놀았는데, 갈 때마다 형을 볼 수 있었다.
친구들이 대학엘 가고, 사회적인 지위를 획득해가는 걸 보면서 남모를 패배감에 젖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살아있음에 늘 감사했다. 그 동력으로, 그는 그의 생명을 연장시켜준 신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자 했고, 많은 청년 후배들을 가르치는 일에 열심을 냈다. 그의 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청년부에선 명석하고 지적이며 소그룹 리더들에게 성경 말씀을 가르치는 ‘리더의 리더’였다.
그는 일상의 많은 부분을 책 읽기로 채웠다. 사회학과 신앙 서적은 그가 즐겨 읽는 분야였다. “사회학을 공부하고 싶어.” 그가 자주 하던 말이었다. 한 이년 쯤 후에 그는 청년부 안에서 사회학과 관련된 책읽기 모임을 만들자고 제안했고 나도 4명의 멤버 중 하나로 함께 했다. 그가 처음 선택한 책은 저명한 좌파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혁명의 시대>였다. 꽤 두꺼운 그 책을 끝내진 못했지만 그 모임 자체가 내겐 즐거운 경험이었다.
매년 그는,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올라온 신입생을 위해 독서 모임을 열었다. 덕분에 많은 신입생들은 공동체에 무리 없이 적응했고, 지적 열매의 달콤함을 느끼게 되었다. 후에 내가, 또 내 후배가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는 후배들에게 지적인 부분만 전수하고 가르친 것이 아니었다. 후배들을 세우려는 그의 태도,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려는 열정은 후배들에게 자연스레 전이되었다. 그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리더는 자신이 돋보이는 사람이 아니고, 사람을 세우는 자리다.”
나 역시 그가 세워준 사람 중 하나였다. 어설픈 나를 그 누구보다도 격려해주고 묵묵히 지켜봐주었다.
그가 좋았다. 그가 완벽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미숙한 면까지 투명하게 보이는 인간이었다. 거리가 먼 어른의 느낌보다는, 나보다 조금 더 성숙한 친구 같았다. 두어 번 나는 온라인상에서 그의 의견에 반박하며 신경을 긁어서 관계가 냉랭해지기도 했다. 그는 자존심이 강한 사내였고 난 정상적이지 않은 가정환경 탓에 가끔 삐뚤어진 면이 튀어 나오는 사내였다. 그래도 내가 미안함을 표시하면 그는 매번 너그럽게 포용해주었고, 우리들의 관계는 제 자리로 다시 돌아오곤 했다.
청년부엔 주보를 발간하는 편집팀이 있었다. 매주 8페이지 이상의 주보를 만들어냈다. 주보엔 청년부 구성원들의 글과 인터뷰, 칼럼 등을 실었다. 서너 명의 편집부원은 매주 모여서 그 일을 했다. 형은 읽고 쓰는 일을 즐겼기에, 내가 청년부로 올라오기 전부터 편집팀으로 활동했다. 시간이 흘러 내가 편집팀장을 맡았을 때 그는 고문이었다. 내가 군복무를 위해 편집팀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그가 다시 편집팀장을 맡게 되었다. 어느 날,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너 어떻게 자매들과 별 무리 없이 일했니?”
그는 나이 차이가 꽤 나는 여자 후배들과 일하는 것이 쉽지 않았는지, 내게 처음으로 하소연을 했다. 삼형제의 맏이인 그에게 여자 후배들과 손발을 맞춘다는 것은 어려운 과업이었던 모양이다. 그 후에 그는 어느 누구보다 여자 후배들과 마음을 잘 맞추었고, 훗날 세 딸의 훌륭한 아버지가 되었다. 우린 우리의 약한 면이 어떻게 단단해지는지를 함께 보면서 성장했다.
이십대 후반이 되어서야 그는 미뤄 두었던 공부를 시작했고, 신학교에 입학했다. 대학엘 가서 그는 하고 싶었던 공부를 마음껏 했다. 그는 책을 읽기 위해서, 공부를 위해서 태어난 사람 같았다. 신학교를 졸업할 즈음, 청년부에서 만난 멋진 누나와 결혼을 하였고, 함께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에서 그는 딸 셋을 낳았고, 전도유망한 목사이자 신학자가 되었다. 미국에서도 그는 공부에 대한 갈증을 치열하게 채워나갔다. 어느 날, 그가 귀국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예전 십대 시절에 그를 멈춰 서게 만들었던 병세가 발병했다는 소식과 함께 말이다.
한국에 와서 치료하는 중에도 그는 끊임없이 읽고 썼으며, 생각하는 기계처럼 여러 가지 문제에 신학적·사회학적 견해를 내놓았다. 난 SNS를 통해 그와 교류하며 기쁨을 느꼈다. 몇 년 전, 그는 그토록 사랑하던 신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그로부터 얻은 것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슬픔에 잠겼다. 장례식장에서 나는 환하게 웃고 있는 그의 영정 사진을 보며 울었다.
그는 양을 먹이는 목자였고, 연약한 사람을 굳게 세우는 리더였다. 그는 형이면서, 친구이기도 했고, 내 이십대 초반의 스승이었다. 내 사고의 많은 부분을 그에게 빚졌다. 그는 사랑 없는 종교의 허울을 지양했고, 공동체에서 늘 존재감 없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서 인사와 미소를 건넸다.
나이가 들어서도 갈팡질팡하는 내 모습을 한탄하다가, 지금의 내 나이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도 굳게 서서 다른 이들을 섬기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가 살아있는 이 세계의 모습은 어떠했을까를 잠시 생각해본다. 그가 끓여준 라면을 먹으며 그에게 들었던 얘기처럼, 그는 죽음을 맞이했지만 승리한 삶을 살았다. 십자가상의 예수 그리스도처럼.
모든 사람들은 미숙한 시절, 성숙한 누군가의 헌신과 선한 영향력 속에서 양분을 제공 받는다. 받은 만큼 주지 못해 늘 송구스럽다.
이런 선배겸 친구 같은 분은 생애 한분이라도있다는게 얼마나 행복이며 행운인지 님은 아셔야 할겄입니다 부럽군요.먼저떠난 선배분도 당신을 잊지안을겄입니다 .두분의 영원한 우정을위하여 메리 크리스마스...
행운 맞습니다. 삶의 항로에서 좋은 이를 만나는 것만큼 멋진 일은 없지요^^
영혼이 통해 서로 반짝이게 해주는 친구이자 선배셨군요.
잘 살기가 어떤 것인지 그 분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되네요.
네 영혼을 서로 닦아주었던 선배 맞습니다.
가끔씩 그립고 생각나네요.
잘읽고갑니다. 읽다보니 제 중학교때 생각이나네요
좋은 선배가 있으셨나보네요^^
이런 친구, 형, 조언자, 또는 기억/추억할 만한 분이 있다는 것에 부럽네요.
라는 말도 잘 세기고 갑니다.
돌아보면 삶에서 참 소중한 자산이었어요. 많이 배웠었지요^^
많은 이들이 자기를 그리워하고 사랑해 주니 그분은 천국에서 참 행복하실 것 같습니다.~
네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은 잘 잊혀지지 않더라구요. ^^
이글 읽으며 저도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분이 일찍 가셔서 참 안타깝지만 또 기억하는 이들의 마음에 살아있을거란 생각도 드네요.
네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살아 있습니다. 형의 sns엔 아직도 그를 잊지 못하는 이들이 인삿말을 남기곤 하지요. 감사합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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쌩유!^^
멋진 분이네요 아마 저 세상에서도 멋지게 살고 계실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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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럴 거라 믿고 있어요^^
간만에 올라온 글이라 반가왔는데 가슴 아픈 글이네요. T^T 그래도 저는 천국을 믿기에 고통없는 곳에서 이제 편히 쉬시리라 믿습니다. 다만 남겨진 가족들이 힘들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네 시간이 좀 지나서 이제는 아픔보다 아쉬움과 그리움이 좀 더 진하네요. 분명 고통 없는 곳에서 계실 거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연말이라 바쁘다는 핑계로 간만에 올렸네요. ^^
좋은 분을 만나셨었군요. 쏠메님보다 4살 위면 그리 많은 나이도 아닌데.. 딸 셋이 있으셨다기에 맘에 걸리네요. ㅠ.ㅠ
네 sns를 통해 얼핏 보니 그 딸들이 벌써 훌쩍 컸더라구요. 아버지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씩씩하게 자랄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