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고 조용하게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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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렷한 글감은 없지만, 사진을 고르고 글쓰기 창을 열었다. 스팀잇에 이렇게나 길게 글을 안 쓴 건 오랜만인데, 공백이 하루하루 쌓일수록 부담이 늘어난다. 그 사이 몇 번 뭔가를 적어보기도 했는데, 몇 줄 쓰다가 그대로 지워버리기 일쑤였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말을 꺼내기가 더 힘들어질 것 같아 억지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여행을 다녀와서는 오히려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해야 할 일도 없었고, 그래서 맛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돌아와 늘어지게 낮잠을 잔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글쓰기가 부담스러웠던 것은 타인을 고려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인 듯하다. 지난 며칠간은 오롯이 혼자의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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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버스 노선을 찾았다. 꽤나 먼 길을 돌아가는 루트인데, 그 루트를 거쳐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한 시간 반 정도가 지나있다. 일하는 날보다 쉬는 날이 더 많은 나는, 아무 때고 마음이 동할 때마다 그 버스를 탔다.

열한 시부터 세 시 사이에 버스를 타면 내 옆자리에 아무도 앉지 않는다. 아침 여섯 시나, 여섯 시 반에 버스를 타면 많지도, 적지도 않은 사람이 있다. 그리고 일곱 시 반쯤이 되면 사람이 부쩍 늘어난다. 아침 여덟 시나 저녁 다섯 시~여섯 시에 버스를 타면 만원버스다.

사람이 없을 때가 가장 좋긴 하지만, 사람 구경을 하는 재미도 있다. 버스 안의 사람은 직장인이 대부분인데, 그 사이에서 나만 다른 복장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버스를 탈 사람들을 보면, 어쩌면 나는 저런 일상을 견디지 못해 예술가라는 칭호 뒤에 숨어 사는 유약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버스에서 나는 대개 책을 읽는다. 한참 집중해 읽다가, 창밖을 보면서 생각을 정리한다. 그러다 다시 책을 읽고, 외로워질 때쯤 집에 도착하는 그런 식이다.

요즘은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를 읽고 있다. 이 책을 처음 읽을 땐 조지 오웰이 동물농장, 1984을 쓴 작가가 맞나? 하는 의문이 들곤 했다. 인간 조지 오웰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었고, 궁금해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책이 참 좋다. 다 읽는 게 아쉬워 일부러 아껴 읽고 있다.

그제는 @seoinseock님의 을 보고 바로 책을 주문했다. 지금 책상 위에는 알프레트 브렌델의 피아노를 듣는 시간이 놓여있다. 간만에 종이책 읽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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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앞두고 있다. 미루고 미루다, 이제는 며칠 내로 집주인에게 계속 살지, 방을 뺄지 말해줘야 하는 때가 와버렸다. 무조건 이사를 하겠다고 했는데, 막상 부동산에서 다른 집을 몇 개 보니 지금 사는 이 곳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이사를 가려던 여러 이유 중에는 방이 좁은 것도 그 하나였는데, 여러 집을 보다 보니, 방이 좁은 건지 내 짐이 많은 건지 알 수 없어졌다.

이사를 하건, 안 하건 죄다 버려버릴 심산으로 마대 자루 같은 쓰레기봉투를 몇 장 사 왔다. 제일 먼저 버릴 것은 사용하지 않는 오래된 조미료들이다. 그리고 일 년에 한두 번 사용하는 잡동사니들, 또 가끔 입는 옷, 몇 년째 쌓여있는 종이 악보, 그 외 일일이 열거하지 못할 마음이 담긴 물건들도 모두 버리기로 했다.

내 작은 방엔 너무 많은 필요 이상의 것들이 있고, 그래서 덩달아 내 삶도 소란스러워진다.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이제 나는 조용히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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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이 마구 마구 되는 글입니다.
글을 안쓰면 더 쓰기 어려워지는것도 공감되고
조용히 살고 싶은 마음도 공감되고 그러네요.
굿럭!

Yes의 이노래가 딱입니다

Lyrics가 있는걸로 올려놓습니다. 나루야앙!

덕분에 제가 가사 제대로 음미했슴다.... ㅎㅎ

적어둬야겠습니다.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저는 "기능적인 측면에서" 세계가 군더더기 없이 돌아가는 것을 원하다보니 오히려 (물리적인) 짐이 늘곤 합니다. 언제라도 활용할 수 있는 물건들이 가급적 지근거리에 있기를 바라다보니 그렇습니다.

저 자신은, 물건에는 유효기간과 수명이 있다는 사실을 잊곤 합니다. 놓여져 있는 것과 유효하다는 것이 사실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안쓰면 안쓸수록 부담이 되긴 되더라구요. 뭔가 쉰만큼 대단할걸? 써야만 할거같고.... 공감되네요.

출근길에 읽으니 몰입도가 높아집니다. 조용한 삶 응원할게요! 팔로우 하고 갑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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