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재적소
아이들 픽업하고 수영레슨을 기다리고 있는 중에 나의 베프에게서 전화가 왔다. 키우던 강아지를 오늘 안락사 시켜야 하는데, 둘째를 우리집에 맡기고, 내가 같이 해주면 고맙겠다고... 평소에 우리 둘째를 맡기기만 하다가 나도 이 친구를 도울 수 있을거라는 생각에 아이를 수영레슨에 같이 넣어놓고 그 친구의 집으로 갔다.
이미 19살이 된 강아지 Chibi... 할머니가 되고 또 온 몸에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암세포가 퍼져 듣지도 보지도 못하고 연명하는 중에, 이제는 용변도 못보고 시름시름 하루종일 앓기만 하는 아이라 안락사를 결정하고, Chibi가 집에서 마지막을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마지막을 보낼 수 있도록 수의사를 집으로 불러 마지막 기도를 하고 보내주는 의식이었다.
마지막 순간에 내 친구가 직접 만든 화관을 씌웠더니, 거의 48시간 넘게 눈도 못뜨고 무의식 상태로 있던 아이가 갑자기 눈을 뜨고 일어나 저 모습으로 가족들을 향해 꼬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그 순간부터 내친구는 오열하기 시작했다. 아직 때가 아닌것 같으니 며칠만 더 두고보자고... 보고 있던 친구의 남편이 친구를 안으며 말리고, 수의사도 마지막 순간에 가족들에게 인사하는 모양이라고... 그자리에 같이 있던 첫째 아이도 오열하고... 나도 울었다...
미국에서 남편이 처음 기르기 시작했고, 결혼한 후 필리핀에 데리고 와서 14년을 함께한 아이라, 가족들에게는 그 아이를 쉽게 보내는 일이 너무나도 힘이 들었다.
살면서 남편과 아이들을 보면서도, 내가 힘들고 지칠때마다 함께 하던 아이, 내 모든 원망과 기쁨과 슬픔을 토로해 왔던 아이라고 했다. 암이 온 몸에 퍼지고 나이가 들대로 들어도 보내는게 힘들어, 병이 발발한 후 거의 3년을 데리고 있던 아이였다.
사람의 욕심으로 그 아이를 지켜보기만 하기에는, 그 아이의 심신이 지칠대로 지치고, 고통 속에 있어 이제는 보내기로 함든 결정을 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가족을 향해 꼬리을 흔드는 아이를 보며 내 친구는 거의 이성을 잃었다.
친구의 오열과, 참관한 사람들의 비통함 속에 약 5분의 시간이 영원처럼 흐른 후, Chibi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마지막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달라는 친구의 부탁에, 평소 장례식 사진이나 힘든 순간의 기억을 굳이 sns에 올리는 사람들을 탐탁치 않아하던 나 조차도 그 아이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지 않을 수 없었다.
늦게 둘째를 낳고, 큰아이와의 생활패턴이 달라, 항상 친구집에 친구네 둘째와 시간을 보내게 했었다. 늘 둘이서 놀았고, Chibi도 함께 놀았다. 우리 둘째에게도 이 아이는 베스트 프렌드였다. 함께 뛰고 뒹굴고 뒤엉키며 7년을 부대끼며 살았던 아이...
한참을 꼼짝없이 누워있는 아이에게 수의사는 마지막 주사를 주입했다. 그리고 Chibi는 천국으로 갔다.
아... 그 순간의 슬픔을 어떻게 이야기 할까. 나는 애완동물을 한 번도 기른적이 없지만, 이 친구와의 인연만큼 오랜 인연이 있었던 탓에, 이 아이의 존재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아이를 보내고, 마닐라에서 조금 떨어진 Tagaytay의 한 화장장에서 Chibi를 화장한 후,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너무 눈이 부어 집으로 가지 못하고, 집 밑 스타벅스에서 멍하니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평소 알고 지내던 한 엄마가 얼굴이 왜 그러냐고 말을 걸어왔다. 오늘 이러 이러한 일이 있었노라고... 그래서 방금 돌아오는 길이라며 사진을 보여주며 오늘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그랬더니 그녀가 하는 말...
와~ 돈지랄 대박이네...
슬픔이 안개처럼 내려앉은 자리에 느닷없이 똥물이 튀었다.........
친구분들은 가족을 떠나보내느라 너무 힘드셨겠네요ㅠㅠ 차마 어떤 위로의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아파서 숨도 제대로 못쉬고 읽고 있었는데.. 마지막 그분의 멘트에 진짜 똥물이 튀었네요. ㅠㅠㅠ 에잇!
ㅜㅜ 제 이야기였다면 대놓고 못그랬을거에요. 모르는 사람이라고... 함부로 말한듯요
치비야...고마워 사랑해 잘 가♡
마지막 그 엄마 와...
인성 진짜...
북키퍼님 마음 잘 추스르시고
친구 분도 아이도 잘 챙겨주세요..ㅠ
내가 사진을 그런것만 보여줘 그런게 아닌가 싶어요 악의를 가진거 같지는 않아요. 순간 너무 황당해서 글을 썼는데 그엄마한테 약간 미안해짐
참 즉각적으로 말이 그렇게 나올 수 있을까요. 저는 안락사도 아니고 병사한 아이를 장례식 치뤘는데 최소한 저런 사람은 없었다는 게 다행...
내 강아지여서 내가 감정을 실어서 이야기 했다면 차마 그러지 못했을거에요. 남의 일, 거기다 외국사람 이야기... 물론 기저에 필리핀 사람, 못사는 아이들을 굉장히 깔보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긴 한데, 아마 그 부류에 속하지 않는 인간이라 그런 식으로 까내리려는... 그랬을거에요. 인생사 선 악의 기준이 좀 다른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괜히 주저리주저리 이야기 해줬다싶어요ㅜ
이렇게 옥석을 가리게 해주는군요.
그분은 말도 마음도 쓸 줄을 모르네요.
다른 이의 슬픔을 통해서도 흠을 찾아내는 능력에 감탄...
머리랑 가슴이 다 빈곤하니 저런 똥물 같은 말 밖에 나오지 않는가보네요 알아서 거를 수 있는 흔적을 남겨줘서 차라리 다행입니다
머리랑 가슴이 다 빈곤하다... 가장 슬픈 말이네요ㅜ
Chibi 푹쉬어라~!!
그 지인은 진짜 너무하네 아무리 그런맘이 들더라도 그곳에서 그런말을 하다니.....참..
친구의 인생에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사랑이었는지를 몰라 그랬을거에요. 그저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는...
항상 힐링을 주는 반려견....좋은곳에 갔기를 바래봅니다
너무너무 착한 아이라 아마 좋은 곳에 갔을거에여...
사진마다 슬픔이 뚝뚝 묻어나네요
네ㅜ 너무너무 슬펐어요ㅜㅜ
치비 눈빛이 왜 그런걸까요. 다 알고 있고 때가 되었다는 눈빛을...
아주 먼 곳을 보고있네요.
그런듯 했어요. 정말 마지막 꼬리 흔들때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 했어요 내가 이랬는데 내친구는 오죽했을까요
저희 외숙모네집 개도 떠날 때가 얼마 안 남아서 남일 같아 보이지 않네요 ㅠㅠ
개만도 못 한 인간이 진짜 있나봅니다...
저는 한번도 애완동물을 키운 적이 없어서 처음에는 공감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장례에 참여하며 이 아이가 내 아이의 삶에 어떻게 관여했는지 생각하고, 이 친구의 삶에 어떤 의미였는지 생각하니... 정말 가슴이 미어지더라구요... 제게는 생경하나... 이제껏 모르던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한 계기였어요. 그 지인은 아마도, 그분이 가진 세계관에서 멀지 않은 방식으로 표현하신 듯 합니다: 남의 일이니 그저 그렇게 대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