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쓰게된다 - 김중혁
새 책이 나오고 나서, 중혁오빠를 만나봐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글쓰는 법에 대한 책이라니, 궁금하기도 하고, 유명 작가가 된 오빠의 모습도 오랜만에 보고싶었다. 요즘 도통 글 쓰는게 힘이 들고 앞으로 나아가지지 않는다고 토로하며, 오빠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작업실에 한 번 찾아가도 되겠냐는 나의 말에, 오빠는 흔쾌히 나의 방문을 허락해 주었다. 그 느낌이 어떤건지 알 것 같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답 비슷한 걸 발견할지 누가 아냐고, 가끔은 질문하다가 답을 얻는 경우도 있지 않냐고도 했다. 유명해졌지만 여전히 따듯한 오빠에게서, 예전의 그 친근함이 대뜸 옛날의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빠의 작업실은 그야말로 작가의 공간이었다. 애플 마니아 답게, 아이패드부터 애플 펜슬까지 모든, 작업에 필요한 기기를 갖추어 놓았고, 모나미 네임펜, 무지의 볼펜, 가장 좋아한다는 팔로미노 블랙윙 pearl 펜슬까지 각종 필기 도구들이 가득, 책상 한 켠에 정리되어 있었다. 애정하는 pearl 펜슬은 정말 부드럽게 미끄러져서 책을 읽을 때 줄긋기 용으로는 최고라며 덧붙인다.
오빠: 책을 읽는다는 것은 세상의 표면을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행위라는 사실을 매번 깨닫고 있어.
나: 글은 주로 맥북을 통해 쓰시죠? 왠만한 얼리어답터는 서러워할만큼 잘 다루기도 하시잖아요.
오빠: 애플의 가장 큰 장점은 창작에 있는 것 같아. 이상한 이야기 같겠지만, 윈도우를 쓰면서는주로 ‘감상’을 했는데, 애플을 쓰면서부터 ‘창작’을 하게됐어.
오빠는 글을 쓸때나 안 쓸때나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편이라고 했다. 메모를 꾸준히 하는 버릇도 있는데, 최근에는 줄이고 있다고 한다.
오빠 : 쉽게 잊어버린 이야기들은, 애당초 기억할 만한 이야기가 아닐거야.
하루를 때로는 부지런하게, 때로는 게으르게 보내는데 일기는 쓰지 않는다고 했다. 하루를 정리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정리 하다보면 하루가 더 짧아진다고…
나: 모니터에 가득 메모지가 붙어 있네요. 여전히 메모는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오빠 : 응.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꾸준히 하는 편이야. 메모는 씨앗을 심는 일이야. 메모로 적은 생각에 매일 물을 주지 않으면 곧 말라버려.
나: 글을 쓰고싶은 마음은 늘 있는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가 늘 고민이예요. 딱히 글 주제를 정하지 않아도 일단 시작만 하면 글이 써 나가지는데, 시작하기가 힘이 들어요.
오빠: 어차피 우리는 최선의 문장을 쓸 수 없어. 아무리 노력해도 좋은 문장을 쓸 수 없다면 아무 문장이나 쓰면 돼.
나: 시작이 중요하잖아요. 첫 문장을 쓰는 것.
오빠: 첫 문장이 전체 이야기의 처음일 필요는 없어. 지금까지 많은 첫 문장을 썼지만 여전히 첫 문장을 쓰는건 힘들어. 첫 문장은 ‘스스로에게 내는’ 수수께끼야. 두번 째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는 이 수수께끼를 푸는 과정일 수밖에 없어.
나: 글을 일단 써내려 가다보면, 흔하지 않는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오빠만의 스타일은 어떻게 만드세요?
오빠: 스타일은 밖에서 얻어와 내 몸에 붙이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발견해 깎아나가는 것이라고 나는 믿어.
나: 흠… 쓰고쓰고 또 써야 하는군요. 창작의 비밀 같은건 없단 뜻인가?
오빠: 창작의 비밀을 알아내려는 마음과 창작의 비밀같은건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 사이의 에너지가 글을 쓰는 동력이 되는게 아닐까?
나:… … (책상앞 메모들을 보며) 이런 메모들을 붙여놓고 글 쓰실 때 활용하시는 건가요?
오빠 : 아마 흔들리는 자신을 붙잡고 싶기 때문일거야…
나: 최고가 아닌줄 알면서도 계속 쓰고 또 쓰면서 흔들리는 우리 자신… 저도 포함되겠네요.
오빠: 갈수록 글쓰기가 힘들어져…
나: 요새 저는 쓰기도 읽기도 힘들어요. 오빠는 독서도 많이 하시잖아요.
오빠.: 글쓰기는 독서에서 시작되니까. 천천히 읽고, 낯설게 읽고,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읽고, 두번 읽고, 이해하며 읽고, 오독하면서 한번 더 읽고, 읽지 않은 책인 것처럼 한 번 더 읽고, 줄을 그어가며 읽어야 해. 그리고 쓰는거지. 추상적인 인류 전체에 대해 쓰지말고, 구체적인 한 사람에 대해 써야 해. 일단은 적어봐. 문자로 기록하지 않으면 세세한 내용은 기억하기 힘들게 됐어. 즐겁든 고통스럽든 일단 적어야 해.
나: 아무도 읽지 않을 때는 자유롭던 글 쓰기가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니 속박되는걸 느껴요. 내가 너무 다른 사람을 의식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오빠: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을 분리시키는 일이고, ‘나’와 ‘나를 바라보는 나’가 대화하는 일이므로 ‘나를 바라보는 나’가 존재하는 순간, 누군가를 의식할 수밖에 없어.
나: 오빠도 여전히 그런가요?
오빠: 글쓰기가 점점 어려워져…
나: 오빠는 그림도 그리시잖아요. 글을 쓴다는 것과 그림을 그린다는 것의 의미는 어떻게 다른가요?
오빠: 빨래가 끝나 바싹 마른 옷을 차곡차곡 뇌의 서랍에다 개켜 넣는 일이 글쓰기라면, 서랍의 바닥에 뭐가 있나 보기 위해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던 옷을 헤집어 꺼내서 바닥에 던져놓는 일이 그림 그리기 같아.
나: 음… 그래서 어떤 아이는 작가가 되고, 어떤 아이는 화가가 되나 봐요. 오빠는 글쓰기를 따로 배운 적은 없죠?
오빠: 배울 필요도 없다고 여겼는데 생각이 바뀌었어. 낚시를 배울려면 낚시대를 잡는 법을 알아야 하잖아. 껍대기에 대해 오래 이야기 하다보면, 어느새 그 안애 알맹이가 들어차는 그런 느낌이랄까.
나: 그치만 천재적인 모짜르트가 살리에리보다 더 존경받고 있기도 하잖아요.
오빠: 예술가들은 살리에리의 심정이야. 보잘것없어 보이는 자신의 작품을 참고 견디는 사람들이거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도 그런 견습의 과정이 없어서 였을거야. 뭘 써야 할지 몰라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 나의 임무는 세상을 정리정돈 하는게 아니다. 더 어지럽게, 더 헝클어뜨려서 더 많은 것들이 생겨나게 하는 것이다. 마음껏 어지르자는 심정으로 그림을 그렸어. 그림은 자신을 표현하는 또다른 목소리와도 같아.
나: 오빠에게 글쓰기 원칙 같은게 있나요?
오빠: 첫째는 ‘나’이고, 둘째는 ‘세계’이고, 셋째는 ‘나와 세계를 연결시키는 도구’라고 말하고 싶어. 나만 있는 글은 좁아서 답답하고, 세계만 있는 글은 멀어서 손에 잡히지 않고, 도구만 있는 글은 재주만 드러나서 진실함이 부족해 보여.
나: 일단은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잖아요. 이야기를 설정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오빠: 첫째는 ‘만약’으로 시작하는 설정, 두번째 방법은 ‘체험’이야. 일단 글로 써보면 알게돼.
나: 오빠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을 만들 때도 원칙 같은게 있나요?
오빠: 대체로 올바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간섭하지 않으면서 각자의 소리를 내는 소설을 쓰고 싶어.
나: 작품을 쓸 때 묘사와 서사, 대사를 적절히 섞어서 써야 하잖아요. 소설의 경우 특히. 좋은 묘사(서사)와 좋은 대사는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오빠: 묘사란, 책을 읽는 사람들의 깊은 감각을 일깨우는 거야. 나쁜 묘사는 예쁘기만 할 뿐 정확하지 않고, 좋은 묘사는 선명하지 않지만 정확해. 나쁜 묘사는 최대한 포즈를 취한 후 어색한 미소로 찍는 셀카와 같고, 좋은 묘사는 친한 친구들과 놀다가 자연스럽게 찍힌 스냅샵과 같아. 대화의 경우, 우리가 대화하는 이유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이고 공감하기 위해서야. 대화의 결과는 이해여야지, 성공이 되어서는 안돼.
나: 아… 어렵지만, 여러가지 생각할게 많은 이야기 해줘서 감사해요.
오빠: 할말이 너무 많아서 할 수 있는 말이 없어. 특별할 필요없어. 오래 하다보면 특별해져. 누구에게나 시간은 특별하고, 시간과 함께 만든 창작물은 모두 특별해. 무조건 열심히 빼곡히 채워 넣는다고 좋은 결과물이 나오진 않아. 누군가에게 도움울 받는게 꼭 필요하기도 해. 내가 꼭 하고 싶은 일이라면, 서투르게라도 할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야. 넌 잘하고 있어. 그러니 걱정마…
아무도 안 읽어주는 글을 몇 년 넘게 쓸 때에도, 그저 쓰는 것이 좋아 쓰고, 안읽어주는 그들에게 서운하지도 않았고, 읽히지 않는 내 글 때문에 슬프지도 않았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는 지금에 와서, 도통 글이 써지지 않고 점점 게을러지는 내 자신을 스스로 달래고 격려하는 마음으로, 내가 사랑하는 작가, 김중혁의 [무엇이든 쓰게된다]를 읽었다.
글을 읽는다기 보다는, 친절한 아는 오빠가 오부작오부작 입을 움직이며, 조곤조곤 본인의 이야기를 내게 해 주고, 나는 또 경청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한 리뷰를, 그분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나와, 중혁 오빠의 대화로 만들어 보았다. 다 읽고 난 지금의 마음은, 읽기 시작할 때 마음이랑 별로 다르진 않지만, 확실한 방법을 얻은 것 같진 않지만, 책 제목대로, 글을 쓴다는 것은, 일단 시작하는 것이고, “무엇이든 쓰게되는” 과정인것 같다. 일단은 시작하고, 또 읽고, 쓰고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는 것, 그것이 김중혁 작가가 말하는 것이다.
저도 만나서 나누신 대화인줄 알았네요. ㅎㅎ 대화의 묘사가 또 소설같기도 하고요 ㅎㅎ
이렇게밖에 쓸 수 없는 리뷰였어여. 줄거리 요약에 가능한 소설도 아니고 내 생각이 들어가서도 안되겠고... 작가님이 하신 말씀 그대로를 발췌하고 싶은데 그렇게 하면 아무도ㅠ안읽을거 같고 ㅜ
우앙 이 말 넘 멋지네요..와닿는 말이 정말 많은데..
이렇게 리뷰를 쓰셔서 더 그런거 같아요..
간만에 북키퍼님 글 읽으니 넘 좋은..ㅠㅠ 계속 써주셔야해요~~~ㅎㅎ
읽던 거 다 읽으면 이 책은 정말 읽어봐야겠네요.ㅎㅎ
기대보다 더 좋았어요 미동님 ㅎㅎ
대화체 리뷰 신선해요!!
저도 제 3자가 되어 옆자리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으로 읽었습니다..
북키퍼님 오랜만에 봐서 너무 좋아요ㅠ
어디 가지 마요~~♡
둥이맘~ 보고싶었어요. 늘 와서 안부 물어봐줘서 고마워요.
오실 줄 알았어요
늘 기다려요^-^
오옷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인줄 알았네여!!! 반전..ㅎㅎㅎ 대화체 넘 생생합니다.
ㅋㅋ 설마요. ㅎㅎㅎㅎㅎ
쭈욱 읽어내리면서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분이신줄 알았어요 ㅇ.ㅇ ㅎㅎㅎ 글쓰기도 왠지 그림그리는것과 비슷한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적어도 저에겐 많이 와닿더라구요 ;^^
그림 그리시니 새롭게 와 닿았을거 같아요 ㅎㅎ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런 표현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걸까요? 정말 잘 보았습니다. 글쓰기가 좋으면서도 어려운데, 읽으면서 참 여러모로 공감도 되고 도움도 되었습니다.
주옥같은 문장들을 모아놨더니 정말 고급진 대화가 되었습니다 ㅎㅎ
마지막까지 안보고 도중에 페이지 넘겼으면 큰일날뻔했네요 ㅎㅎㅎ
'아~ 작가분이랑 잘아는 사이구나'란 오해를 안고 갈뻔했습니다
저도 작가님이랑 친하신 줄 ㅎㅎ
대화를 내내 읽으며 작가의 아니 인생에 어느듯 통달하신 느낌인데 그래도 그 무언가가 목에 살짝 걸려있는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런 대단한 작가님과 인터뷰도 하시고 뭔가의 갈망에 대한 해갈이 조금 이라도 되셨기를...
술술 재미나게 읽어내려갔더니 뭔가... 이 대단하신 분도 일반인이랑 같은 고민을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쉽게 쓰는거 같았는데 많은 고민을 하는거 같더라구요
제가 '빨간책방'을 엄청 열심히 들었어서, 김중혁 작가하니 꽤 친근하게 느끼고 있는데, 그분과 오빠동생하는 사이인 줄 알고 부럽다며 읽었습니다.^^
재미있는 컨셉이었습니다.^^
ㅎㅎ 오빠동생 하는 사이가 되고싶어요. 작가로서도 좋다하지만 인간으로도 좋아합니다.
글을 쓰는 게 어려워지는 거 같아요. 동감.
더 정확히는 내가 쓴 글을 많은 이들이 읽어주는 데서 오는 부담감이랄까요. 그래서 더 잘 써야겠다, 더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 같아요.
그리고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는 게 부담이면서도, 꽤 큰 격려가 돼요. 그래서 행복할 때도 많고요.
네 저렇게 글 잘쓰시는 작가도 글쓰는게 갈수록 힘들어진다는 말을 여러분 책 속에 썼더라구요. 누구나 다 글 쓰는건 쉬운일이 아닌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