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인의 추종자와 함께] 투명성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in #kr7 years ago

어쩌다 보니(?) 팔로워 200명을 맞이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여러분의 성원 덕분입니다.

좋지도 않은 글감에 많은 관심 보여주신 것,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투표는 모두 맥주로 화(化)해서, 제 뱃속에 수장될 것입ㄴ..... 응?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뉴비인고로, 200인의 추종자(...)를 맞이한 기념으로 무엇을 쓸까 하다가 조금 색다를 수도, 조금 골치아플 수도 있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가보고자 합니다.

바로 '투명성'(transparency)'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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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투명성은 금과옥조, 황금률과도 같이 여겨집니다. 특히 권위주의적인 정부를 겪어온 우리에게 있어 이 투명성, 개방성은 수호, 준수되어야 할 최선의 가치 중 하나로 여겨지는 경향이 제법 짙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우리뿐만이 아닙니다. 특히 정부로 대표되는 공적 기구(institution)의 차원에서 투명성/개방성은 강력히 요청되고 있으며, 국제투명성기구 (TI, 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매년 공공부문 및 정치부문에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부패의 정도를 측정하는 지표를 발표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 중요성은 국제적으로 공히 인정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행정학을 연구하는 분에는 아예 이 '부패'의 문제만 중점적으로 다루는 연구자도 있습니다.

공적 기구, 제도에 있어서의 개방성/투명성은 공공분야의 대응성(responsiveness), 즉 공공분야가 제공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국민이 원하는 방향에 부합하도록 생산하게끔 하는 효과를 지닙니다. 또한 재화의 생산/분배, 정책결정 과정 등 공적인 결정에 관련된 부분의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국민이나 (이익)집단의 통제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민주성을 제고하는 효과도 가집니다.


이러한 투명성을 극단으로 끌어올린 기술 중 하나가 바로 블록체인입니다.
다면 장부(multi-facet book?) 작성방법을 통해 거래, 입-퇴장을 추적할 수 있는 극단의 투명성을 제공하는 것이 블록체인이지요. Steem Dollar로 대표되는 가상화폐 뿐만 아니라 이미 많은 분야에 그 적용가능성이 연구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미 한국에서도 경기도가 Block Chain을 농산물 인증 분야에 적용하는 방법을 검토 중입니다. 2017년 3월에 나온 기사이니, 이미 기술적 진전은 제법 되었을 겁니다. (http://news.mt.co.kr/mtview.php?no=2017030816147811706)


이렇게 투명성에 대한 찬사가 가득합니다.
모든 것이 훤히 드러나고, 예측가능한 멋진 신세계 (The Brave New World)!!

그런데 이러한 조류에 반기를 들며,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 학자가 있습니다.
한 번쯤 익히 이름을 들어보셨음직한 재독(在獨) 철학자 한병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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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분입니다. 무슨 히피 같이 생겼군요(...)


그의 대표적인 저서 "피로사회"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진단을 내놓습니다.
우선, 그 역시 현대 사회에서 투명성이 각광받는 가치임을 인정합니다.

*오늘날 ‘투명성’이란 단어는 마치 유령처럼 모든 삶의 영역을 떠돌고 있다. 정치에서는 물론이고 경제에서도 투명성이 강조된다. 투명성은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많은 정보의 자유, 더 높은 효율성을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투명성이 신뢰를 낳는다. 이것이 요즘 유행하는 믿음이다.

그러나, 이윽고 이와 같은 비평을 보입니다.

  • 투명성은 모든 사회적 과정을 장악하여 근원적인 변화의 물결 속에 끌어들이는 시스템적 강제력이다. 오늘날 사회 시스템은 모든 사회적 과정을 조작 가능하고 신속하게 만들기 위해 투명성을 강요한다. 투명성은 타자와 이질적인 것을 제거함으로써 시스템을 안정시키고 가속화한다. 이러한 시스템의 강제로 투명사회는 곧 획일적 사회가 된다.(“투명사회”, 14-15쪽)

이어서, 그는 '연결 과잉' (excessiveness of connection) 사회, 즉 SNS 등이 범람하는 사회를 이렇게 바라봅니다.

  • 제레미 벤담의 파놉티콘은 그 안에 갇힌 사람이 말을 못하게 막는 체제였다. 하지만 현대의 디지털 파놉티콘은 서로 대화를 하도록 허용한다. 그래야만 저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더 잘 알게 되니까, 자유로운 대화를 통해 통제를 더 잘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벤담의 파놉티콘에 존재하는 빅 브라더는, 아래쪽 사람들이 뭘 하는지를 볼 수 있지만 뭘 생각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서로의 생각을 너무 잘 안다. (2014년 Pressian 인터뷰 중에서)

Facebook이나 Instagram, Twitter와 같이 나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매개는 이제 너무나 많습니다. 구 미디어(Old Media)로 대표되는 신문, 전화, 방송을 벗어나 우리는 원하는 때에, 아무 것이나 내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이죠. 가히 말의 범람(汎濫)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 전면적 커뮤니케이션과 네트워크화의 흐름 속에서 아웃사이더가 되는 것, 튀는 견해를 밝히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어려워졌다.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은 매끈하게 다듬고 평준화하는 작용을 하여, 결국 획일화를 초래하고 이질성을 제거한다. 투명성은 순응에 대한 강압을 낳고 이로써 지배 시스템을 안정시키는 데 기여한다.

즉, 투명성의 사회는 다음과 같이 작동합니다.

  1. 먼저, 모든 것이 즉각적으로 공개되어야 합니다.
  2. 토론도 타인의 시선 앞에서 해야 합니다.
  3. 시간이 많이 필요한 사유의 공간이 좁아지고, 정치는 호흡이 짧아집니다.
  4. 투명성에는 시간의 차원이 있는데, 투명성은 현재 지향적입니다.
  5. 미래지향적인 사고와 행위가 점점 힘들어지면서, 장기적인 비전이 불가능해집니다. 즉각 모두에게 보여 달라는 요구 때문입니다.
  6. 고요한 사유를 할 수 없고 미래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7. 시스템은 현재에 고정되어서 아주 만족스럽고 멋진 상태를 유지합니다.

또한 그는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많은 정보를 선제적으로 공개한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입니다.

즉, 눈뿌리기(snowing) 와 같이 정보를 너무 많이 뿌리다 보니, 어떤 정보를 선별해야 할지, 어떻게 해석할지를 모르고 우왕좌왕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게 됩니다. 즉, 정부와 공공기관을 투명하게 만들기 위한 수단이 결국 자기를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어 결국 불투명해진다는 것이 그의 진단입니다.


지금까지 투명성에 관한 일각의 논의를 살펴보았습니다.

블록체인은 어떻게 개인과 사회를 바꿀까요?
아니, 범위를 좁혀 투명성을 신조로 하는 가상화폐는 어떤 파장을 가져올까요?

과연 한병철이 바라본 것과 같이 과도한 투명성의 '포르노 사회'가 될까요?
아니면 투명성 부족에서 비롯된 많은 문제를 해결할 Deux Ex Machina가 될까요?

여러분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참고자료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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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행위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는 듯 합니다. 끝없는 상품들 속에 고민하다가 결국 무엇을 하나 선택한다해도 자신의 선택에 대해 확신할 수 없기에 불안해하거나, 하나의 선택으로 인해 포기해야만 하는 수백 수천가지의 선택지들 때문에 불행해지고, 또는 아예 선택을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생기죠. 글 속에서 말하고 있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의 불안함이나 상품의 홍수 속에서의 불안함이 비슷하게 느껴지네요.
Snowing과 관련해선 리영희 님의 글에서 읽은 내용이 기억나는데요. 미국이 일정 기간이 지나면 국가기밀정보를 공개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리영희님이
보기에 그 방대한 자료들을 다 읽고 글을 쓰는 지식인들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베트남 전쟁 관련 자료만 해도 천 쪽 가까이 되는 분량의 책이 십수권이니 말이죠. 읽을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정보의 양 앞에 아예 알기를 포기하는 경우는 자주 일어날 수 있겠죠. 결국 투명성 자체가 진실을 담보할 수는 없는 듯 하네요.
제가 생각하기에 더 심각한 문제는 방대하면서도 디테일한 정보를 공개하는 와중에도 다른 한 쪽에서는 영화나 뉴스 등 훨씬 이해하기 쉬운 매체를 통해 거짓 정보로 대중들을 현혹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점에 있습니다. 재미있는 글 잘 보고 갑니다.

제 생각보다는 거의 한병철씨의 생각으로 점철된 글이긴 합니다만. 정보 과잉의 문제는 역시 이전부터 불거졌군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서 리영희씨가 작고한 그 분 맞나요...?

네 맞습니다.

투명성이 문제가 아니라 가치판별의 어려움이 문제가 되겠죠? 블록체인은 투명하게 유지되지만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있는 건 의미를 알수 없는 거래다발들입니다. 이에 해당 정보를 가공해서 파는 정보 소매상들이 등장하는 것이구요. 정보 과잉과 그로 인한 피로도 문제는 이러한 정보 소매상들에 의해서 일반인들이 소화하기 쉬운 형태로 매대(피드)에 올라옴으로써 정리된다고 봅니다.

맞춤형 정보 제공을 통한 일종의 curation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로 soyo님의 입장을 정리해도 괜찮을까요? 그렇다고 하면 selection bias가 문제될 수 있다고 봅니다. 투명성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는 합니다만...

확실히 문제가 있죠. 대표적인게 언론입니다. 항상 어느 정도의 감시와 공부가 필요하니 피로도 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약간 안일했습니다.

안일했다고까지 표현하실 필요는 없죠 에잉! 여튼 한병철 씨의 저서 덕에 참 이런 저런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축하드립니다. 글이 쏙쏙 들어오네요. 투명성이 저도 좋다고만 생각했는데, 과도한 투명성도 문제가 되겠네요. 글 잘보았습니다.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게 필요합니다. 이래서 철학자들이 어려운 작업을 한다고 말하는 것인가 봐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0명 추종자 달성 축하드립니다 :) 블록체인이 가지는 수준의 투명성이라면, 각 구성원들이 자신이 하는 모든 활동이 투명하게 공개될 가능성이 늘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에 (사실상 활용가능한 정보로 재가공 되는데에 많은 노력이 필요함 에도 불구하고) 1차적으로 자기검열이 더 강하질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자기검열 기능이 공적 자원의 활용에 있어서는 너무나 필요한 작용임에는 틀림없고, 나머지 영역에 있어서는 고민이 더 필요한 문제일 듯 해요.

자기검열은 확실히 흥미있는 부분입니다. 만천하에 내 행동이 드러남을 고려하게 될 때 인간 행동의 변화.... 두려우면서도 재미있는 주제가 되겠네요.

투명성은 꼭 필요하지만 과도해질 경우 필연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간단하면서도 꿰뚫어 보기힘든 논리지요. 요즘은 투명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곤 하니까요. 저자는 그걸 아주 잘 꿰뚫은 것이구요..ㅎㅎ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또 추종자가 느셨군요ㅎㅎ

잘 읽구 갑니다! 재미있게 읽었어요 ^^

200 팔로워 축하드립니다! 추세를 봤을 때 언젠가는 투명화의 시대가 도래하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진위를 가리기 위한 기술 또한 발전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200 팔로워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과 그보다 좋은 맥주 추천 부탁드립니다.

맥....주는 언제나 동반자입니다 하하핳

정치의 투명화는 꼭 해야된다고 봅니다. 복지수준과 국민행복도가 높은 핀란드는 모든 국민들의 소득과 세금내역이 다 공개되어있다고 하죠.

당연히 필요한 과제입니다. 특히 우리와 같이 많은 것이 베일 안에서 결정되었던 곳에서는 더더욱. 다만, 이 글은 그 '투명성'이 가져올 이면을 반드시 살펴야 한다는 점에 주안점이 있습니다. 어떤 가치든 금과옥조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저는 특히 마지막의 snowing 부분 서술에 굉장히 많은 공감을 했습니다. 많은 이가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정보공개청구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좋은 연구결과를 많이 내놓는데 정작 대중의 관심을 끄는 것은 적습니다. agenda-setting의 문제가 있을 수도 있으나, 기본적으로 양화가 악화를 구축하는 상황이라 봅니다.

즉 정보가 너무 많아, 무엇을 중점적으로 소화해야 할지 다들 헷갈려한다는 생각입니다. 소화불량에 걸려 새로운 것을 더 집어넣지 못하는 상황으로도 보이구요.

뭔가 의미심장한글 이따 찬찬히 정독 하겠습니다.
잘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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