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essay] 누군가의 딸들

in #kr7 years ago

고양이들.jpg

 딸이 다니는 어린이집 수료식이 있었다. 수료식에 참석하기 위해 난 시간 맞춰 학교를 나섰고, 아내도 9개월 된 둘째를 매달고 택시를 탔다. 아내는 딸에게 줄 사탕 꽃다발과 선생님에게 드릴 작은 꽃다발 두 개를 준비해왔다.

 연령별로 나눠진 각 반에서 수료식이 진행되었다. 먼저 아이들의 특성과 장점을 반영한 상장 수여가 있었다. 우리 딸은 ‘피카소 그림 상’을 받았다. 평소에 그리기를 좋아하고, 그림이 눈에 띈다는 얘길 자주 하셨는데, 그걸 상에 반영해주셨다. 어떤 아이는 ‘호기심 천국상’, 고래와 공룡에 특별히 좋아하는 어떤 아이는 ‘고래와 공룡 애정상’을 받았다. (스티밋에 그런 상이 있다면, ‘고래 애정상’ 정도는 있을 법하다.)

 상장 수여와 수료증 전달이 끝나고, 일 년 동안 아이들의 생활상이 담긴 동영상을 시청했다. 그러고는 올해를 끝으로 다른 어린이집으로 가는 한 남자 아이의 아버지가 감사의 인사를 하고는 수료식이 끝났다. 선생님들은 시원섭섭한 듯, 상기된 얼굴로 활짝 웃고 계셨다.

 아내의 선생님 사랑은 참 깊었다. 늘 뭔가를 해주고 싶어 했다. 어린이집에 오갈 때 들고 다니는 보육일지가 있는데, 아이에게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선생님이 간략하게 적어주면, 거기에 대한 응답으로 부모님 생각을 적게 되어 있었다. 아내는 선생님과의 서신 왕래나 마찬가지인 그 일을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 내가 대신 썼던 몇 번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해냈다. 일 년 동안 아내는 아이를 사이에 놓고 선생님과 펜팔을 한 거나 다름없었다. 아내는 특별한 행사 말고는 선생님을 만날 일이 없었다. 내가 아이의 등하원을 책임지고 있었고, 아내는 둘째 딸의 출산과 육아에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잘 신경을 쓰지 못해 미안해서인지, 아내의 편지는 선생님에 대한 절절한 칭찬과 격려로 가득했다. 옆에서 지켜본 결과, 그건 진심이었다.

 우리 아이가 속한 반의 두 선생님 중 한 분은 30대이시고, 다른 분은 이십대 중반의 선생님이다. 이십대 중반의 선생님은 정규직이 아니었고, 보육을 보조하는 자격을 지닌 분이었다. 그 선생님은 누구보다 밝고 세심하게 딸아이를 돌봐주었다. 물론 다른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30대 선생님은 딸아이 다음 반에 함께 하시는데, 20대 선생님은 그 아래 반을 맡게 되셨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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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료식 후에 아이들은 선생님과 돌아가면서 자유롭게 사진 촬영을 했다. 우리는 아내가 준비한 꽃다발을 선생님께 드렸다. 그리고 선생님 품에 안긴 아이와 선생님 사진을 찍어드렸다. 수료식 시작부터 사진 촬영까지 걸린 시간은 30분 남짓이었다.

 사진을 찍은 아이들의 가족들은 하나 둘 문 밖을 나서고, 우리 가족이 가장 마지막에 일어섰다. 아내는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두 분 선생님에게 다가섰다. 선생님들은 한 해 동안 정성껏 쓴 답글이 감사했고 큰 격려가 되었다며 감사를 표했고, 아내도 선생님들 덕에 딸 아이가 적응을 잘했다며 감사 인사를 했다.

 난 한 발짝 뒤에서 세 여성들의 만남을 지켜보았다. 아내는 연신 웃고 있었고, 선생님들도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내는 내년에 함께 하지 못해서 서운하다는 표현을 20대 선생님에게 건넸고, 20대 선생님은 다른 반이라도 00이를 자주 볼 거라고 답했다. 그러다가 일순간, 20대의 선생님과 아내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울음을 터뜨렸다. 일 년 간 보육일지를 통해 편지를 주고받던 두 여성 사이엔, 수치로 객관화하기 힘든 친근감과 연대감이 이미 자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두 여성은 눈물을 찍어내면서 눈물을 멈추려고 크게 웃었다. 서로 울지 마시라고, 별 효과도 없는 말을 건넸다. 이번엔 아내가 20대 선생님이 했던 말로 위로했다. 다른 반이라도 또 볼 건데, 울지 말아요. 나도 괜히 코끝이 시큰했다. 난 둘째를 끌어안고 돌아섰다. 아끼는 친 동생을 멀리 떠나보내는 장면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20대 선생님은 그동안 늘 챙겨주시고 관심 보여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또 건넸다. 또 아내가 감사 인사를 건네고,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며 눈물을 찍어내며 또 몇 분이 흘렀다.

 누군가의 귀한 딸이 우리 딸을 돌봐주었고, 또 다른 이의 딸이 우리 딸을 돌봐준 누군가의 딸을 귀해하는 그 장면을 보면서,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딸들은 서로의 마음을 감지하는 예민한 촉수가 있고, 그 촉수가 상대방에 살짝 닿은 순간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물을 쏟아낸다. 촉수끼리 닿은 건지도 모른다.

 그 순간 두 딸들 사이엔, 우리 딸이 없었다. 온전히 서로만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딸을 통해 맺은 인연인데, 그들은 어느 덧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사이가 되고 만 것이다.

 나한텐 강하지만, 눈물에 약한 아내는 방송에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아이들을 돕자는 광고가 나오기라도 하면 채널을 돌린다. 그런 장면을 보면 너무 깊이 감정이입이 되어 울 것이고 울면 민망해진다는 이유였다. 우는 걸 민망해하는 아내는, 선생님 앞에서, 아니 20대의 동생뻘 되는 누군가의 딸 앞에서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렇게 누군가의 딸들은, 울음으로 서로를 세워주고 마음을 확인하고 있었다. 덕분에 나의 감사 인사는 무미건조한 말로 남았다. 나 스스로도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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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선생님 만나기가 어렵다지만, 알고 보면 좋은 선생님들이 많이 계시더라고요. 아이가 어린이집 다니는 동안 행복했겠어요. :)

네 좋은 선생님 많이 계시고 그런 분들 만나는 건 행운이죠^^ 어린이집은 새해에도 계속 다닙니다ㅎ

가슴 한 켠이 따뜻해집니다^^

훈훈합니까ㅋ

나한텐 강하지만

ㅎㅎㅎ 사랑스러운 아내분의 이야기네요. 너무 복받으셨어요.
그나저나 그런 아내분에 솔메님께는 강하신가 봅니다. 흐흐

다른 사람들에겐 한없이 부드럽고 친절한 그녀는 유일하게 저에게만은 아주 강하죠ㅋㅋ

아내분은 정이 많으신 분인거 같네요.
내 자식 이뻐해주고 잘 돌봐주면 고마움 마음이 정말 큰거 같긴합니다^^

네 자식 맡겨두고 걱정이 많은데 잘 지내니 많이 고마운 것 같아요^^

과거 유치원 교사가 될 뻔한 사람으로서 이 글을 읽으며 느껴지는 건.. 아내분께서 단순히 학부모가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선생님께 무한한 신뢰를 보내주신 것 같아 감동스럽습니다. 생각보다 그런 학부모들이 많지 않으시거든요. 마음 따뜻해지는 이야기 감사합니다.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는 모습 저도 보기 좋았아요ㅎ 유아교육 공부를 하셨나봐요~~^^ 스티밋 시작하신지 얼마 안되셨네요. 반갑습니다.ㅎ

네 대학 전공이었어요. ^^
실습 나가고 임용 준비까지 했다가 하고 싶은 다른 일이 생겨 방향을 틀었지요.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

아하. 발을 깊이 들이셨다가 유턴하셨군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텐데요. 앞으로 활동 기대하겠습니다ㅎ

학부모와 교사의 관계가 너무 가까워도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지만 미소가 지어지는 글입니다.
저도 교사지만 성향이 잘 맞는 학부모님들을 만날 때면 한 해가 수월하게 흘러감을 느낍니다.
아이에 대한 제 견해를 가감없이 받아주시고 저도 상대방 말을 의미 부여하지 않고 들을 수 있더라고요
한 해동안 선생님도 kryslmate 님 가족분들도 좋은 인연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유치원 졸업도 눈물 바다군요!!

네 학부모나 선생님이나 성향이 잘 맞으면 참 좋지요. 불필요한 오해나 갈등도 없고 오로지 아이에 집중할 수 있게 되죠. ㅎ
아직 유치원 아니고, 세살 딸이 다니던 어린이집이예요. 아이가 어릴수록 선생님은 아이에게 선생님 이상의 친근감을 주는 존재가 되는 것 같아요. ^^

안 울수 없어요.. ㅠㅠ
예전 선생님들 생각하니 지금도 눈물이...ㅜㅜ

leeja19님 많은 선생님들 만나셨겠네요. 한해 지나면 꽤 정이 들더라구요^^

정말 코끝이 찡해지는 글이네요 아내분이 마음이 참 따뜻하신분 같아요^^

네 전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잘 챙기더라구요. ㅎ

일 년 간 보육일지를 통해 편지를 주고받던 두 여성 사이엔, 수치로 객관화하기 힘든 친근감과 연대감이 이미 자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대목에서 스팀잇에서 글을 주고 받는 우리들이 연상되었습니다. 계속 편지를 주고 받는 사이일 수 있다면 좋으련만!

맞아요! 얼굴 한 번 뵌적은 없지만 이곳에서 만나는 우리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만났던 사이처럼 느껴져요. 오래 보아요~~^^

유치원 교사와 학부모의 사이가 이렇게 애틋하기도 힘들텐데.. 정이 많으시군요 ㅎㅎ 따뜻함이 여기까지 전달되는 듯 합니다

그리 느껴주시니 감사합니다. 많은 부모들이 같은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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