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 글쓰기 -여섯 번째] 의식의 흐름을 이용한 문장 연습과 시쓰기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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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시를 썼다

 <소설 주간>을 거쳐 내친 김에 이번엔 시에 대해 좀 읊어보려 한다. 봄이 오고 있다. 우리 모두는 시인이었던 시절이 있다. 사랑에 빠졌을 때, 사춘기의 강렬한 호르몬이 우리를 지배했을 때, 벅차고 슬프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상황을 맞이했을 때 우린 모두 시인이었다. 그런 적 없는가.

나의 이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詩로 표현하고 싶다! 하지만 어떻게 쓸지 모르겠다. 써보니 유치하다. 이런, 내가 쓴 이것들은 詩인지 징징거림인지 모르겠다. 난 1학년 애보다 못해. 시는 무슨!

 마음에 시심이 끓어오르는 단계를 지나, 마음먹고 펜대를 한 번 굴려봤다가, 난 역시 안 되겠다는 자조 섞인 실망으로 끝났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글쓰기 수준이 어떻든지 간에, 우리는 한때 시를 써보려고 시도해 보았고 그 결과 자기 시에 대한 부끄러움을 획득하게 되는 공통의 아픔을 갖게 되었다.

 물론, 걔 중에는 내 시에 대한 평가를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저돌적으로 시를 쓰는 사람도 있다. 결혼을 앞둔 내 친구는 아내가 될 사람과 데이트를 할 때마다 그녀에게 시를 한 편씩 써서 줬다. 친구는 가끔 그렇게 쓴 시 중 일부를 SNS에 공개하기도 하는데, 이 시를 읽고 있자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현상을 피할 수 없다.

 친구 커플과 밥을 먹는 자리에서, 친구의 여자친구에게 친구가 쓴 시에 대한 평가를 물었다. 친구의 여자 친구는, 혼자만 몰래 간직하겠다는 현답을 줬다. 친구는 껄껄 웃었다. 그 여자 친구에게 중요한 것은 시의 수준이 아니었다. 그런 시를 부끄러움 없이 써서 주는 친구의 순수한 마음이 그녀에겐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이다.

 이렇게 부끄러움 없이 ‘시’를 내 뱉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런 용기를 쉽게 내지 못한다. 남이 볼 때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수준이지만, 자신이 읽을 땐 그걸 넘어서서 몸이 뒤틀리게 된다. 우리 중 대부분은 그것을 견뎌내지 못한다. 그렇게 하나 둘 시를 내던지게 되는 것이다. 시는 더 이상 내 글쓰기 공장에서 생산되지 않고, 나와는 먼 거리에 떨어진 행성에서 만들어지는 생산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렇게 멀어진 시 쓰기의 추억을 되살릴 수 있도록 산소호흡기 하나를 달아주려고 한다. 내가 예전에 문장을 연습할 때 썼던 방법으로 나쁘지 않은 시 한 편을 쓸 수 있는 방법이다. 이것은 시 쓰기 방법이기도 하고, 풍부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훈련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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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흐름을 이용한 문장 쓰기

 우선 첫 단계로, 닥치는 대로 문장을 쓴다. 각각의 문장들은 인과 관계가 없어도 된다.(이것이 중요하다) 아무 문장이나 써내려 간다. 아주 빠르고, 많이 쓰는 게 중요하다. 쓰다보면 특정한 사건이나 시간에 주목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 상황과 관련된 문장을 쓰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문장 사이에 인과 관계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글쓰기를 어렵게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문장을 쓰면서 동시에 문장들을 어떻게 배치하고 일정한 인과 관계에 따라 조합할까를 고민하기 때문이다. 그 어려움을 배제하고 오로지 ‘문장’에만 집중한다. 이건 일정한 주제를 놓고 무의식적으로 써나가는 프리라이팅과도 좀 다른 훈련법이다. 프리라이팅의 단위는 ‘문단’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하려는 것은 ‘문장’ 단위의 훈련이다.

 이 문장들을 어색하지 않고 쉽게 써내려가려면, ‘구어체’로 쓰는 게 도움이 된다. 말하듯 쓰는 것이다. 예전에 실제로 썼던 문장쓰기를 한 번 정리해보겠다.

-같은 그림 앞에 섰을 때 내 심장은 뛰었어.
-당신도 아마 그랬을까. 아마도, 당신이 나를 쳐다보며 미소 지은 것을 보면.
-둘 다 낯선 도시, 생경한 시간 속에 있었던 거지.
-다시 올 수 없는 시간으로 만들고 싶었던 거야.
-차를 마시고 밥을 먹고. 책을 고르고 약속을 하고.
-시간에 맞춰 일어났어. 일상의 질서, 잠시 꺼두었던 질서가 살아난 거야.
-소극장 앞에서 다시 당신을 봤을 땐, 오랜 친구처럼 느껴졌지.
-폴 오스터를 얘기하고 스티븐 킹과 에리히 프롬을 말했지.
-서로를 존중할 줄 알았고 조심스럽고도 편안하게 이야기했어.
-자주 웃으며, 그 시간이 특별하다고 느꼈지.
-시간이 멈추길 바라면서, 석양을 바라보고, 밤이 오는 걸 보았지.
-반짝이는 불빛 사이로 보이는 당신의 두 뺨은 하얀 복숭아처럼 빛이 났어.
-여름밤은 길었고 끝도 없이 이어져 우주 끝에 닿았지.
-로맨틱한 상상. 여름 밤. 대화. 그림. 불빛. 그리고 웃음.
<도서관에서. 2013. 7. 30.>

 위의 문장들은, 일정한 사건을 가리키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두 세 개의 경험이 뒤섞여 있다. 문장들을 하나의 주제로 꿴다면 ‘그녀를 만난 순간’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문장 쓰기의 최대 장점은, ‘구체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삶의 경험, 실제 상황이 보다 쉽게 표현된다. 구체성이 확보된 문장은 생동감이 있다. 우리가 처음부터 긴 글이나 시를 쓰려고 하면, 아주 관념적인 문장에 갇히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구체성이 확보된 문장은, 시에 사용하기에 더없이 좋은 재료가 된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서, 이렇게 만들어낸 문장들을 재료로 삼아 詩로 요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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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들을 연결하여 시로 구성하기

 글쓰기 공책의 다른 페이지를 열어, 또 다른 날에 쓴 문장들을 보자. 이 문장들을 조합하여 시로 구성해보겠다.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담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
-어떻게든 분노할 핑계를 찾고 있었던 건 아니지.
-어머니는 믿음을 다시 붙잡게 되었지.
-하나의 그림자 위로 하나의 큰 빛이 비추었던 거야.
-아픈 사람들이 저마다의 아픔을 부여잡고 힘겹게 움직였어.
-아픈 이들은 마음의 한 겹을 벗어던진 듯 연약한 마음의 속살을 드러내었어.
-아픈 이들은 서로를 누구보다 이해하기에 그 아픔을 공유할 수 있었어.
-지켜주소서. 보호해주소서. 붙잡아주소서. 어떤 위험도 일어나지 않게 해주소서. 회복시켜주소서. 내가 할 수 있는 기도의 전부였지.
-흔들리는 눈빛을 붙잡아주시고 강건하게 하소서.
-할머니는 누워서 미안해했어. 하루 종일 미안해하는 것이 일이었지.
-눈치만 늘었던 거라고. 그래서 그런 거라고.
-웃을 수밖에 없는 슬픔.
-수술실로 들어갔어.
-머리칼은 다 잘라낸 상태였지.
-머리칼 없는 머리가 부끄러워 가리려고 애썼어.
-가발을 사야겠다고. 부전 시장에 파는 곳을 안다고 했어.
-가발은 금방 표가 난다는 얘기도 덧붙였지.
-수술 후에, 없는 머리칼을 어떻게 가릴 건지 고심하는 것이 다행이다 싶었어.
-수술 후 걱정할 것이 잘린 머리칼을 가리는 일 뿐이라면 최선의 결과일 테니까.
-그렇게 되리라 믿어. 그 걱정뿐이라고.
<2013. 12. 20.>

 문장들 사이에는 일정한 인과 관계가 없다. 다만, ‘어머니가 수술실로 들어가는’ 상황만 있을 뿐이다. 이 문장들은 어머니가 종양 수술을 받으러 들어간 후, 보호자 대기실에서 써내려간 것이다. 무엇으로도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걱정과 두려움이 내 마음을 파고들었다.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그 상황의 문장들을 기록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이 문장들을 가지고 시로 구성해보겠다. 문장들은 2013년에 쓴 것이지만, 시로 구성하는 것은 바로 지금이다.


바뀐 기도


어머니의 머리칼은 다 잘라낸 상태였다.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어머니의 유일한 걱정은,
수술 후 없는 머리칼을 어떻게 가릴 건지였다.

어머니를 데려가려고 수술실 간호사가 다가오자,
어머니는 웃으며 내게 말했다.
가발을 사야겠다. 부전시장에 파는 곳을 안다.

지켜주소서. 보호해주소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기도였다.

어머니의 걱정을 듣고 바뀐 기도를 올렸다.
잘린 머리칼을 가릴 걱정만 하게 하소서.

-2018. 3. 6.



 2013년에 썼던 문장들을 조합하여 지금 시로 써보았다. 의식의 흐름대로 문장을 쓰고, 그 문장을 재료로 하여 시를 쓰면 나쁘지 않은 시를 쓸 수 있다. 그 이유는, 앞서 밝힌 바와 같이 긴 글을 염두해두지 않고 쓴 문장은 구체성이 부여되며, 생동감을 갖게 된다. 이 문장을 재료로 하여 ‘조합’하는 별도의 공정을 거치면 나쁘지 않은 詩를 얻을 수 있다.

 쉽게 말해, 이것은 시를 쓸 때 거치는 두 개의 공정을 분리해서 작업하는 방식이다. 숙련된 시인은 두 개의 공정을 동시에 하겠지만 이것은 두 배 이상의 감각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이 방법은 어떤 작법서에도 소개되어 있지 않은, 나만의 고유한 시 창작 방식이다. 물론 매번 시를 쓸 때 이 방법을 활용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경험적으로, 먼 행성의 글쓰기 공장에서나 생산된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시작하는 한 걸음을 떼기에는 무척 좋은 방식임에는 틀림없다.

 봄에는 詩다. 한걸음을 내딛어 보자.



‘지극히 주관적이고, 가끔은 객관적인’ 문학적 글쓰기 강좌는 계속 됩니다.

[문학적 글쓰기] 연재목록

(다섯 번째) 글쓰기 프로세서- 입력에서 출력까지의 과정
(번외편) 극한 글쓰기
(네 번째) 글쓰기의 소재 찾기
(번외편) 글쓰기의 절대 고수
(세 번째) 글쓰기 필터와 논리적 구성에 대하여
(두 번째) 글쓰기와 구체성
(첫 번째) 글쓰기와 문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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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배워갑니다...우왕
'시'라고 하면 겁부터나요. 그냥 늘여쓰고 풀어쓰고 있는 대로 다 쓰는게 속이 편해요. 시론시간에 교수님 앞에서 '저는 시를 좋아하지 않습니다'이야기 했다가...저로 인해서 단체로 소리....들었던 적이 있지요...(으악 제가 너무 생각없이 말했었다고 반성한답니다...) 시를 쓸 때도 일단은 닥치는 대로 문장을 써도 된다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함축적인 의미를 담아 그 의미를 담는 적절한 어려운 말을 써야 할 것 같다고 늘 강박이 있는 것 같아요. 시...도 한 번 잘 써보고 싶답니다^^;; 여러번 더 읽어봐야 할 것 같아요.

네 처음부터 대단한 시어를 구사하려고 하는 그 부담이 시로부터 멀어지는 지름길인 것 같습니다. ㅎㅎ 교수님에게 대놓고 그런 말을 하시다니, 대단한 배짱이시네요.ㅋㅋ 그런 배짱이라면, 생생한 문장을 마구 늘어놓는 일도 어렵진 않을 거 같은데요?
소설 다음엔 시도 도전해보시길요!! ^^ㅋㅋ

방금 스팀잇의 대표 시인 중 한 분인 마담 플로르님 글에 댓글 달고 왔는데 여기서 또 시를 만나는군요. 봄바람 휘날리며... 저는 이만 총총.

저도 방금 마담님 집에 다녀왔어요.ㅎㅎ 오가는 길이 비슷하군요. 김작가에, 김반장 역할까지- 봄바람 맞으면서 여기서 번쩍 저기서 번쩍! ^^

두 분이서 제 이야길 하고 계셨군요ㅎㅎ
어쩐지 귓볼이 간질간질 하더라^^

역시 시인이시라 그런지 예민하시군요.ㅎㅎ

저는 생각나는 문구가 있으면 그냥 적었다 나중에 정리해서 올리곤 했는데 한걸음은 뗀거네요😊😊

네 문구든 문장이든 기록해두는 습관 좋습니다.^^ 나중에 거기서 좋은 발상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요.ㅎㅎ

👨 어렵게만 느껴졌는데, 설명 들으니 쉽게 느껴지다가도 또 저렇게 의식의 흐름대로 구어체를 쓰는 수준도 쉽게 되진 않고, 그냥 그렇게 포기하기엔 겨우 3월이고 여린 새싹도 겨울을 이겨내 기지개를 펴는데 해봐야겠죠? 소중한 방법 잘 받아갑니다~

헤헤. 뭐든 연습이 필요한 법이죠. 평이한 말로 죽 문장을 나열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거예요. 그것부터 시작이죠.^^ 봄에 어울리는 시, 도전해보세요.ㅎㅎ

저는 가끔 읊조리는 사람들의 말 속에서도 시를 듣습니다.
단지, 시를 써내지 못할 뿐 모든 사람에게는 '시심'이 있는 듯합니다.
그런 모든 사람들에게 작가님의 이 시쓰기에 관한 글은 큰 도움이 되겠어요.
물론 제게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맞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시심이 있지요. 무심코 주고 받는 말 속에서도 시적인 문장이 있지요. 그걸 잘 캐치하는 게 시적 감각이 발달한 사람인 것 같아요. 뭐든 새로운 건 없지요. 기존에 있는 걸 새롭게 표현하는 것일 뿐.^^ 도움이 되었다니 기쁩니다.ㅎㅎ

감탄.... 너무 좋네요...
어찌보면 문학적 패치워크 작업이네요.
방법론적 접근에 들어간... 예시가 슬프면서도 멋집니다.

글쓰기에 대해, 시 쓰기에 대해 감사합니다 :)

네 대단한 방법론은 아니고, 다만 제가 훈련하면서 얻어낸 것들을 정리한 것에 불과하죠.ㅎ
어머니의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잘 지내시니 슬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ㅎ

아! 시는 어려워요! 읽는 것도 쓰는것도 집중력을 요구하는 작업인것 같아요... 이 봄엔 쏘울메이트님의 시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건가요?

봄에 썼던 몇 편의 시를 선보이려는 마음을 먹기도 했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어요.^^ 어려운 시는 과감하게 패스하면 됩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듯이 편안하게 접근하면 좋지요.ㅎㅎ

저돌적으로,
의식의 흐름대로,
손발이 오글거리게,
닥치는 대로,
부끄러움 없이....

쓰는 詩의 대표가 저의 詩 같네요.^^

마담님의 저돌적이고, 오글거리고
닥치는대로 내뱉는 그런 글들을
더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
앞으로도 멋진 시들 기대하겠습니다.ㅎㅎ

짱짱맨 태그 사용에 감사드립니다^^
짱짱 레포트가 나왔어요^^
https://steemit.com/kr/@gudrn6677/3zzexa-and

감사합니다. 짱짱!! &^^

이런 식으로 시를 쓸 수도 있군요. 저도 시에 도전을... -_-;; 시는 어렵게만 느껴져요.

네! 봄이니까, 도전해보세요.^^ 꽤나 괜찮은 방법입니다. 브리님이라면 금방 하실 수 있을 듯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