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15] 비로소 보이는 것들
연어입니다. 오늘은 꽤 오래전 이야기를 하나 해드릴까 합니다.
한참 벌여놓은 일이 잘 안 풀려갈 때였을 겁니다. 큰 돈은 아니었지만 자본금이랍시고 쏟아 붓느라 자금은 고갈되었고 하루하루 버텨가기 급급했지요. 마침 무더운 여름이었는데, 어딘가 길을 걷다가 갑자기 심한 갈증을 느꼈습니다. 그즈음 서울에 에디야(EDIYA)같은 테이크아웃점이 막 생겨났었는데, 평소 커피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달달한 휘핑크림이 얹어진 아이스 카페모카 정도는 가끔 마시곤 했었지요. 그 때도 폭염 속을 거닐다 어느 에디야점 앞에 멈춰선건데.. 지갑을 열어보니 달랑 천원짜리 한 장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게 책상 위에 굴러다니던 동전들 좀 빼곤 저의 전 재산일지도 모를 상황이었습니다. 아.. 그깟 시원한 아이스 커피 한 잔 생각때문에 머리만 더 복잡해지는가 싶어 냉큼 빨간 (그때는 천원짜리가 붉은 색이었지요) 천원짜리 한 장을 꺼내들고는 에디야 옆에 있는 마트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천원짜리 까페오레를 사들고 나왔지요.
삼천원 쯤 되는 테이크아웃 커피를 단념하고 어쩔 수없이 대용으로 고른 것이 까페오레였습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더위에 지쳐있던지라 시원하게 마실법도 했지만 제 기분은 여러분이 짐작하실만한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왠지 처량하기도 하고.. 궁상떠는 것 같기도 하고.. 어쩌다 일이 안 풀려 이렇게까지 되었나 싶기도 하고 말이죠. 하지만 그 땐 나름 혈기 왕성한 20대였고, 모든건 제가 선택하고 저지른 일이니 후회같은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더군요.
전 가끔 이 때 일을 생각하고 합니다. 날이 너무 무덥거나.. 간혹 일이 잘 안 풀려 끙끙대거나.. 우습게도 여전히 버티고 있는 이디야 까페를 볼 때도, 간혹 편의점에서 까페오레를 집어들때도 말이죠. 헌데 생각해 보면.. 전 삼천원 짜리 이디야 아이스 카페모카나 천원짜리 까페오레나 하등의 상관없이 잘 마셨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 만큼은 천원의 까페오레에 처량함과 상실감을 느꼈던 건... 바로 지갑에 있던 천원짜리 한 장 때문이었을 겁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 천원으로는 까페오레 밖에 선택할 수 없다는 상황과 그 마저도 지금 이 돈으로 커피를 사 마셔도 되나 싶은 암담한 현실에 마음이 울적했던 것이지요. 만약 지갑에 돈 십만원 정도 넉넉히 있었다면, 단 돈 천원짜리 까페오레라 하더라도 제게 지극히 높은 만족감을 주었을겁니다. 결국, 저의 심리를 뒤흔든 건 ...
커피의 가격이 아닌 지갑 속 사정이었던거겠죠.
투자는 분명 멘탈의 영역입니다. 돈 놓고 돈 먹는 곳이지만 한 단계 위의 강한 멘탈을 요구하는 것이죠. 투자에서 실패한다면 그것이 대상을 잘 못 고르고 타이밍을 잘 못 잡은 이유도 있겠지만, 찬찬히 되짚어보면 멘탈에서 무너졌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헌데 우리는 이 영역을 너무 간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너무 쉽게 생각하는지도 모르죠.
뭔가 예상대로 잘 안 풀리고, 일정 기간내 실적에 쫓기다 보면 슬슬 멘탈이 무너질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앞에 얘기한 저의 에피소드로 빗대어 본다면, 저는 그냥 무더위에 시원한 것이 마시고 싶었을 뿐이고, 지갑엔 천원이라도 있었고, 다행히 그 천원으로 마실 수 있는 시원한 음료가 있었고, 저는 그 자금을 이용해 제게 큰 효용을 줄 수 있는 물품을 구매했을 뿐입니다. 팩트는 그렇지요. 하지만 여기에 멘탈이 작용하게 됩니다. 천원이 아니라 천원 밖에 없다는 사실.. 그것도 더 끌어올 여력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저 자신을 무너뜨릴 수도 있었습니다. 이디야 커피 한 잔 앞에서.. 천 원짜리 한 장 앞에서.. 부정하고픈 상황과 냉엄한 현실의 무게 때문에 말이죠. 저는 이런 상황이 지금의 우리 앞에 놓여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코인 투자에 들어간 자금이 제자리로 돌아온 정도면 다행이겠지만, 고점대 투자를 시작하여 오랜기간 물리신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비단 돈의 문제 뿐만은 아닙니다. 투자에 들인 많은 시간과 노력, 기회비용 등을 생각하면 답답한게 한 두가지가 아니겠지요. 하지만 여러분께 제안한다면.. 우선 여러분이 느끼는 고통과 답답함이 투자한 대상 자체에 있는 것인지, 투자와는 별도로 놓여진 현 상황 때문인지를 구별해 보셨으면 합니다. 물론 두 가지가 다 얽혀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가능하다면 두 가지를 구분해서 생각하는 방법을 생각해 봤으면 하는거지요. 지금 나를 괴롭히고 있는게 천원짜리 까페오레인지, 지갑안에 있는 천원인지를 구분해 보자는겁니다.
만약 투자 대상 이외의 문제로 곤혹을 치르고 계시다면, 이 참에 해결해 나갈 방안을 마련해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투자 대상 이외의 문제로 투자 자체가 흔들리면 투자 활동을 오래 끌고 갈 수도 없고, 설령 좋은 상황으로 바뀐다 하더라도 그 혜택을 흠뻑 만끽하기 어려워지는 법이지요. 마음이 조급하게 되면 오랜 기간 큰 손실을 감당해 놓고도 기껏해야 본전에 털어버리기 마련입니다. 원래 원했던 성과는 어디로 가버리는 것인가요? 시장은 분명 수익까지 챙길 수 있는 기회를 줄 수도 있는데 말이죠. 결국 투자 대상의 성과 부진이 나의 약점을 파고든 셈이나 마찬가지겠지요.
만약 우리가 투자 대상 이외의 상황을 잘 컨트롤하고 제어할 수 있게 된다면, 그제야 진지하게 투자 대상 본연의 상황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 문제가 없는 것인지, 한시적으로 어려움에 있을 뿐인지, 뭔가 상황이 바뀌어 투자 대상으로서의 매력이 사라져 버린 것인지.. 이 내용에 집중하고 결정을 내린다면 나중에 어떤 결과가 오든 후회는 없을 겁니다. 미련도 적겠지요. 지갑 안에 천원 밖에 없든 백만원이 있든.. 그런 상황을 제외하고 온전히 까페오레의 맛에 집중하자는 겁니다. 그래도 까페오레가 시원하고 맛있는 음료라는 생각이 든다면 설령 천원 밖에 없는 지갑을 들고 나가더라도 이런 마인드는 가질 수 있겠죠.
"천원밖에 없지만, 언제든 이 천원으로 맛있는 까페오레를 즐길 수 있다구!"
많이 힘든 시즌이지만, 기회는 다시 올 것입니다. 그저 잘 이겨내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지금은 멘탈 싸움의 영역이니까 말이죠.
- 2018.09.15 연어 -
역시 또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글 잘보고 갑니다^^
저는 요즘 이게 뭔가 싶은 생각이 있어요. 이더 138만에, 이오스 2만에, 과연 미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ㅠㅠ.
아 다르고 어 다르고
물이 반밖에 물이 반씩이나
관점의 차이가 이렇게 극명하게 달라지는군요;;;
잘 보고 갑니다.
모든게 마이너스를 가르키고 있지만 기다려봅니다^^
그러네요. 기다려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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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도 스팀잇 생태계가 좋았고ᆢ
스팀이라는 암호화폐라는건 쉽게 망하거나 끝나지 않을거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작은 금액이지만 스팀에 대한 투자를 했죠^^
지금은 블록체인에 기반한 SNS인 스팀을 공부한 걸로도 만족하고 있어요.
카페오레의 맛에 집중하듯 스팀의 즐거움에 집중하고 있는 중입니다.
졸은 글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글에서 힘을 얻으시면 좋겠습니다.
맞습니다. 위기에 사야죠
ㅎㅎ 지금 이 시기에 필요한 얘기 들려주셨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