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다는것 과 인간 소외, 편의점 인간을 읽고,
소설은 주인공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 편의점 안에서 일어나는 매우 일상적인 몇 가지 업무에 대한 묘사로 차분하게 시작됩니다. 누구나 편의점이 어떤 곳일까 하며 머리 속에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그런 반복적이지만 나름 어떤 규칙을 가지고 고객에게 의미있는 몸짓으로 투영될 수 있는 작은 노력들 같은 것들 말이죠.
통상 우리가 편의점을 찾으면 사장님을 제외하고는 매번 얼굴이 바뀌는 학생들 또는 전업주부들이 용돈 및 학비를 벌거나 학원비 및 반찬값을 벌기 위한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 편의점, 바로 이곳에서 유별난 아니 다소 이해하기 힘든 삶을 행복하게 아니 삶의 유일한 도피처로 여기며 살아가는 한 여자 (후루쿠라 게이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소설의 성격은 마치 밀착취재를 하는 다큐멘터리와 같은 느낌을 주는데, 다 그러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소설을 읽을 때, 마치 영화를 찍듯이 머리 속에서 연상을 하며 글을 읽는 편인데, 여자 주인공과 이상한 동거를 하다 결국 돌아서는 남자 역에 왠지 이광수가 떠오르는 건 제가 아이들 덕에 런닝맨을 많이 봐서 인 것 같아요.
주인공의 삶이 평범하지 않음은 아주 어릴 적, 유치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몇 가지 사례?들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써 받은 강렬한 충격이 커서 혹시나 내 아이가 이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두려움이 밀려 들어왔습니다. 그저 이 아이의 대응이 일반적이지 않아서 일까요? 아니면 내가 틀에 맞는 대답을 원해서 일까요? 한번 보시죠.
이거 먹자, 더 잡아올까?
유치원에서 부모와 소풍을 간 자리에서 죽은 새를 본 주인공은 다른 아이들이 슬퍼서 울고 있는 가운데 “아이구, 불쌍해라, 묻어주자” 라는 엄마에게 갑자기 “이거 먹자, 더 잡아올까?”라는 대답을 하고 마음 속으로는 집에 가져 가서 요리를 하면 아빠도 꼬치구이를 좋아하고 나와 여동생도 닭튀김을 좋아하는데, 왜 묻어버리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라는 독백을 남깁니다.초등학교에서의 기행?
이 후,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에 같은 반 남자아이들이 주먹다짐을 하는 중에 “누가 좀 말려봐”라는 말을 듣고는 도구함의 삽을 꺼내 한 아이의 머리를 후려쳐 버린다. 놀란 아이와 선생님에게 주인공은 “말리라고 해서, 가장 빨리 말리는 방법으로 말렸어요” 라는 대답을 한다.
잊을만 하자, 이번엔 한 여자 선생님이 히스테리로 무겁게 분위기를 만들자, 아이들이 하나씩 울면서 잘못했다고 이제 그만해달라고 해도 선생이 받아들여 주지 않자, 주인공은 앞으로 나가 선생님의 치마와 팬티를 끌어내려 버립니다.
이렇듯 확실히 평범하지는 않은 주인공의 가정은 온화한 은행원 아버지에 여리고 상냥한 어머니와 주인공을 잘 따르던 여동생으로 구성되는데, 겉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는 가정으로 이후에도 부모는 꾸준히 애정을 쏟으며 양육을 하지만 아이는 더 이상의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 뿐 대인관계를 거의 하지 않은 채, 중, 고등, 대학교를 진학하게 되는데. 이때, 처음으로 새로 오픈하는 편의점과 아르바이트의 인연을 맺게 됩니다.
편의점을 세상과 접하는 유일한 한 점으로 여기고 자신을 근무수칙에 맞게 꾸준히 훈련시켜 나름 유능한 점원으로 활약?하게 되고, 근무 외의 시간에도 내일의 근무시간을 위해 마치 로봇과 같이 노력하고 자기 취면을 걸 듯 항상 머리 속은 편의점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비로소 겉으로 보기에는 정상적인 세상의 한 부품이 된 것에 감사하며 삽니다. 우연한 계기로 18년을 다니며 8명의 점장을 내보내며 터주대감 노릇을 하던 편의점을 그만두고 다른 세상에 도전하게 되지만 마지막 결정의 시간에 잠시 들른 편의점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18년 전에 처음으로 편의점에 들어서면서 다시 태어났고 그러니 태생부터 편의점 인간임과 편의점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될 수 없음을 각성**하며 또 다른 세상으로의 도전을 멈추어 버립니다.
나는 주인공을 보면서 이 세상이 여러 개로 나뉘어져서 게이코와 같은 사람들이 모여 살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 곳에서는 가면을 쓰고 살지 않고 자기의 의지대로 살 수 있을까? 그렇다면 지금 이 곳에서는 자기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생육당하는 것은 아닐까?
주류와 비주류, 흔히들 우리가 많이 갖다붙이는 말이긴 한데, 이 소설은 보다 더 깊숙히 사회에 숨어 있는 보이지 않는 비주류에 대한 드러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확대한다면 여성은 여자다워야,남성은 남자다워야, 때가 되면 해야 하는 많은 성취들, 즉 취직, 결혼, 육아, 내집 마련 등의 기본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패로 인정받고 당당히? 살아간다는 걸 시사하는 것 같아요. 우리도 주변에 위와 같은 기본 요건?의 충족이 늦은 친구들을 보면서 혹시나 "편의점 인간"같은 비주류로 여긴 적은 없을까요?
열심히 살지 않음이 아니라 우리가 기준으로 삼고 있는 삶의 형태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사람들을 우리는 우리 편으로 보지 못하고 있는 실수를 간혹 합니다. 최근 청년 취업의 어려움에도 어르신들은 그들이 열심히 살지 않음을 탓하시곤 한다. 우리세대가 자소서를 10번 썼다면 그들은 500번은 썼을 텐데도, 변하는 시대의 흐름과 각인된 인식은 여전히 높은 벽일 것입니다.
지금은 중2인 첫째가 어릴 때, 장애가 있는 친구를 보고는 “아빠, 나 좀 무서운 데 친구가 될 수 있어?”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다행히 이전에 귀 동냥한 것이 있고 공감이 되는 말을 기억해두었던 터라 “아니, 무서운 게 아니고 우리와 조금 다른 것 뿐이야. 잘 지내봐” 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나와 다르다 라는 것이 신체를 떠나 생각, 정신 등 인지의 방식에도 다름이 존재한다. 우리는 이런 다름을 과연 얼마나 수용할 수 있고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얼마 전에 읽은 일본서적 “인간증발” 또한 비슷한 인간소외에 대한 문제를 담고 있었어요. 한 해에 3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 일본,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한 해에 8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흔적이 없어지고, 연기처럼 증발하고 있는 현실은 일본 만의 일이고 우리는 과연 자유로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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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릴 때 일입니다. 저에게는 발달장애가 있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를 다르다고 표현하는 사람이 많았죠. 모자라다고 하는 것보다야 다르다고 하는게 백배는 나은 말이겠지만, 그 말을 좋아하긴 어려웠습니다.
나와 너, 우리와는 다른 존재를 대하는 태도는 결코 평등하지 않더라구요. 나와 너, 우리는 제각각 다른 인간임이 자명한데, 특별히 '다른' 누군가를 설정하는 것으로 집단을 형성하고 배타적인 본성이 드러나곤 하더라구요. 혹 배려를 하더라도 "누구에게나 배려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순수한 배려가 아니라, 동정에서 나오는 배려에 가까웠죠.
@bigman70님께서 자녀분에게 하신 말씀이 그르다는게 아니라 개인적인 경험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다르다'는 표현에서 차별이 시작된건 아니겠지요. 굳이 다르다고 표현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무리 짓는걸 좋아하고, 무언가 자신들과는 뚜렷하게 다른 성질을 가진 그 친구를 배척하거나 동정했을테니까요.
네 실제로 그 친구와는 친구가 되었고 학교마치고는 집까지 데려다 주는 역할을 스스로 자원했더군요. 그러기를 2년, 그 친구는 타지역으로 이사를 갔지만 지금도 연락은 하더군요. 이후에 아이와 추가로 이야기를 하면서 다르다 라는 것이 우리와 같지만 조금 불편할 뿐이다로 정정되었었죠. 맞습니다. 동정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는 배려가 가장 핵심인 것을 잘 느낍니다. 항상 주의깊게 세밀하게 살펴야 할 부분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부모님들의 간섭?이 더 튼 영향을 주었던 것 같아요. 아이들끼리는 잘 지내는 데....휴가는 잘 다녀오셨나요? 다시 뵈어서 반갑습니다.
예.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오늘부터 여행기를 연재하려고 합니다.
써주신 두 가지 상황을 읽고 많이 당황했습니다. 저런 아이가 교실에 있다면 정말 당황스럽겠구나 싶었는데 거슬러 올라가보니 저도 어렸을 적에는 현재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 적이 있던 게 떠올랐어요. 이해 불가라는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비도덕적이라고 여겨질만한 행동을 하기도 했죠. 저에게는 그 때는 왜 그런 행동을 했고, 지금은 그러지 않는걸까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글이었어요.
그래요? 그게 다 몰라서 그런 거 같아요. 아는만큼만 준비해서 학교로 나서는데,,
어떤 방식으로 각인되었는지 모르지만 다 자기만의 생각이 있고 그 생각이 미리 공유되지 않는다면 규범, 규칙 등에 반하는 일은 언제나 생기겠죠. 보통은 속으로 그 모난 모서리를 둥그스럼하게 만드는데....그 방식이 외향적인 아이도 있죠.
어느 정도는 다 일정부분 생육당하는 것이 아닌지? 저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조직과 사회라는 이름으로,,,,,,
특이한 상상력으로 채워진 책인 것 같습니다. 특히나 어릴 때 했던 행동 묘사에서는요. 리뷰 잘 봤습니다.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