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이 곧 실천이다
오늘은 반가운 이를 오랫만에 만났습니다. 하이텔 시절 '대학원통신동호회'라는 곳에서 만났던 지인입니다. 만난 장소는 페이스북입니다. 무척 반갑게 옛 인연을 회고하면서, 그 무렵 제가 썼던 에세이 하나를 언급했습니다. 무척 열심히 공부하던 경제학도였는데, 지금은 공직자로서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위해 열일하고 있습니다.
생각난 김에 제가 아끼던 그 에세이를 스팀잇에 공유하고 박제해 놓겠습니다.
이론이 곧 실천이다 - 인문학과 실천학
아마도 이론과 실천 사이의 갈등은 오래된 만큼 반복되는 고민거리일 것이다. 그러나 이론과 실천 사이의 갈등은 가짜 문제로 인한 갈등이며, 따라서 폐기되어 마땅하다. 이론은 논리와 말 차원에서의 전투이다. 새로운 논리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말을 창조하는 것, 그것이 이론의 작업이다. 심정적으로는 반감이 가지만 대세로서 힘을 행사하는 담론들을 접할 때,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 담론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담론을 만들어 경합시켜야 한다. 이론은 다른 이론하고만 싸울 수 있다.
이론이 현실적인 폭력 앞에서 무력하다는 점은 판을 달리하는 문제이며, 논의를 잘못된 방향으로 뒤트는 언사이다. 현실적인 폭력 앞에서는 이론만 무력한 것이 아니며, 아주 많은 것들이 무력하다. 괜히 이론의 약함만을 강조하지는 말지어다.
다른 한편 이론은 이론가의 삶의 실천이 빚어낸 산물이다. 이론가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이 이론 창조요 이론적 전투이다. 어부에게 농사를 못 짓는다고 탓하는 것은 범주 착오이다. 사람마다 각기 사는 자리와 사는 방식이 다른 것이다. 이론가는 언어라는 무기를 쓰는 사람이며, 자기 영역에서 얼마나 잘 해내느냐 하는 점만이 시금석일 뿐이다.
더구나 이론은 그 자체로 정치적 장이다. 만약 이론이 정치적 실천과 무관한 영역이라면 이론에 대한 검열이 존재했을 턱이 없다. 다른 예를 통해 보자면, 아직도 일부 우둔한 사람들은 예술과 현실이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삶을 한 번도 진지하게 돌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책, 문학, 회화, 음악, 조각, 건축, 연극, 영화, 디자인 등을 빼고 우리 삶의 자리를 바라보면 과연 무엇이 남겠는가? 추상적인 얘기가 아니다. 쉽게, 솔직하게 생각하자. 잠은 어디서 자고 밥은 어디서 먹을래? 이론의 경우도 예술과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생각의 싸움이며 가치관의 싸움이다. 의미와 가치를 떠나 삶을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싸움은 자기가 속한 구체적 영역에서만 행해질 수 있다. 바깥을 핑계로, 바깥에 ‘있는’ (다만 상상적으로만 있는) 더 중요한 무언가를 핑계로, 자기 자리를 방기하지 말자. 내가 몸 담고 있는 인문학의 자리에서 보자면, 나쁜 글과 말도 안 되는 번역의 범람이 가장 위험한 사태이다. 인문학이란 자기의 삶을 언어로 써내는 작업이다. 인문학도에게 삶과 언어 바깥에 더 중요한 것이란 없다. 따라서 삶과 언어에 성실하다면 불성실한 글과 번역이 나올 수 없다. 이 경우 결과는 원인을 정확히 함축한다. 그런데 요즈음 글과 번역의 불성실함이 많이 눈에 띈다. 기만과 불신도 만연해 있다. 파시스트의 방식으로 혁명을 말할 수 있을까? 독재자의 방식으로 민주를 말할 수 있을까? 내용만 좋으면 문체와 번역은 좀 나빠도 된다는 안이한 태도가 인문학적 글쓰기의 위기를 초래하고 또 결국엔 인문적 삶의 위기로 이어지는 것은 필연이다.
[이 글은 1997년 「대학신문」의 ‘대학원에서’라는 코너에 썼던 에세이를 수정한 것이다.]
이상은 @armdown ('아름다운') 철학자였습니다. 대전 KAIST에 강의 차 다녀왔는데, 오리호수의 풍광을 한 컷 올립니다. 함께 감상해 보겠습니다.
아래는 강의 시작 전에 기념 컷 하나.
끝으로 강의에 초대해주신 카이스트 우운택 교수께서 제공한 컷.
잘 읽었습니다. 그때부터 글을 잘 쓰셨네요^^
역시 철학은..공학도가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인 거 같습니다. 그나저나 "하이텔"은 머리속에 쏙 들어오네요. 잘 읽었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지금도 말장난이라 무시하는 분들 많지만 이론이 정치의 장이란거 참 많이 공감합니다. ^^
아니 오셨으면 언질을 주셨어야죠 ㅠ
오늘 아이들을 귀가시켜줘야 해서 후다닥 서둘렀습니다. ㅈㅅ
다음에 들를 일이 있으면 사전에 꼭 연락드릴게요~
이론을 끌어다 현장에 적용해야 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실용학문을 업으로 삼는 저에게는 충격적인 내용이네요. '이론이 곧 실천이다'라는 말씀은 이론가의 입장에서 그러할 수 있다고 봅니다. 또한 그 내용에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교육자로서는 이론을 끊임없이 현장에 적용하고 실험하고 적용해야 하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아마도 이러한 의견은 몸담고 있는 학문분야가 다르기 때문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이론을 업으로 삼는 사람은 이론의 판에서 싸우는 거죠.
현장이 존재할 때는 그 현장에 맞는 실천이 있을 거고요.
특히 교육 현장은 굉장히 복잡할 거라고 봅니다.
저야 '대학'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교육을 하고 있으니, 좀 경우가 다르달까요.
"이론이 현실적인 폭력 앞에서 무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현실이 이상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현실적인 것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자는
그냥 덜떨어진 한심한 종자일뿐
이론이 무력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종자들도 단박에 때려 눕힐수 있도록
이론이 좀더 탄탄해지면 더욱 좋겠죠^^
아, 그 예시는 분서갱유나 감옥행을 가리키는 거고요,
제 견해가 아니라 사람들의 견해를 뒤집어 표현한 거예요.^^
예전에 홈페이지에서 본것 같은... 기억이 있어요. 잘 읽고 갑니다.
hellogomc님이 armdown님을 멘션하셨습니당.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연결되용~ ^^
hellogomc님의 첫 글을 쓰기 전 읽었던 5개의 포스트
이론은 곧 실천이다~ 잘 읽었습니다. 그냥 대충 그어진 선대로 사유하는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자신이 직접 생각하는게 중요하다 라고 느껴지네요~
이론이 현실적인 폭력에 대항하는 발판이 되어주기도 하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