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 책리뷰) 나의 죽음은 나의 것 / 알렉산드로스 밸리오스
죽음, 특히 말기암 환자가 자기 죽음을 선택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은이는 말기암에 걸려 죽어가면서 매우 고통스러웠다.
그리스인인 그는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는 자기 나라에 항의했다.
하지만 법제화 되어 있지 않은 그리스에서 안락사를 선택할 수는 없었다.
네델란드의 ‘조력죽음’ 단체에 문의해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선택했다고 한다.
조력죽음은 안락사와는 달리 죽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라고 한다.
늪에 빠져 들어가듯 향수에 잠겨 마침내 비통함에 심장이 찢어지는 듯하다. 그리고 생각한다. 용서할 수 없는 경박함으로 인생을 흘려보냈다고… 매순간을 충분히 음미하지도 않고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게 했다고… 나는 영원하고 무적이라고 믿고 있었던 극도의 천박함.
죽음을 선고받은 작가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우리는 왜 죽음 앞에서 이런 후회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모두 죽게 되어 있는데, 왜 평소에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일까?
반드시 죽는 인간에게 죽음이라는 것이 꼭 갑자기 닥친 불행일까?
유한한 삶은 사는 우리는 매순간 죽음을 선고받은 사람처럼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자살은 인간의 특권이다. 우리의 이웃이 자살하기 전에 느꼈을 절망과 공포, 비탄과 환멸, 이 모든 것들의 한가운데에서 피워 올린 그 용기를 나는 부러워한다. 그는 자기 생의 노예였으나 자기 죽음에서는 주인이 되었다.
나는 자살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시한부 인생인 작가는 자살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아마도 암이라는 병이 그의 삶을 고통스럽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에서는 주인이 되었다’는 말이 자살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다.
‘죽을 용기가 있으면 그 용기로 다시 살아보라’는 말을 사람들은 많이 한다. 어쩌면 살 용기 보다 죽을 용기가 더 갖기 힘든 마음가짐일 지도 모르겠다…
현대사회에서 법과 도덕률 등은 경제논리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그러니까 노인을 돌보는 비용이 많아지면 안락사 등도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슬그머니 허용될 것이라는 뜻이다.
현재 안락사를 허용하는 나라는 몇 안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시대인 현대 사회에서는 경제적인 이유로 차차 안락사를 허용하게 될 거란 내용이다.
법과 도덕 그리고 종교와 정치도 경제 그러니까 돈에는 맥을 못추는 것이 신자유주의 사상이니까…
과학과 의학이 발달하면서 평균수명은 길어지고, 돌봐야 하는 노인이 많아지면 그에 따르는 돈이 커진다.
노인이나 병자, 장애인을 돌봐야 하는 부담이 점점 커질 것이다.
그 부담이 차츰 안락사를 허용하게 될 거란 뜻이다…
책의 내용은 길지 않았다.
작가가 암을 선고받고 암의 고통을 겪으며 스스로의 죽음을 선택하기까지의 짧은 시간에 씌여진 글이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Upvoted! Thank you for supporting witness @jswit.
안락사가 허용이 됐으면 하는
1인 입니다..
나이가 먹으니 너무 오래살까 걱정입니다.. 사람 구실도 못하고 오래 살면 안되는데요
.
삶의 나의 것이듯, 죽음도 나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안락사를 찬성한다고 하더라구요.
죽음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죠~
한 번 사는 인생... 건강하게 살다가 여생을 마감하는게 제일 축복 받은 삶이죠^^
죽음은 삶과 단짝이라잖아요.
나이들면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보게되는데 하나같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듯 합니다. ^^
알 수 없는 세상이니까 그런 거 같습니다.
죽음을 선택하지 못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나의 것인데 내 것이 아닌...
좋은 건지 나쁜 건지에 대한 판단도 잘 안서는 거 같아요.
요즘 부쩍 많이 생각하긴 해요 죽음에 대해서 어떨까 하고 ..!
요즘 다들 사는 게 팍팍해서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그 즈음엔 역시 종교에 기대는 것이 어떨지... 합니다.
종교에… 그러기엔 내 자신이 너무 나약하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