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자로드] 라다크 속 공포
라다크를 걷다 보면 어디서든 개를 볼 수 있다. 낮에 그들은 그늘에 누워 시체처럼 미동 없이 눈을 감고 있다. 사람이 지나가도 신경도 쓰지 않는다. 패잔병처럼 무기력해 보이기도 하고 인생 다 산 사람처럼 세상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도인처럼 보이기도 했다. 라다크 개들은 한국에서 주로 마주치던 소형견들과 달리 몸이 크다. 시골에서 보던 누렁이나 진돗개보다도 조금 더 커서 기척 없이 가방을 치고 지나가면 흠칫 놀라게 된다.
물론 라다크에도 애완견은 있다. 지금 묵는 게스트 하우스에서는 ‘심뚝’이라는 다수의 개인기를 보유한 맹랑하고 귀여운 강아지가 한 마리 있고, 이제까지 방문했던 친구들 집 대부분 개를 키우고 있었다.
그러다 밤이 되면 개들의 시간이 된다. 밤마다 영역 싸움이라도 벌이듯이 개들은 밤새 치열하게 짖어 댄다. 숙소 창밖으로는 대여섯 마리 들개들이 가로질러 간다. 그들은 고양이만큼 빠르고 날렵하게 담을 넘는다.
라다크에서 2주가 넘는 시간 동안 라다크의 개들이 내게 준 인상은 그 정도였다. 길거리에 개가 많은데 낮에는 한량처럼 가만히 누워있다. 밤에는 맹렬하고 시끄럽지만, 문밖에 있는 별개의 존재.
라다크의 개들을 강하게 의식하기 시작한 그날은 작업을 하느라 바쁜 춘자팀을 두고 오랜만에 홀로 라다크 길거리를 나선 날이었다. 목적지는 레 왕국 근처 남걀 체모 곰파였다. 길치인 나는 구글맵에 의존해 레 왕국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에 들어섰다. 차가 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좁은 골목길 작고 귀여운 상점을 구경하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을 지나며 연신 사진을 찍었다. 오랜만에 날씨는 맑았고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골목길을 걸으며 여행하는 느낌을 제대로 내고 있었다.
어느 골목 모서리를 돌아 오른쪽으로 꺾을 때 길 위에 개 두 마리가 한가로이 누워 햇볕을 쬐고 있었다. 조심조심 걸으며 발소리를 죽였고 아무 문제 없이 그들을 지나칠 무렵, 갑자기 놀란 듯 개 두 마리가 동시에 일어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그냥 지나가는 거야.”
그들이 알아들을 리 없건만 나를 안심시키듯이 짐짓 침착한 듯 아무 일 없이 걸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뒤에서 개 세 마리가 나타나 골목길을 에워싼다. 그중 대장으로 보이는 검은 개가 대표로 경계하듯이 컹컹 짖으며 이를 드러낸 채 내 쪽으로 다가왔다. 들개 다섯 마리 vs 나약한 인간 하나. 순간 나는 문명과 동떨어진 야생의 들판 생존 경쟁을 벌이는 원시인이 된 듯한 공포를 느꼈다.
순간 유튜브에서 봤던 강형욱 훈련사의 충고가 생각났다. 사나운 개를 만나면 등을 보이지 말고 몸짓을 크게 하고 두려움을 보이지 말라고. 나는 어깨를 잔뜩 펴고 하나도 무섭지 않다고 스스로를 속이며 그들을 노려보며 몸을 피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컹컹 짖으며 위협하던 대장 개를 한참 함께 노려보았다. 그러자 그의 짖음이 잦아지는 것 같아 안심하고 조심스럽게 가던 길을 가려던 순간, 갑자기 옆에 있던 개가 엄청나게 흥분해서 짖으며 내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때는 정말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를 만큼 두려웠다. 마지막 용기를 짜내서 다시 그의 눈을 피하지 않으며 당당한 듯 어깨를 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조금씩 뒷걸음질 치며 이름 모를 신을 찾았다. 제발 따라오지 않게 해주세요. 계속 짖으며 나를 물까 말까 망설이는 것 같던 그 개는 다행스럽게 나를 포기했다. 꽤 거리가 멀어질 때까지 그들은 계속 짖었지만 더 이상 나를 따라오지 않았다. 다리가 휘청거렸다.
돌아가는 길에는 시간이 더 걸리는 사람도 차도 다니는 큰 길가로 우회했다. 춘자팀과 친구들에게 토로하듯이 라다크 개에 관해 말하니 더 무시무시한 일화가 쏟아졌다. 빨던도 양첸도 다들 개에게 물린 경험이 있었다. 압권인 건 초모의 동생인 린첸이었다. 그녀는 몇 년 전 다섯 마리 개에게 물려서 생사가 오갔고 여전히 흉터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어쩐지 그들은 큰일처럼 말하면서도 라다크에 살면서 개에게 물리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이 들렸다.
처음으로 라다크가 내가 자라 온 곳과는 완전히 다른 문법과 문화를 지닌 이질적인 장소처럼 느껴졌다. 산책길에서 보던 목줄을 매고 사람들과 발맞춰 걷던 애완견이 나의 사전 속 ‘개’의 의미였다. 그러나 라다크 사람들은 길들인 적 없는 야생의 본능이 살아있는 개들과 공존해서 살아가고 있다. 가끔 그들이 위험하게 굴어도 그들을 박멸하거나 위험을 완전히 제거해야겠다고 여기진 않는 것 같다.
그날 이후로 개만 보면 쫄보처럼 춘자팀에게 찰싹 달라붙는다. 혼자 길을 걷다가 멀리서 개 무리가 보이면 감히 지나갈 생각을 못 하고 돌아서 다른 길로 간다. 라다크에서 가장 무서운 게 개가 되다니! 덕분에 나의 사전 속 개의 의미는 확장되었다. 야생의 본능을 간직한 자유롭고 거친 무법자로.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래도 물리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17일까지 라다크에 있기로 했던 거 같은데..., 모두들 언제 귀국하시는감?
완전 다행인데 계속 무서워요 ㅋㅋㅋ 전 17일날 떠나고 다른 분들은 미정이에요 ㅋ!
Upvoted! Thank you for supporting witness @jswit.
아찔.얼마나 놀랐을까요??
놀란가슴..괜찮으신건가요?
청심환같은거좀 드시면 좋았을걸요ㅜㅜ
저도 친구랑 어느 시골길 산책중에 느닷없이 저 멀리서 개떼들이(한열마리쯤)짖으면서 달려오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얼마나 무섭던지요~~
몸 건강 하십시오^^
개가 무서워 혼자 여행하기 두려워진 ㅋㅋ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그래도 함께 있어 괜찮습니당! ㅋㅋ
헉 역쉬 우리나라에도 있겠죠;; 상상만해도 무섭네요 ㅠ
피터님도 개 이야기 한 번 올리셨던데, 그 동네 개들이 많은가 봅니다.
안 다치셨다니 다행이네요.
네 개가 지인짜 많답니다.
ㅋㅋ 건강히 안 물리고 돌아갈게요!
사실 길고양이들보다 길개(?)들이 더 무섭죠 ㅠㅠ 무니까...;;ㅎㅎ
다음에 혹시나... 라다크에 방문하게 되면
키높이 깔창이라도 신고 다녀야겠습니다 'ㅡ';; ㅋㅋㅋㅋ
개들과의 기싸움, 고생하셨어요!!ㅎㅎ
길고양이들은 보통 사람을 피해다니니까요. 어제 겁도 없는 한녀석은 달리는 차를 향해 짖으며 달려왔어요 ㅋㅋㅋ 어두컴컴한 밤이긴 했지만 너무 호전적 그자체
ㅋㅋㅋㅋ아무쪼록 정면돌파는 하지 않기로 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