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슬픈 기억
90 노모에게는 슬픈 추억 아니, 기억이 있다.
슬프다기보다는 무섭고 두려운 기억이다.
일제 강점기 때 그들의 못된 행패나 억압도 힘들었지만 육이오 전쟁통에 겪거나 본 기억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운 기억이다.
어머니의 기억 속 육이오는 낮과 밤이 두려웠고 이념이라 할 것도 없이 권세를 등에 업고 서로 죽이는 장면을 수없이 보는 것이 너무나 아픈 기억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때도 개인적으로 보기 싫은 사람이 있으면 빨갱이로 몰아 줄줄이 굴비 엮듯 하여 끌고 가서 죽였다.
그런데 그것이 한 동네에서 서로 가까이 지내던 사람은 물론 집안 형제나 친족 간에도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으며 부녀자는 물론 아이가지 끌고 가서 구덩이 속에 몰아넣고는 총질을 해 댔다는데 그 총소리가 두려웠고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너무나 안타까웠다고 하신다.
상황이 바뀌면 북한에서 내려온 북한의 앞잡이가 된 개들이 개인의 감정이 개입된 사람을 붙들어다 죽이곤 했다고 한다.
머슴을 살던 사람이 자기의 주인이었던 사람들의 가족을 죽이는 경우도 있고 가족 간의 불화로 생긴 자신의 감정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그런 일들을 많이 저질렀다고 한다.
그 당시는 신분이 평등한 사회라 했어도 요즘 같지는 않았다.
내가 어렸을 적에도 이러 저런 호칭으로 불리던 나름 양반 가문과 그네들의 농토를 붙여먹는 하인과 같은 묘지기니 하는 사람들의 신분이 존재했었다.
그래서 내 어렸을 적에도 누구네는 어떤 사람이고 뉘 집은 어떠니 늘 말조심해야 한 더거나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심지어 태생적 신분의 차이로 인해서 같이 어울리는 것조차도 마뜩해하지 않은 그런 것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아이들이 국민학교라는 곳을 다니면서 모든 국민이 평등 교육을 받으면서 사라진 신분 제도의 완성을 이룬 것 같다.
지금은 다 없어진 거 같아도 30년대 이전의 출생한 분들의 기억에는 여전히 존재하는 신분 제도였고 일제 말기의 세상과 육이오 전쟁의 기억은 아픈 기억으로 숨죽이며 간직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 아침에 걸으면서 접한 박완서 님의 겨울 나들이에도 그런 상황이 그려져 있다. 그걸 들으면서 느낀 게 이게 우리 동네만이 아니었구나 싶었다.
이제는 더 이상 우리의 땅에서, 아니 전세게 어느 곳에서든지 그런 비극은 없어져야 한다 생각한다.
전쟁은 사라지고 인간의 욕망이나 행복은 다른 방법으로 찾고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그런 걸 획책하는 사람이 등장하는 걸 보면 신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운신을 제대로 못하는 어머니가 어제는 잠자리에 들면서 오늘은 잠을 편하게 잘 잘 거 같다면서 누우시고는 흥얼 대며 노래를 다 하시는 걸 보았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어머니의 노래였다.
이제 아픈 모든 기억은 지워내고 좋은 기억만 가지고 사시면 좋겠는데 늘 하시는 말씀이 안 아픈 데가 없다는 말씀이고 그 고통을 이겨내려 진통제를 몇 개씩 드신다고 하는데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다는 현실은 늘 나의 슬픔이다.
Upvoted! Thank you for supporting witness @jswit.
저도 오늘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이념 갈등으로 몰살당한 가족과 그 후손들이 교육을 제대로 못받은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