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다큐멘타리 김승옥의 무진을 보고
거의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정리하고 글을 쓴다. 단조로운 일상의 연속이다. 그런 일상속에 간혹 부엌에 가서 커피를 담아오는 일이 유일한 일탈이다. 커피가 떨어져서 거실로 나갔다가 우연히 EBS에서 다큐멘타리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김승옥에 관한 이야기였다.
갑자기 전율을 느꼈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읽은 것이 1980년의 봄이었다. 김승옥에 관한 다큐멘타리가 40년전의 내모습을 소환했다. 그가 뇌졸증으로 고생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 벌써 10수년전의 일이다. 순천에 갈때면 순천만 문학관을 한번씩 들렀었다.
그의 모습을 보면서 인생이란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를 새삼스레 느꼈다. 무진기행을 읽었던 젊었던 나의 육신은 이제 서서히 허물어져가고 있다. 몸 여기저기에 원인모를 통증이 조금씩 생겼다 없어졌다를 반복한다.
거의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 뭔가를 하고 있는 나보다 그는 훨씬 바쁘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뇌졸증으로 실어증에 걸렸지만 살아가는 것은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다큐멘타리를 보니 그는 서울에서 거의 매주 순천에 왔다갔다하고 있으며 간혹 제주도를 방문하기도 하고 일본에도 다닌다. 그는 나보다 훨씬 더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같다.
무진기행이라는 소설을 한번 읽었을 뿐인데 그의 근황을 보면서 나의 지나간 과거를 떠올리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다. 뭔지 모르게 내 가슴 깊은 곳에 감추어져 있던 것들이 수면위로 떠오르는 것 같았다.
이제 나도 제대로 활동할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그의 삶을 보면서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좀더 치열하게 아깝지 않게 남은 시간을 살아내야 하겠다는 각오를 하게 된다.
그의 삶을 보면서 느낀 것이라고는 세상에 아무것도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지금의 이시간도 결국을 지나가고 조금있으면 아련한 추억으로 남을 뿐이다. 내가 살아온 삶은 나만의 기억으로 남을 뿐이다. 모든 것은 잊혀져 버릴 뿐이다.
무진기행을 읽었던 그때의 내가 지금 내 눈앞에 어른거린다. 삶은 이렇게 흘러가는 것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