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마이야기

in #zzan2 years ago

듀마는 어디든 항상 저만 졸졸 쫒아다니는 수줍은 소녀팬 같은 녀석이었습니다. 철없는 남동생 몽테도 챙겨주고 (가끔 짜증도 냈지만) 누나 노릇 잘 하는 조용하고 순하고 온화한 아이였어요.

'하지마' 하면 바로 알아 듣고 사고도 거의 치지 않던 무척 얌전하고 안정적인 녀석이었죠.

입양당시 유난히 눈과 눈사이가 멀어 멍때리는 모습에 반했었는데 품에 안고 밖에 나가면 귀엽다고 다들 말을 걸던 인기녀였습니다. 지능이 그리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자신보다 지능이 떨어지는 몽테를 나름 잘 인솔하고 케어하며 누나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어요. (사실 누가 먼저 태어났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그냥 듀마가 누나겠거니 하고 살았습니다.)

듀마와 몽테가 입양되고 얼마 되지 않은 미국 독립기념일날 밤, 야외에서 불꽂놀이가 한창이었는데 그 소리가 공포스러웠던지 둘다 몸을 벌벌 떨며 숨길래 정체가 무엇인지, 별거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 양팔에 한 마리씩 안고 밖을 나갔었습니다. 그순간 요란하게 터진 폭죽소리에 놀라 발버둥치던 듀마를 놓쳐 땅에 떨어트리고 말았죠. 결국 코가 바닥에 부딪혔는데 코에서 코피가 났습니다. 그때 처음 알았죠. 강아지도 코피가 나는구나... 어찌나 놀라고 미안했던지 그 이후부터 폭죽이나 천둥소리만 들리면 트라우마로 몸을 바르르 떨며 구석으로 숨느라 바빴는데 그때마다 안아주며 안심시켜주는게 일이었습니다. 소심하고 겁이 많아 늘 귀가 뒤로 접혀있던 녀석...

미국에 살던 집은 바닥이 모두 카페트였기 때문에 소변실수를 하면 뒷처리가 보통일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냄새에 민감해서 각종 세재와 청소도구가 한가득이었죠. 몽테가 주로 사고를 많이 쳤는데 퇴근이나 외출하고 돌아왔을때 소변 자국이 있으면 큰소리로 마구 혼냈어요.

게다가 꼬리를 흔들며 다가올때 제가 머리를 쓰다듬으면 자꾸 오줌을 지려서 그때마다 또 혼내기만 하니... 언젠가 부터 제가 외출하고 돌아와도 둘다 크게 반가워하지 않고 눈치만 살살 보며 가까이 오지 않았어요. 하지만 뭐 저도 개들이 달려들어서 햝고 그런걸 좋아하지 않아 그러려니 하며 살았죠. 그래서인지 우리집 아이들은 소심해서 잘 짖지도 않고 매우 정적이고 조용했어요.

가끔 손님들이 오면 개들이 왜이리 얌전하냐고 묻는데 그 와중에도 볼때마다 막 짖는 사람들이 몇 있었는데 대체 왜 그런건지 신기하더라구요. 기분나쁜 냄새나 느낌이 따로 있나?...

성격이 정말 온순하고 조용해서 제가 유독 듀마를 많이 좋아했어요. 보채지도 않도 식탐도 없고 몸도 건강해서 병원한번 다녀온 적 없고 뭐 가만히 둬도 알아서 잘 크는 손이 많이 가지 않는 효녀같은 아이였죠.

2019년 10월 31일, 몽테가 하늘나라로 떠난 날 새벽, 듀마가 분주하게 움직이며 나를 깨웠는데 바닥에 차갑게 식어 있던 몽테의 모습은 나만의 충격이 아니었나봅니다. 몽테를 화장하고 돌아온지 얼마되지 않은 어느날 새벽, 생전 처음 들어보는 듀마의 비명소리에 잠에서 벌떡 깨어 화들짝 놀라 거실로 나갔지요.

듀마가 쓰러져 있길래 저는 죽어서 줄초상 난 줄만 알았습니다. 근데 잠시 기절을 한 거였더라구요. 늘 태어날때부터 그림자처럼 곁에 있던 몽테의 부재가 뒤늦게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 같았습니다. 몸을 마구 흔들어도 의식이 없다가 몇분 후 정신이 들었는지 아무렇지 않게 자기 침대로 들어가더군요.

그 이후 분리불안장애로 마비 증상이 몇차례 더 있었는데 신경안정제를 먹이고 외출을 삼가고 계속 안아주며 다정한 말로 안심시켜 준 후 부터 다행히 증세는 사라졌습니다. 일부러 밝은표정, 목소리를 들려주고 간식도 몽테 몫까지 더 많이 챙겨주었어요.

2020년 6월, 한국으로 무사히 귀국해 새로운 보금자리로 거처를 옮긴 후 노령견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잘 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듀마도 한국에 잘 적응하며 저와 함께 잘 살아갔습니다.

해가 3번 바뀌어 2023년이 되고... 듀마는 식사는 잘 했지만 하루하루 말라가고 거동도 잘 못하기 시작했어요. 한국올때부터 양쪽귀는 잘 안들리기 시작했었는데 3월들어 백내장으로 시력도 상실했는지 같은 자리만 뱅뱅돌고 구석에 머리를 박고 구해달라고 깽깽대는 일이 잦아졌죠.

원래도 잠이 많았지만 더욱 잠이 많아진 듀마...

예전에는 컨디션이 안 좋아도 하루만 자고 나면 괜찮아졌던 기억때문인지... 자고 또 자고 자고 또 자고... 언젠가는 좋아지겠지 하며 자는 것 같아 맘이 아팠습니다.

지난 3월 24일은 듀마의 17번째 생일이었습니다. 해마다 생일날에는 가장 좋아하는 고구마도 쪄서 주고 치킨을 사주거나 달콤한 생크림 케이크도 먹이곤 했는데 그날 깜빡하고 생일을 지나쳐 버리고 말았죠. 너무 미안해서 나중에 맛난 간식 꼭 더 챙겨줄게 하고 약속했는데... 정신없이 그냥 하루하루를 지나쳐 보냈습니다.

4월이 되고 그 조용하던 듀마는 밤낮으로 매일 매일 짖기 시작했어요. 제가 안아주면 그치고 잠잠하다가도 또 수시로 고음으로 비명소리를 냈는데 저도 지난날 듀마의 비명소리에 너무 놀라 깼던 트라우마때문에 그 소리가 들릴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고 계속 듣고 있는게 참 고통이었습니다.

특히 한밤중에는 옆집에 피해라도 갈까봐 어찌해야할지 매일이 고민이었어요. 아파서 우는건지 무서워서 우는건지... 저도 잠을 설쳐 예민한 상태이고 증상이 더 심해지면 병원을 가야지 하고 있었죠.

이미 소변은 못가리고 누운 자리에서 용변을 보고 소변을 보라고 화장실로 데려가도 일어서 있질 못하니...

결국 점점 기력이 떨어졌는지 짖는 소리는 약해지기 시작했고 며칠전부터는 음식을 잘 먹지도 씹지도 못해 주사기에 물을 넣어 수분만 공급해 주고 저도 서서히 장례식장도 알아보고 떠내보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잿빛하늘에서 세차게 비가 쏟아지던 4월 5일 저녁... 힘겹게 호흡을 내뱉던 듀마는 제 품안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계속 괜찮다. 예쁘다. 잘했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듀마가 평소 좋아했던 칭찬을 반복해 주었어요. 매일 자기전에 해 줬던 잘자고 좋은 꿈 꾸라는 말도 반복해 주었죠. 듀마는 평온한 얼굴로 고통없는 그곳으로 떠나며 저와 이별을 했습니다.

듀마야. 자꾸만 너에게 못해준 것들이 생각나 너무나도 죄스럽고 미안하구나. 생명이 꺼져가고 몸이 식어가는 그 순간에도 네 이름을 부를때마다 꼬리를 흔들던 모습이 자꾸 마음을 햘퀸다.

지금쯤 몽테를 만나 신나게 뛰어다니고 있겠지? 네 생각대로 긴 잠을 자고 나니 몸이 다시 회복되었다고 기뻐하고 있을 거라 생각해. 내가 없더라도 부디 씩씩하게 기죽지 말고 몽테와 다른 친구들과 원없이 신나게 뛰놀고 있으렴.

나중에 만나면 생일날 못해준 간식 매일매일 해줄게. 부족하고 서툰 주인만나 고생만하다 간 것 같아 정말 정말 미안하다.

하루만 안봐도 미치도록 보고 싶은데... 나도 마음 잘 추스리고 늘 너희 생각하며 힘낼게.

머리 나쁜 주인에 대한 배려인지 말썽꾸러기 몽테는 '할로윈'에, 벚꽃처럼 예뻤던 듀마는 '식목일'에 무지개다리를 건넜구나. 해마다 그날이 오면 너희를 떠올리며 기도하고 미소지을게.

그동안 내 삶에 찾아와 곁에 머물러 주어 감사했고 큰 힘과 위로가 되어 주어 고마웠다. 영원히 사랑한다. 듀마야 몽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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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마와 몽테 둘이서 키위님 이야기 하며 행복하게 잘 지낼겁니다.
읽으며 마음이 많이 찡했습니다. 키위님 축복합니다.

네. 그럴거라 굳게 믿고 있어요.
상실감이 이렇게 클 줄 몰랐네요. 너무 힘들지만 잘 추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요 눈알좌 귀요미 댕댕이들은 하늘에서 만나 해맑게 뛰놀고 있을 거예요. ^^ 키위님 머리 위 낮은 하늘에서 마음껏 우당탕거리면서요. 근데 착한 애기들이니까 쪼..끔 높은 데 있을 수 있겠네요. 키위님 만세 높이 정도? ^^

처음 집사하면 지나고 나서 못해준 거만 생각나더라고요. 그래도 잘해준 게 더더 많을 거예요. 인간 중심 세상속에서 반려동물이랑 잘 살아주는 분들 보면 일면식 없는 남이라도 고맙더라고요. 고마웠어요 키위님.

건강하게 잘 뛰놀며 사고도 치고 말썽도 부리던 하루하루가 정말 제겐 소중한 순간들이었더라구요. 더 잘해줄 수 있었고 더 오래살 수 있었는데 부족했던 저를 자꾸 책망하게 됩니다. 그래도 이제 고통없는 곳에서 잘 지낼거라 믿으며 잘 보내주려구요. 감사합니다. 찹촉님.

아..... 듀마도 떠났군요?ㅠㅠㅠ
상심이 크시겠어요.
제가 보기엔 좋은 주인이셨습니다.

울집 개, 복길이도 9살인데 걱정이네요.

말씀 감사합니다. 그래도 자꾸 후회가 밀려오는 건 어쩔 수 없나봐요.
복길이도 부디 도잠님과의 행복한 기억들로만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에고.. 마음이 짠 하네요..

너무 울어서 기운이 하나도 없네요.ㅎㅎ
댓글 감사합니다. 힘이 되었어요.

이궁.. 요 예쁜 녀석들이 ㅠㅠ
듀마랑 몽테 둘이 만나서 진짜 행복하게 뛰어놀고 있을거야 ~

진짜 나도 강아지 엄청 좋아하는데,
떠나보낼 때 진짜 힘들고 슬플까봐 차마 키우지를 못 하겠음 ㅠㅠ

나도 이제 더이상 반려동물은 못 키울 것 같아.
가슴이 너무 무너지게 아퍼... T^T
고마워!!

Upvoted! Thank you for supporting witness @jswit.

듀마가 몽테 곁으로 갔구나…
보는 내내 눈물이 글썽거리네..ㅠㅠ
듀마야, 건강한 모습으로 몽테 만나서 즐겁게 뛰어놀길 바라.
키위형 맘 잘 추스리고 힘내자!!

고마워. 계속 좋은 곳으로 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많이 안정되고 좋아졌어.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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