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쓰는 육아일기 #41] 아들에게 쓰는 편지, 세 번째

in #zzan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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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저녁으로 날이 차가운데도 불구하고 외투를 입지 않으려는 너를 볼 때마다 속이 상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의학적으로 어린 아이들은 어른들에 비해 체내 열이 높다고 한다. 한창 자라나는 시기라 몸도 마음도 열(정)이 가득한 것을 알고 있기에 그냥 조용히 외투를 가방에 넣는 것으로 대신할 때가 많다. 쌀쌀한 오늘 날씨에도 어김없이 "외투 안 입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너의 투정을 건강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며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한다.

아빠는 한 달만에 헌혈을 했단다. 2주에 한 번씩 하려는 계획은 무산되었지만 내가 원할 때 헌혈을 할 수 있음이 감사하단다. 말이 나온김에 오늘은 헌혈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아빠가 헌혈을 처음 시작한 건 18살 때쯤이였던 걸로 기억한다(아마도 만 17세부터 헌혈을 할 수 있을 거다). 처음 시작의 계기는 '영화 티켓을 받을 수 있다.'는 다소 불순한 의도였다. 하지만 돈이 부족한 학창 시절에 두 달에 한 번 영화를 무료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은 굉장히 매력적인 요소였단다. 더욱이 헌혈의 집에 비치된 만화책과 무료로 제공되는 과자 및 음료는 그냥 지나치기 힘든 유혹이었지. 간혹 엄마(너에게는 용이 할머니)가 실컷 음식해 먹였더니 피 뽑고 오냐며 뭐라고 하실 때도 있었지만 헌혈을 하면 몇 가지 건강검진을 해줘서 건강상태를 확인할 수 있고, 한창 자라나는 시기라 새로운 피가 생성되어야 하는데 규칙적으로 헌혈을 하면 오히려 피가 깨끗해 진다는(?) 미확인된 논리로 설득을 시키곤 했단다. 그렇게 시작했던 헌혈 횟수가 이제는 59회가 되었더라. 군대에 가 있던 시기와 해외에 가 있던 시기를 제외하고 10여년 동안 한 것치고는 꽤 많이 한 편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꾸준히 해서 200회를 채우는 것이 목표란다.

시작은 불순했지만 어찌 되었던 누군가를 돕는데 직접 실천을 한 것 자체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어제 아빠가 헌혈을 하고 있을 때 겪었던 일도 이야기 해주어야겠다. 한참 헌혈을 하고 있는데(아빠가 한 헌혈은 혈장 체혈이라고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방법이다) 어떤 사람이 헌혈의 집으로 들어 오더니 대뜸 "헌혈하면 얼마줘요?"라고 직원에게 묻더구나. 잠시간 직원과 이야기하던 그 사람은 돈을 주지 않는다는 말에 밖으로 나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물을 열고 들어왔다. 이번에는 보상에 상관없이 헌혈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처음에 아빠는 별 희안한 사람이 다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생각을 고치고 그 분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그 분의 목적이 어쨌든 간에 헌혈을 통해 누군가를 돕는데 자신의 시간과 혈액을 기꺼이 나누고자 했기 때문이란다. 과거 아빠의 헌혈 시작 동기가 불순했지만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처럼 그 분도 분명 먼 훗날까지 이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적십자(혈액을 관리하는 단체란다)에서 다소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만 그건 경영자의 자질에 관한 문제이고, 이 단체에서 추구하는 "이타심"은 세계적으로 보편화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아빠가 재력이나 능력이 뛰어나지 않아 타인을 돕는데는 한계가 있지만 건강하기 때문에 헌혈을 할 수 있음을 감사해하는 이유가 바로 이 "이타심"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들에 비해 착한 사람은 아니지만 이타심이라는 조그만한 씨앗이 싹터서 나중에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이것도 다 너희들이 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꿈이겠지^^).

날이 갈수록 해가 짧아지고 쌀쌀해 지는구나.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 환기를 위해 열어 두었던 창문들을 닫아 놓고 너희를 맡이할 준비를 해야겠다. 오늘도 건강하고 신나는 하루를 보냈길 바란다.

이천십구년 십월 십팔일
너희들을 사랑하는 아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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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곤님~ 평온한 주말 보내세요~^^

전에 헌혈밋업에서 처음 뵈었던 게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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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네요 첫 만남이 헌혈 밋업이었군요^^
다음에 또 같이 한 번 모이시죠!!

어지러우셨을텐데요.

이제 체력이 안되서...
12시간 잤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세상 멋진 아빠^^

세상 멋진 엄마~^^

글을 읽으면서
'감사'라는 단어가 떠오르네요

감사, 사랑, 축복
요즘 입에 달고 사는 말입니다.
신도자님께도 나누어 드립니다~^^

역시 팥쥐님...^^

사랑하는 아이들이 이런 팥쥐님을 보고 많이 배울 듯 합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거울입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정말 아이들 보면서 많이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많이 배울 수 있도록 저도 많이 배워야 할 것같아요^^
주말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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