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과 1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손을 꼼꼼히 풀어준다. 손 스트레칭은 시간도 많이 들고 과정도 지루해 처음 루틴에 넣었을 때는 이걸 대체 왜 해야 하는지, 하기로 한 나를 욕하면서 잠에서 덜 깬 채로 열 손가락을 멍하니 움직였다. 그 지루함에 비해 얼마나 도움이 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작년 도수치료를 받던 때와 비교해보면 놀라울 정도로 좋아진 것을 느낀다. 몇 년 간 딱딱하게 굳어있던 손이 요즘은 정말 많이 말랑해졌다.
그 귀찮고 지루한 손 스트레칭을 왜 하는가. 당연히 피아노를 치기 위해서다. 하지만 피아노를 치는 날은 거의 없다. 피아노를 치지 않는데도 피아노를 치게 될 미래를 위해 하루도 빼놓지 않고 손을 푸는 모습, 그것이 지금 나의 생활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나는 나아가고 있다. 일을 시작한 이래 가장 말랑말랑해진 내 손을 꺼내며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고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 말에는 고개가 숙여진다. 잘 모르겠다. 아예 모르겠다.
현실을 뛰어넘는 거대한 이상을 좇아야 하는 건지, 주어진 현실에 충실하다 보면 거대한 이상에 가까워지는 것인지. 그 둘의 경계가 모호하다. 보이지 않는 것을 좇았기에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지만, 그런 이상마저 허상이 아닐까 싶은 의심이 든다.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현실의 압박 때문이다. 상상을 제약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최대한 자유롭게 생각해보려 한다. 나를 가두는 것은 나의 생각뿐.
그러기를 바란다. 매일 열심히 손을 풀다 보면, 열심히 몸을 단련하다 보면 피아노 앞에 설 날이 자연히 오게 될까? 그런 생각은 당장 집어치우고 하루에 8시간 꼬박꼬박 연습과 작업을 해야 하는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 둘의 균형은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