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 깃든 詩 1.- 박경리/ 토지
박경리 선생의 토지를 읽다보면 그 방대함과 등장인물들이 태생적이라할
가난과 한에서 벗어나려 할수록 조여들던 질곡과 아침이슬처럼 사라지던
영화와 권세의 덧없음이 씨실과 날실처럼 서로의 삶을 교차하고 드나들면서
강물처럼 흘러 물살이 나를 휘감았다.
오래 전에 삼국지를 세 번만 읽으면 세상사에 막힘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에 또 그와 비슷한 말을 들었다. 토지를 세 번만 정독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고 한다.
토지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석처럼 빛나는 문장을 발견한다.
낙엽이 날아내린 별당연못에 박이 드러누운 부드러운 초가지붕에 하얀 가리마 같은 소나무 사이 오솔길에 달이 비칠 것이다. 지상의 삼라만상은 그 청청한 전상의 여인을 환상하고 추적하고 포옹하려 하나 온기를 잃은 석녀(石女), 달은 영원한 외로움이요 어둠의 강을 건너는 검은 명부(冥府)의 길손이다.
달은 산마루에서 떨여져나왔다, 아직은 붉지만 머지않아 창백해질 것이다. 희번덕이는 섬진강 저켠은 절라도 땅, 이켠은 경상도 땅, 너그럽게 그러진 능선은 확실한 윤곽을 드러낸다.
- 토지 1부 1권 서(序)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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