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말했다. 아웃풋이 같아서 인풋을 들이기 싫어.
우리는 말했다. 아웃풋이 같아서 인풋을 들이기 싫어.
요아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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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직을 준비한다.
같은 말로는 인턴, 기간제 근로자, 그리고 대체 가능한 인력이 있다.
나날이 줄어드는 여유와 잔고 탓에 백 퍼센트 마음에 들지 않는 기업이더라도 우선 붙고 결정하자는 마음으로 자기소개서란을 연다.
요즘엔 연봉을 기재하는 기업들이 많다. 덕분에 180만 원의 최저임금이라는 동결된 조건임을, 나를 소개하지 않고도 확인할 수 있다. 간간히 정규직 전환형 인턴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건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일임을 알 수 있다. 방법도 쉽다. 잡플래닛을 몇 번 뒤적거리면 되는 일이다. 예전에는 어쩌면 광고일지도 모를, 이사의 입김으로 인해 카페에 칭찬을 적어야 할 일도 있었을 텐데 지금은 익명이라는 거대한 방패와 그를 존중하는 기업 리뷰 사이트 덕분에 기업의 악행을 샅샅이 고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안정된 직장에서 다달이 월급을 받고 직장 생활하는 정규직의 꿈을 가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처럼 특수한 꿈을 지니고 생계를 위해 직장을 알아보는 이들도 적지 않을 테다. 목표는 두 갈래로 나뉠는지 몰라도 경력 2년 이하는 대부분 신입으로 취급되므로 적어도 한 번의 인턴십은 겪어야 서류가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정규직을 꿈꾸는 이들은 뒤를 돌아 비정규직의 자리로 향한다. 참담하게도 비정규직 역시 비정규직의 입구 앞에 줄 서 있다.
어른을 비판하던 나는 어느새 어른이 되었다. 책임감을 지니고 더 나은 사회로 도약해 청소년들이 꿈을 접지 않도록 도와야 하는 세대다. 그렇게 작은 날갯짓을 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꼭대기로 올라가야 한다. 그러려면 비정규직을 준비해야 하고 …… '이상적 사회'라는, 거창하고 거대한 목표를 위해 무릎을 꿇고 다시 나를 소개한다. 저는, 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이런 활동을 했습니다.
평생직장이라는 말은 공기업과 공무원을 제외하고는 없다. 서점에 가면 이직과 퇴사를 다룬 책이 가득 쌓여있다. 가만히 보면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누군가는 나오고 싶어 하지만 붙어 있고, 붙어 있고 싶은 사람은 붙지 못하는 이 악순환에 대하여 생각한다. 그러나 오래 생각해서는 안된다. 현실과 멀어지고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푸념 어린 상념만 가득해지기 때문이다.
취업 준비 동안에는 쌓을 게 많다. 10년이 지나도 기본적으로 토익과 한국사, 한국어, 마케팅이라면 툴을 다루는 다채로운 자격증까지 쌓아두어야 자신감이 생긴다. 그래야 자기소개서란을 열고도 미간을 조금 덜 찌푸릴 수 있다. 그러나 저 자격증과 직종 관련 아르바이트를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금세 반년이 지난다. 몇 천만 원의 등록금을 내는 대학교마저 인풋이기는 하나, 졸업하고도 더 많은 인풋을 쌓기 위해 더 긴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노력뿐만 아니라, 시간의 소모까지 필요하다.
신촌에서 만나 얘기를 나누던 수료생들은 "우리, 자기 계발에 관해 얘기하지 말자."라고 운을 뗐으나 대학을 졸업했기에 더욱 다양한 생활을 할 수 있어 그 궁금증에 안부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우습게도 몇은 계약직을 준비했으며 몇은 계약직을 하고 있었다. 모두가 탄탄대로인 정규직을 접고 기간제 근로자를 자처한 상황이었다. 이유는 간단명료했다. 인풋을 들일 힘이 없으며 그만큼의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당장 입에 풀칠할 돈이 없기 때문에 우선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것이다.
몇 천자의 자기소개서와 몇 번의 면접을 끝내고도 임금은 엇비슷하다. 흥미를 지니고 인문학을 공부한 것은 헛된 일인가. 학구열 덕에 학부 시절에는 전혀 느끼지 않았던 감정이 돈 앞에서 주춤한다. 발을 접는다. 무릎을 꿇는다. 이내 고개를 내려 바닥에 머리를 닿게 한다. 108번의 절을 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공고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떨어지는 사람이 있을 테다.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이므로 2차에서 다시 특수한 경험을 살려 처음의 이력서로 돌아올 것이다.
인풋도 다르고 아웃풋도 다른, 다채로운 세상은 언제쯤 오는 것인가.
적어도 내가 시도는 해보기 위하여 다시 비정규직의 자기소개서를 연다.
저는 올해 4년의 학사과정을 수료했으며 …….
앗! 요아님 오랜만이에영!
뉴비님!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이어요 ㅎㅎㅎ 새해 복도 많이 받으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