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포스팅 큐레이션 대회 #10_좌충우돌 육아일기] 도서관 가는 길

하하하 브라더스와 좌충우돌 육아일기❤.png

집 근처에 도서관이 두 개 있다. 하나는 단지 내에 있는데 우리 동에서 가까워 걸어서 3분 거리다. 도서관 활성화를 위해 종종 이벤트를 한다. 이번 방학을 맞이해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1시간 이상 책을 읽으면 스템프를 하나씩 찍어준다. 30일 동안 15개 이상 찍으면 순위별로 선물을 준다고 한다. 첫날은 다른 곳에 가느라 참여를 못했는데 이틀째부터 개근하고 있다. 집에서 가까운 데다가 이런 이벤트까지 해줘서 아이들이 자주 찾는다. 규모는 작지만 효율이 좋은 곳이다.

다른 한 곳은 지역 도서관인데 규모도 크고 다양한 활동이 있다. 남양주에 있을 때는 워낙 조용한 동네에다 사람이 적어 참여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덕분에 조금 늦어도 원하는 활동에 쉽게 참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탄은 워낙 사람이 많아 경쟁이 치열하다.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활동은 거의 못한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다양한 책을 보유하고 시설이 좋아 아이들이 좋아해 자주 애용하고 있다.

지역 도서관은 걸어서 15분 거리다. 물론 아이들 속도로 걸었을 때 이야기다. 내 속도로 걷는다면 10분 안에 도착한다. 집 근처 도서관보다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다고 해도 걸어가기 먼 거리는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걸어가면 점점 더 멀게 느껴진다. 왜 그럴까?

아이들에게 "도서관 갈래?"라고 물어보면 무조건 "나!" 하고 소리 친다. 그렇게 옷을 입고 집을 나서는 것만 해도 10분 이상 걸린다. 티셔츠 하나 입고 딴 짓, 바지 입고 딴 짓, 잠바 입고 딴 짓,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 번은 내가 집 정리를 하고 준비하는 시간까지 넉넉하게 20분을 잡고 아이들에게 도서관 준비를 하라고 했는데, 집 정리를 다하고 나갈 준비를 마쳤는데도 아이들은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아이들과 내 시간은 다르게 흐르는 게 분명하다.

여차여차 준비해서 밖으로 나가면 거기서부터 또 시간이 늘어진다. 엘리베이터를 타느냐 걸어가냐를 놓고 첫째와 둘째가 실랑이 한다. 보통 걸어가는 걸 선택하는데 문제는 셋째다. 셋째까지 걸어가겠다고 하면 시간은 다시 배로 늘어난다. 한 칸 한 칸 계단을 내려가다 세 칸을 남기고 점프하기 위해 심호흡 한 뒤 내 손을 꼭 잡는다. 그리고는 폴짝 뛰어 내린다. 나중에 멀리 뛰기 선수를 시켜야 할까보다. 몇 번을 반복한 후에야 겨우 집 밖으로 나온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곳곳에 아직 녹지 않은 눈을 밟고 스케이트를 탄다. 가끔 자빠지고(꼬시다) 눈치를 보며 벌떡 일어난다. 이번에는 평탄한 길이 아닌 보도블럭을 아슬아슬하게 걷는다. 전생에 액션 스턴트맨이었나? 스릴을 참 좋아한다. 중간에 놀이터가 나오면 잠시 들러 뛰다가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온다. 화단에 들러 나무 짝대기를 주워 휘두른다. 아니. 전생에 무사였나? 짧은 시간에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아이들 탓에 정신이 혼미해져 온다. 시계를 본다. 집을 나선지 10분이 훌쩍 지났다. 이제 겨우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왔을 뿐이다. 혼자 갔으면 벌써 도서관에 도착해서 원하는 책을 검색한 뒤 책을 대여하고 물 한 잔을 마시며 한 숨 돌리고 고즈넉한 자리를 골라 책을 몇 페이지 읽었을 시간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다 말고 흰줄은 땅이고 아스팔트는 용암이라는 설정을 한다. 그러거나 나는 용암을 밟는다. 갑자기 내가 좀비라며 아이들이 달리기 시작한다. 졸지에 좀비가 된 나는 아이들을 잡으러 달린다. 덕분에 도서관 가는 시간이 줄었다...... 고 생각하는 동시에 아이들은 구석에 쪼그려 앉는다. 개미나 지렁이나 작은 곤충이나 식물을 구경한다. 매번 보는 친구들인데도 늘 새로워 한다. 아이들이 보는 세상은 내가 보는 세상과 다르다. 아이들에게는 늘 새롭고 놀랍고 아름답고 신비로운가 보다. 잠시 쪼그려 앉아 함께 구경하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저린 다리를 달래며 일어나 도서관에 가자고 재촉한다. 다시 도서관 가는 길, 어디선가 풍겨오는 고소한 냄새에 이끌린다. "핫도그 먹곱다."며 혀 짧은 목소리를 내면 그냥 지나치기 힘들다. 나 역시 기가 빨려서 무언가를 위 속에 넣고 달래야 할 거 같은 기분이 든다. 정신을 차려보면 벤치에 앉아 무언가를 먹고 있다. 이쯤되면 동네 산책을 나선 건지 도서관을 가는 건지 헷갈린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도서관으로 향한다. 저 멀리 도서관이라는 정상이 보인다. 한라산 꼭대기에 오른 기분이다. 아이들에게 누가 먼저 가는지 시합하자고 하면 서로 빨리 가려고 내달린다. 그렇게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집을 나선지 46분 19초 만이었다. 누가 누가 늦게 가나 기네스북이 있다면 아마 우리 아이들이 기록을 가지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뭐... 도서관 가는 길이 심심하진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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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매일 매일 추억을 만들고 있네요.

사진도 찍어서 아이들 별로 공간 만들어서 넣어두세요.

나중에 장가 가면 미래의 와이프들에게 다 일러 주게요. ㅋㅋ

아이들 사진이나 그림 같은 거 잘 정리해야 하는데
정리를 못해서 다 버리고 있네요...ㅠㅠ

ㅎㅎㅎㅎ 눈에 선합니다.
괴롭지만 그 시간을 즐기세요.
클수록 친구가 더 좋아 그쪽으로 기웁니다.

얼른 내보내고 싶다 가도
더 함께 있고 싶기도 하고...
오락가락 하네요 ㅎㅎ

아이들이랑 "도서관 가는길" 이라는 단편을 읽는 기분이네요~ ^^

'도서관에 가기로 했으면 도서관에 빨리 가야지!' -> 이건 일반적인 어른들의 생각인 것 같고요...ㅋ

차라리 도서관 가는 길 자체를(과정을) 아이들과 함께 즐긴다고 생각하면
맘이 좀 더 편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이들이 사랑스럽고 귀엽네요! ^^

아이들과 함께 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운 거 같아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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