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세이] 완벽한 그녀에게, 불완전한 나는 필요가 없다. <Her>

in #kr7 years ago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누군가 ‘영화 좀 추천해줘’ 하면 생각나는 영화들이 있다.

그럴 때 나는 ‘어떤 장르를 좋아해?, 어떤 영화가 좋았어?’ 라고 묻고, 부족한 영화지식을 총동원해서 추천해준다.

요즘은 ‘사랑’하면 이 영화를 항상 말한다.

더덕이의 영화에세이,
오늘 말하고 싶은 영화는 ‘인공지능과 사랑한 남자’ [Her]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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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이 영화는 여러 영화제에서 극찬을 받았다.
주제, 영상미(특히나 색감), 배우들의 연기 등 참으로 아름답고 신기했던 영화였다.

영화를 보는 초반 '정말 저럴 수 있나?' 라는 생각도
잠시, 시간이 지날수록 주인공의 상황이 이해가 되며 그 기분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영화 [her]이 묻는다.
당신이라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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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만약 저런 인공지능 기계가 있다면, 나도 그것을 사랑할 수 있을까?

영화를 본 필자의 입장에선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특히나 영화 속의 인공지능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녀는 한마디로 ‘완벽’하다.

나의 모든 취향과 관심사, 지식, 흥미에 맞춰서 정말 나와 딱 맞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거기다 스스로 발전을 도모하고 성장한다.

이런 기계를 누가 안 사랑할 수 있을까?

단순히 사람이 아니라는 점은 그녀를 사랑하는 것에 아무런 지장도 되지 않는다.

완전히 같은 사랑은 아니지만, 우리는 모두 사람이 아닌 것들을 사랑하니까.
반려동물이나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기계, 키우는 식물이나 그 밖의 다른 것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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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놀라운 것은 그녀(인공지능)가 사람처럼 ‘사랑’한다는 것이다.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질투도 하며 상처도 받는다.
다투고, 화해하고, 더 끈끈해지는 모습은 영락없는 사람의 사랑이다.

그녀는 사랑마저 완벽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찝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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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그녀가 너무 '완벽했기' 때문이다.

세상엔 완벽한 사람도 없고, 완벽한 사랑도 없다.
우리는 완벽해지기 위해, 완벽한 사랑을 위해 노력하며 살아갈 뿐이다.

하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왠지 모를 그 찝찝함은 그녀의 완벽함에서 오는 것이었다.

우리 주위엔, 소위 ‘멋진’ 사람들이 많다.
무언가 배울 점이 있고 자신만의 뚜렷한 생각과 색깔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나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해도 완벽할 순 없고 완벽한 사랑을 할 수도 없다.

개인이 한 사람에게 맞춘 듯이 인생을 살아갈 순 없다.
인간은 각각이 주체이기에 의미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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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어쩌면 우리는 나에게 맞춰주는 사람이 필요했을 지도 모른다.

각박한 세상 속에서 힘든 하루를 버티다 보면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지쳐 내 맘을 알아주길 바라는 사람들을 원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에선 그런 사람이 없어서, 나에게 맞춘 기계에 만족하고 사랑에 빠지는 것은 아닐까?

그 힘듦과 기대들이 그대로 기계에게 투영되어 그것을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둘의 사랑’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는 그 기계 자체를 사랑했을까?
자신에게 ‘맞춰진’ 그녀를 사랑했던 것은 아닐까?

영화가 끝날 때 쯤, 그녀는 마치 사람처럼 떠나버린다.

‘이별’마저 완벽한 그녀 때문에 놀랐고, 그래서 더 찝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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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물론 나도 완벽한 사랑을 꿈꾼다.

나에게 정말 딱 맞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하지만 그런 사람.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나는 노력할 수 있다.
상대에게 완벽해지기 위해, 상대는 나에게 완벽해지기 위해.

우리는 완벽한 사랑을 위해 노력할 것이고 그 불편함과 불완전함을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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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사랑은 함께하는 것이다.
이미 완벽한 그녀에게 ‘불완전한 나’는 필요가 없다.


Her, 2013
드라마, 멜로/로맨스
미국 126분
감독 - 스파이크 존즈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her 속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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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감이 너무 좋은 영화였던거 같아요!

완벽하게 맞춰줄 수 있는건 인공지능 밖에 없는데, 그 인공지능은 불완전한 나를 필요로하지 않는다니, 앞으로 인간이 영원히 인공지능에 대해 짝사랑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은 느낌이드네요. 바둑기사들이 알파고를 쫓듯이 ㅎㅎ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인간이 영원히 인공지능에 대해 짝사랑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은 느낌'
와. 이렇게 표현하시니 또 다른 느낌이 드네요!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vimva님 다이어트도 화이팅.... ㅎㅎㅎ

보자마자 꽂혔어요 오늘 다시 보고 자야겠습니다 글 감사해요

보면서 '참 다양한 방식으로 아름답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요 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끝내주는 영화였지요...개봉하는곳이 몇없어서 찾아봤던 기억이 납니다

이 영화의 제작비화 중에 스칼렛요한슨이 연기한 목소리가 원래 마이너리티리포트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역할이었던 분이 녹음을 마쳤음에도 감독이 맘에 들지않아 이후 스칼렛요한슨이 재녹음을 했다고 하더군요,,,ㅋ
잘 보고 보팅 하고 갑니다!

아 그런 비화가 있었군요! 역시 스칼렛 요한슨님... 아마 이 영화 속 목소리 만으로 상을 탔던 것 같은데.. 목소리 연기마저 아름다운 배우인 것 같습니다. ㅎㅎ 좋은 밤 되세요!

여운이 엄청난 영화였습니다..

가만히 생각하게 되는 영화들 너무 좋습니다ㅎㅎ

사랑 에 대한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끔 만들어준 영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포스팅 잘 보았습니다:)

네 사랑의 방법이 아니라 상대라는 새로운 관점이었던 것 같아요ㅎㅎ

재밌어서, 이 영화를 몇번이나 봤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네요. 좋은 글 잘읽고 갑니다~

볼 때마다 생각하게 되는 좋은 영화인것 같아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전 이영화보고 너무 세상이 발전해도 뭔가 안좋겠다 느꼈었는데 .. ㅋㅋㅋ 좋은 글 잘 봤습니다. 보팅하고 갑니다.

만약 저런 세상이 온다면 정말 편리하겠지만 왠지 씁쓸할 것 같아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완벽한 그녀에게, 불완전한 나는 필요가 없다"
포스팅 제목보고 들어왔는데, @theduck 님의 모든 포스팅에 반하고 갑니다
하나하나 다 읽고있네요..

헉 감사합니다... 되게 힘나는 댓글이네요^^
@byeong54ji 님의 글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이런 에세이 글도 참 좋군요! 저도 이렇게 깔끔하게 쓰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네요. 그리고 저도 맨 앞부분에 스포주의를 다는게 좋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저는 영화에 관한 글을 포스팅합니다. ^^)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zeroseok님의 블로그를 보니 영화에 대한 지식이 많으신 것 같아요! 저도 많이 보면서 배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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