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검사 時歷檢査] 이상한 나라의 방탄쫄보단

in #kr4 day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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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법정 싸움만 남은 이 전쟁에서 누가 이기고 누가 졌는가. 전쟁이란 모름지기 상흔만 남기고 승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되지만, 이번 전쟁에서 윤은 확실히 무언가를 얻었다. 그것이 회한일 수도 자책일 수도 있고, 전에는 없던 팬덤일 수도, 생각지 못했던 뜻밖의 지지율일 수도 있다. 아무튼 철저한 묵비권을 행사하다 불끄자마자 드르렁드르렁 코 골며 잠이 들었다고 하니, 이제야 쉬거나 아니면 조금은 자포자기의 마음이 들었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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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도 파란만장의 시간을 보냈다 하고, 우리가 봐도 그렇다. 그는 들어가며 남긴 기록에서 자신을 직무 정지의 아이콘인냥 자조했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불의에 항거하여 얻게 된 기록이라고 자찬했다. 그렇다. 그에겐 돌보고 섬겨야 할 국민이 필요한 게 아니라, 처단해야 할 적이 필요했던 거다. 그리고 국민을 섬겨야 할 대통령의 자리에서도 기어코 그 적을 만들어 내고 말았다. 검사나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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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적인가? 명인가? 야당인가? 한인가? 아니면 대학생을 허리띠로 다스린 돌아가신 아버지인가? 자신을 9수하게 만든 야속한 세상인가? 자기 사랑을 받아주지 않아 울게 만들었다던 처녀 시절의 아내인가? 그의 적은 모르겠고, 그를 적으로 여기는 이들은 넘쳐난다. 그리고 그들 역시 적을 처단하려다가 괴물이 되어버린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 채 그와 똑같아져 가고 있다. 적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괴물들. 어찌나들 신이 났는지 잔치 잔치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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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쥐고도 결국 이 모양 이 꼴이다. 그러게 아무나 쓰는 게 아니지. 왕관의 무게를 못 견딘 그는, 누군가 자신의 왕관을 찬탈하려 한다며 망령을 불러내 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왕관이 자기 머리에 쓰여질까 두려운 또 다른 누군가의 무의식은 실책을 자행함으로써 최대한 비껴가기를 바라고 있는 듯하다. 차라리 감방이 편할지도. 조직들의 보호를 받는. 사람들은 대통령병이라고 말하지만, 이럴 바엔 중학생 때부터 '내 꿈은 대통령'인 이가 왕관을 쓰는 게 맞다. 그들은 매일 연습하니까. 어쩌다 대통령은, 저도 재앙이고 국민도 재앙이다. 도망칠 곳이 왕좌뿐인 범죄자는 말할 것도 없고. 다시 아이들의 꿈에 대통령이 등장하는 시대가 도래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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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조하던 이가 취조를 받게 되었으니 어떤 기분일까? 그가 적폐 청산을 외치며 구속시킨 이들이 산더미인데 그들은 또 어떤 감정일까? 그는 인과응보라고도 생각하던데, 그들도 인과응보라고 생각할까? 아직 멀었다고 생각할까? 그러나 그 진영의 태극기 부대원들은 한때 박근혜 탄핵의 주범이었던 그에게 용비어천가를 불러대는데, 이를 바라보는 박근혜는 또 어떤 심정일까? 시청 앞에 차려진 무안공항 사고 참사 조문소는 썰렁하기 그지 없다. 이러니 교통사고일뿐이라던 세월호 사고때의 말들이 다시 살아나고, 이태원 참사에 분노를 분출시켜라는 북괴의 지령을 수행하던 민노청 전 간부에게는 간첩죄로 징역 15년형이 선고되었다. 이거야말로 내란 선동이 아닌가.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오늘의 동지는 내일의 내란수괴가 되니, 이렇게 뒤죽박죽인 세상에선 제 정신인 놈이 이상한 걸까? 있기는 한 걸까? 참으로 이상한 나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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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하랬더니 슬금슬글 뻘짓을 해대며 지지율 깎아 먹다, 이제는 파출소장 하겠다며 '민주 파출소'를 개소한 명과 그의 (잔)당들은, 갑자기 뭐가 꿀리는지 카톡을 검열하겠다며 완장질을 해대더니 사람들이 카톡 계엄이라고 놀려대자, 내란수괴를 옹호하는 거냐고 내로남불을 시전한다. 아수라장이다. 뭐, 그는 주인공이니까. 내로남불 용비어천가와 5호담당제식의 자아비판이 판을 치는 나라에서 한류가 일어났다. 사람들은 이것도 한류라며 신기해한다. 친위쿠데타를 일으킨 내란수괴가 순순히 체포되어 취조를 받는 요상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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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영화에선 보다 못한 내란 수괴가 부하의 기관단총을 뺏어서 우다다다 내지르다 사살당하던데, 우리의 수괴는 내지른 총알을 빠르게 회수하고는 법 기술자답게 아슬아슬하게 법규 위를 슬라이딩하며 불법을 저지른 적이 없다고 우겨댄다. 총 쏜 일 없고, 누구 하나 다친 사람 없다며 정당성을 주장하는데, 악법도 법이고 규정 하나라도 철저하게 지켜지지 않으면 내란이라며 법규 준수를 주장하는 상대는, 수사권도 없는 조직이 영장을 청구하고, 이리저리 만만한(?) 법원을 쇼핑해다가, 공문서를 위조해서 관저를 뚫고 들어갔단다. 아수라장에다 난장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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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까다 지지율 상승하니까 대거 나타난 자당 의원들은 고마워서 윤이 점심 먹고 가라니까, 눈치 보다 슬슬 도시락이나 먹겠다며 쭈뼛대더니, 잡혀가는 마당에는 갑자기 들이닥쳐서 난데없이 큰절을 올리고는 울먹였단다. 형님, 저는 조연이니까 좀 봐주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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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격전을 보나 싶었는데 연금 날라간다는 협박 뉴스에 잔뜩 쫄은 윤의 보디가드들은 "웬 다이야" 나만 죽을 순 없다며 철컹철컹 닫힌 문을 열고 적들을 환영해 주었다. 아, 그들은 영부인 생신에 폭죽놀이를 했다지. 왕의 생신에는 축가도 불렀다며? 누가 그랬냐? 주군을 위해 목숨 바치는 무서운 살인 기계들이라고? 뭐가 가짜뉴스냐? 경찰, 검찰보다 무서운 목구멍 포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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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이번에도, 심지어 윤이 정한 게 아닌데도 공교롭게 체포영장 집행 시간이 10시 33분(十時 三十三分), 그니까 왕(王)의 시간이었다네. 오호 역시 법 위에 주술인가? 하늘은 윤을 도우는가? 아니지. 구원은 천조국으로부터. 계엄군이 선관위에서 억류한 중국 해커 99명을 미군이 오키나와로 압송하고, 선관위 서버 포렌식은 평택기지에서 진행 중이라는, 태극기 부대 설레게 만드는 소식이 전해졌다지? 그게 사실이면, 너 같으면 태극기 부대 좋으라고 엠바고도 안 걸고 먼저 알려줄까? 시진핑이랑 딜을 하겠지. 부정선거 따위 없다며 사전투표 독려하던 놈이, 뭘 이제 와서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이게 다 큰 그림이다 설레발을 치는가! 어쨌거나 미제 썰매 타고 등장할 트럼프의 재림은 안타깝게도 우는 아이한테는 선물을 안 주신단다. 끈 떨어진 권력이 뭐가 아쉬워서. 이긴 놈한테 방위비 따따블 OK? 함 그만 인 것을. 모냥 빠지게 내정간섭은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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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중국이 모냥 빠지는 짓을 줄기차게 해온 것만큼은 팩트인 듯하다. 이 나라 저 나라에서 중국판 선거 조작에 골머리를 앓고, 트럼프조차 당했다 하소연을 했으니. 윤의 말처럼 하이테크 조작선동전으로 진화하는 국제전의 양상만큼은 기정사실이 아니겠는가? '21세기에 이런 일이!' 하기 전에, 성조기 부대가 미 의회를 점령해 버렸던 일이 바로 몇 년 전이었음은 왜 일언반구도 안 하는가? (트럼프는 취임하자마자 그들을 모두 사면하겠다 선언했으니 태극기 전사들 마음 설레겠다) 그보단 평화적이고, 그보단 절차적이고, 그보단 쫄보들판이라 안전한 이 이상한 나라의 위상을 생각하면, 오히려 국뽕에 차올라야 하는 거 아닌가? 수괴나 쫄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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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어쩌면 이상한 나라의 미덕일지도 모르겠다. 쫄아서 관저 앞마당 내어준 경호관도, 쫄아서 계엄도 하다만 수괴도, 쫄아서 연신 탄핵을 해대지만 자기 좀 살려달라고 비굴한 악수를 내미는 야당 대표도, 모두 이 이상한 나라의 아슬아슬한 법규 외줄타기이 달인들인 K-폴리틱 전사들이라, 그래도 이 나라가 이 무식한 VIP들 속에서 어부지리로 목숨도 부지하고 선진국도 되고 그런 게 아닐까? 방탄쫄보단 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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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다행인 것은 '배신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윤에게 노태우나 장세동 같은 친구와 장수가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서울의 봄>을 보라. 노태우가 그때 그 순간 9사단을 움직이지 않았다면, 그 결단이 없었다면 5공화국이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이번 계엄 사태에 울먹이며 '대통령이 시켰어요'를 연신 부르짖는 윤의 장수들을 보며, 노태우의 그 용단이 얼마나 이 나라에 치명적이었는지 모두가 목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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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 없는 군인들의 쭈뼛거림과 소통 불능이 이 나라를 계엄으로부터 구하고, 쫄보 경호관들의 자기 보신이 내란 수괴를 불상사 없이 체포할 수 있도록 내어주어, 윤으로 하여금 나는 적법절차를 지켜 계엄을 시행한 선량한 대통령이며,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제 발로 걸어 나왔다는 설레발을 칠 수 있게 해주었으니, 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윤에게는 그런 친구와 장수가 없다는 사실이. 윤에게 '배신 귀신'이 들러붙어 갖은 굿에도 떨어지질 않으니, 더불어 우리는 이 위기에서 나라를 구해 준 이 방탄쫄보단에게 감사를 올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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