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에 이르는 길 - 영화 <블랙 스완> 다시 보기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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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완벽을 추구하는 우리. 완벽해지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하지만 현실의 자신은 언제나 부족할 뿐이다.

나탈리 포트만이 연기한 영화 <블랙 스완>의 니나는 뉴욕발레단 소속으로 백조의 호수 공연에서 백조와 흑조 1인2역을 맡게 된다. 순수함을 표현하는 백조 연기는 최고이지만 왕자를 유혹하는 흑조 연기는 니나에게는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보인다.

이 영화는 자신이 굳게 믿어왔던 자아의 모습이 깨지면서 자신이 그토록 갈망했던 완벽에 도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영화 포스터를 보면 나탈리 포트만 얼굴에 금이 가있는데 이것은 자아의 분열을 그린 영화 주제를 보여주는 것 일테다.

예쁘고 순수하고 연약한 모습의 니나가 여느 때처럼 스트레칭을 한다. 이때의 니나에게서 어두운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순수하고 사랑스럽다. 이것은 니나가 또 다른 자아를 직면하기 전의 모습이다. 니나에게 자신은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여야 했으니.

순수한 니나는 백조와 흑조 1인 2역을 뽑는 오디션에 참가하게 되고 흑조 연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탈락하게 된다. 니나는 자신의 발레 우상인 베스의 립스틱을 몰래 훔쳐 바르고 백조의 호수 공연감독인 토마스를 찾아간다.

토마스의 갑작스런 키스를 당한 니나는 토마스의 입술을 깨물고 뛰쳐나오는데, 니나의 그 모습에서 도발적인 흑조의 모습을 발견한 토마스는 니나를 백조의 호수 주인공으로 발탁한다.

기쁨에 가득 찬 니나는 화장실에 갔다가 화장실 유리에 립스틱으로 “이 더러운 X” 라고 써진 것을 발견하고 수치심에 황급히 글씨를 지운다. 영화를 보는 관객은 이 장면으로 니나를 시기질투하는 적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게 된다.

그리고 이 적은 결국 니나 자신이었음을 영화는 현실인지 환상인지 구분하기 힘든 장면묘사를 통해 하나씩 관객에게 보여준다.

<블랙 스완>에서는 ‘니나의 관점’ 으로 본 세명의 주요인물을 나타내는데, 그것은 니나의 자아형성에 가장 큰 역할을 했을 엄마와 니나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공연감독 토마스, 그리고 니나의 라이벌이자 사실은 유일한 친구였던 동성친구 릴리이다.

영화에서 흥미로운 점은 니나의 눈으로 본 주변인물들의 모습과 주변인물들의 눈으로 본 니나의 모습을 번갈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환상인지 분간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덕분에 관객들은 니나와 함께 니나의 내면 속으로 푹 빠져 같이 미쳐가는(?) 느낌을 받으며 영화 속에 몰입하게 된다..

한 인간의 자아형성에 가장 큰 역할을 한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닌 ‘엄마’ 와의 관계 구도는 역시 이 영화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니나는 주인공으로 발탁된 후 가장 먼저 엄마에게 기쁜 소식을 알리는데 엄마는 왠지 모르게 기쁘지만은 않은 기색을 보인다. 축하 케익을 준비한 엄마는 딸이 케익을 좋아하지 않자 바로 케익을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리려 하고 니나는 마지못해 케익을 한입 먹는다.

사랑의 미소와 알 수 없는 분노의 눈빛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엄마와 딸 니나의 관계에는 애매모호한 긴장감이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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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를 임신한 후 발레를 관둔 전직 발레리나인 엄마와 니나의 대화에서 엄마는 니나로 인해 포기한 커리어에 대한 회한을 드러내지만 니나는 엄마는 그저 재능 부족으로 관두었음을, 자신의 탓이 아님을 은연 중에 표현하여 모녀 사이의 관계는 긴장감으로 더욱 고조된다.

엄마에 대한 두려움과 사랑을 동시에 모순적으로 갖고 있는 니나의 내면을 나타낸 장면은 여러가지가 있다.

신경증으로 몸에 상처가 나도록 긁는 니나와 그리고 그런 니나를 저지하기 위해 소리를 지르는 엄마를 공포스럽게 그린 장면과 다정스럽게 약을 발라주는 엄마의 모습을 대조하고, 또 엄마에 대한 두려움으로 니나가 몰래 침대 밑에 몽둥이를 숨기고 자는 장면도 나온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장면은 도발적인 흑조 연기 표현을 위해 자위를 해보라는 감독의 조언을 떠올린 니나가 자위 삼매경(?)에 빠져 있는데 옆을 보니 자신의 방에 엄마가 잠들어 있던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어느 공포장면보다도 더 무서운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장면에서 자신을 마음껏 발산하고 표현하고 싶은 욕구를 항상 지켜보고 있는 엄마로 인해 얼마나 억눌러 왔는지를 관객에게 은유적으로 알려준다.

두번째 주요인물인 공연감독 토마스와의 관계 구도에서 토마스는 니나의 숨겨진 자아를 발견하도록 촉구하는 역할을 한다. 토마스에게 점점 호감을 느끼게 되는 니나는 먼저 사랑을 표현하고 싶지만 마음과는 달리 그저 수동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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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항상 착해야 한다. 사랑스러워야 한다’ 라는 관념에 갇혀 용감하게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다. 영화 끝부분에서 완벽한 흑조연기를 마친 니나가 토마스를 확 끌어당겨 키스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드디어 니나가 용감해졌음을, 자신을 가둬두었던 자아의 벽을 깨고 새로이 태어났음을 알 수 있다.

세번째 주요인물인 라이벌이자 친구인 릴리와의 관계도 영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릴리는 니나와는 달리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이다. 니나는 자신이 갖지 못한 성격 혹은 자신이 접하지 못한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으로 릴리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릴리는 니나를 일탈의 세계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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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니나가 엄마의 방해를 무릅쓰고 릴리와 동성애를 나누는 성적인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은 결국 약에 취한 니나의 성적 판타지였다. 니나는 이성적으로는 릴리를 라이벌로만 여기지만 마음 속으로는 자신과 다른 릴리를 받아들이고 싶음을, 자신이 배척했던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의 모습을 허락하고 싶음을 무의식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자신과 친해지고 싶어하는 릴리를 그저 라이벌로만 바라보는 니나는 릴리가 자신의 흑조역을 빼앗아가려 한다고 생각한다. 백조의 호수 공연 무대에서 실수를 한 니나는 흑조 임시대역을 맡은 릴리와 몸싸움을 벌이게 되고 릴리를 유리로 찔러 죽이게 된다. 물론, 이것조차 니나의 환상일 뿐이다.

환상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빼앗아 가려는 릴리를 죽이고 무대에 나간 니나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완벽한 흑조 연기를 해내게 된다.

연기를 마친 니나에게 죽은 줄 알았던 릴리가 너무 멋졌다며 축하인사를 건네고 니나는 그제서야 릴리를 찌른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찔렀음을 알게 된다. 온몸이 피로 번지는 니나는 꿈을 꾸는 듯한 표정으로 마지막 대사를 한다.

“나는 완벽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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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는 적이라고 생각했던 릴리를 죽인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찔렀다. 자기 자신을 죽이고 나서 그토록 꿈꿔왔던 완벽을 이루어 냈다.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마도 ‘자기 자신을 죽여야 역설적으로 자기가 살아날 수 있다. 그로써 완벽을 이루어낼 수 있다.”라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너무나 견고한 자기라고 여기는 자아의 벽에 갇혀 우리의 더 큰 가능성을 꽃피우지 못한다. 자기를 죽여야만 역설적으로 자기가 살아난다. 그래야만 더 큰 것을 이룰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완벽은 소위 말하는 아무 결점이 없는 상태는 아닐 것이다. 그런 완벽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 영화에서 말하는 완벽이란 아마도 자신이 만족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상태로 가기 위해서는 견고한 자아의 벽을 깨뜨리고 새로운 자기로 태어나야 한다는 것.

니나가 자기 자신을 찌르고 온몸이 피로 물들었듯이 그 과정은 너무나 고통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고통에도 불구하고 꿈을 꾸는 듯한 니나의 표정처럼 그것은 환희에 차 있을 것이다.

나를 뛰어넘는다는 것.

그것은 우리 자신의 백조와 흑조 모두를 허용했을 때만 가능할 것이다.

심리학자 칼 융의 말을 인용하며 기나긴 리뷰를 마치고 싶다.

“나는 선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나는 온전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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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인가요?
어떤 나를 선택해서 그 역활을 하고 모습을 유지하고 사느냐의 차이?
내 몸 밖으로 삐져 나오려 하는 이상을 향한 자아를
애써 구겨 넣고 살아야 했던 시간이 누구나 몇번쯤은 있었을 것 같은...
메가님이 리뷰를 잘 써 주셔서 아주 전달이 잘 됐네요.^^

영화 한 편을 촘촘하게 얘기하셔서 영화를 다 본 것 같아요. 예전에 봐서 가물가물하던 장면이 막 되살아납니다ㅎ

이 영화는 여러 가지 시점으로 해석될 수 있는 영화 같아요.
예술가의 이야기라고 봤을 땐, 어떤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치열하게 자신을 깨뜨리는 과정을 담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구요. 한 개인의 보편적 내면에 관한 얘기라고 하면, 욕망과 억압에 관한 이야기로 볼 수 있을 거 같아요.

전 후자의 시각에서 좀 생각했는데요, 모든 사람이 저마다 어릴 적부터 자신의 욕망을 감추고 억제하도록 사회적인 교육을 받지요. 적당한 억제는 타인과의 공존에 필수적인데, 이걸 지나치게 억압받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타인과의 공존을 해치지 않는 욕망까지도 스스로 억압해버리는 거죠. 자기주도성을 상실해버리죠. 메가님의 언급처럼요.

‘자신은 항상 착해야 한다. 사랑스러워야 한다’ 라는 관념에 갇혀 용감하게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다.

예술이나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인간 고유의 욕망을 제거해버리면 겉으로 번드르르한 가식과 허위만 남지요. '인간'을 정확하게 보여줄 수 없는 거죠. 이 영화의 주인공이 봉착한 문제가 바로 그것인 거 같아요. 한 번 굳어버린 자아를 깨뜨리는 과정은

자기를 죽여야만 역설적으로 자기가 살아난다.

이 정도로 험난하지요.

요런 생각이 들었어요. 많은 이야기가 사람의 삐뚤어진 욕망 때문에 일어난 일을 얘기하는데, 이 영화는 거꾸로, 분출되지 못한 욕망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구나, 하고요.

그런 걸 보면 우리는 욕망을 줄타기처럼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서 움직이도록 해야 할 거 같아요. 내가 능동적으로 행동할 수 없을 정도로 얼어붙어 있으면 깨뜨려야하고, 너무 나대면 통제해야 하니 말이죠ㅎ 생각할 화두를 던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메가님의 글을 보면 억압되었던 욕망들을 적정선에서 이끌어낸 과정을 거치신 거 같아요. 글을 보면 자신을 꾸미지 않고 한 '인간' 그대로 드러내시려는 게 보이니까요.ㅎ

어쿠 쓰다보니 이렇게 길어져 버렸네요. 1등 댓글 노린 건 아닙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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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봤었는데 리뷰를 읽으니 뭘 봤던건지....ㅎㅎ
흑조와 백조를 모두 허용 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요.
세상은 백조로 있을 때 무던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나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세상은 백조로 있을 때 무던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나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동감입니다 ㅎㅎㅎ

언젠가부터 그냥 적당히 만족하고 적당히 적응하며 살자... 라는 생각을 하며 살게되네요.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는것도 힘들다고 느껴지거든요.ㅎㅎ

저도 정신승리로 그냥 적응하며 살고 있습니다 ㅎㅎㅎㅎㅎ

영화 한편을 다 본듯 합니다. 마지막 사진이 자신을 찌른 니나의 표정인가 보네요. 급 보고싶어지게 하시는군요..ㅎㅎ

강추합니다 ㅎㅎ 상을 휩쓴 이유가 있는거 같더라구요..ㅎㅎ

리뷰를 봤었는데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라하던데 이런 내적갈등을 잘 나타내주는 영화였군요.

감정선이 굉장히 섬세하게 잡혀있는 영화네요. 블랙 스완 보지는 않았는데, 생각보다 예술성이 높은 영화인 것 같아요. 단지 발레가 나와서가 아니고 자아에 대한 탐험을 하는 느낌이랄까요.

르바님~~^^
예술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갖춘 명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발레를 소재로 한 자아에 관한 스토리인거 같아요~~~^^

블랙스완 정말 명작이죠...
리뷰 보니 다시 보고 싶어지네요~ !!

네!! 정말 명작이에요!!!!!

누군가는 이러한 행보를 보며

참 피곤하게 사는구나

싶은 생각을 가질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무책임하고 무관심한 말이 없겠구나
싶네요

본인이 만족하며 간다면 그걸로 좋지 않을까 싶은 제가 있네요;;

잘 보고 갑니다.

누군가가 완벽을 추구하며 자신을 다그치는 모습을 보며 피곤하게 산다고 보는 눈길도 있을 것이고 세상과 사람을 보는 관점은 참 여러가지가 있을 거 같아요~~

어쨌든 열정과 도전은 한 인간을 더 성숙하게 한단계 높여주는 역할을 하는거 같습니다~~~ ^^ (주인공처럼 너무 강박적으로 도전하는 것은 왠지 꺼려지지만...ㅜㅜ)

일단 제목을 익혀 두었으니 나중에 시간될 때 봐야겠습니다~ 그 때 이 감상평을 다시 읽어보면 더 재미있을 듯 합니다 ㅋ 가즈앗!!!

리뷰 보고 다시 봐도 재밌을만한 명작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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