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ZZA] #8. PIZZA and PRAIN
#1. 피자티
오늘은 나염공장에 갔다. 지난 주에 원단을 봉제공장에 쐈고, 이번 주에 제단물이 나왔다. 이제 나염(프린팅)을 할 차례. 위치를 정하고, 색을 봐야 했다. 봉제공장의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미싱기의 소음과 케케묵은 먼지와 달리, 나염공장은 조용했다. 건조기(?)만이 정기적으로 돌아갈 뿐. 희미한 페인트 냄새와 겹겹이 쌓여있는 나염 판들은 비로소 내가 공장에 왔음을 실감하게 했다.
해질 무렵의 방문, 창문으로 보이는 저무는 해. 유일하게 제법 열심히 준비했던 시험을 망쳤단 사실. 모든 것이 섞이니 그 공장의 내가 제법 우울해졌다. 대략적인 위치를 정하고 나염을 찍을 때까지, 가면을 쓴 나는 비록 공장장님과 사장님과 웃고 떠들고 있었으나 제법 우울하던 것이 꽤나 우울해지고 있었다.
우습게도 찍힌 나염을 보는 순간 모든 우울이 사라졌다. 우습다.
“공장장님, 초록이 좀 더 진하게. 빨강은 색은 그대론데 톤만 어둡게. 네네. 아니, 사장님 이 위에 그대로 찍고, 여자껀 살짝 오른쪽으로 붙여서 찍어보면 안되나?”
우습다. 박쥐같은 태세전환. 기분이 조금 나아지니 또 다른게 보인다. 모 브랜드의 ‘작업지시서’. 바보인 척, 허술한 척 묻는다.
“어? 작업지시서? 아~~ 다른덴 다 이래 하는갑네요? 사장님 나 이거 한 번만 보면 안되요? 헤헤 감사합니다. 이거 찍어도 될라나..? 그래야 다음 작업엔 사장님도 편하고 나도 편하니까..헤헤. 감사합니다!!”
반팔, 맨투맨, 반바지, 긴바지, 아우터 2종의 작업지시서를 능숙하게 폰에 담는다. 기분이 좋다. 목표했던 바와 뜻밖의 수확 모두를 얻었다. 누가 언젠가 내게 했던 말이 스쳐지나간다.
“륜은 애니어그램 8번 유형, 모든 것이 경쟁이에요. 성취를 해야하고, 어쩌고..”
성취를 했다 이거지.. 어쨌든 스티커도 나왔고, 박스도 왔다. 이제 정말 코앞이다.
#2 프레인
프레인(Prain)이라는 pr회사가 있다. 그 판에서 최고인 회사다. 다가오는 토요일 그곳에서 면접을 본다. 자기소개 pt와 1시간 가량의 면접을 준비해야 하는데, 사실 나는 취업이니 인턴이니 그런 것에 대한 준비가 전무하다. 막막했다. 그래서 일단 왜 프레인인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봤다.
<영화 ‘HER’>
영화 'HER'를 보면 주인공은 'AI'와 사랑에 빠 진다. 나의 사랑의 대상은 바로 '헌트' 였다. '헌트' 때문에 '프레인'을 알았다. '헌트'의 글 을 통해 나는 인생과, 남자, 육아, 그리고 일을 배웠다. 아니 모든 것을 배웠다.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한 모든 것을 배웠다. 7년이 지난 지금도, 한 번을 만난 적이 없다. 죽기 전엔 만날 수 있을까. 그 출발이 바로 그 'prainee'였다. 당시엔 '이승봉' 전 대표이사님 께서 대표이사로 계셨지만, 헌트의 홈페이지엔 여전히 프레인으로 가득했기 때문에. 퓨어아레 나, 공공장소, 50/50 등. 프레인에 들어가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7년이 지난 지금에야 준비를 한다. 이제는 단 순히 헌트를 만나고 싶다도 아니고, 어쩌면 만 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동안 스타트업에서 경험도 쌓았고, 편입을 통해 최소한의 학벌 을 갖춘 4학년이 됐고, 돈이 없어서 삼각김밥 도 못 사먹고 끼니 걱정을 하던 때도 지났다. 지금이 적기다. 보도자료를 작성하는 법은 배 운적 없지만, 글 쓰는 것이 좋아 틈틈히 쓰고 있다. 디지털 PR을 배운 적은 없지만, 팔로워 30,000명의 SNS채널을 운영해본 적 있다. '그래, 이 정도면 프레인에 명함 한 번 내볼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이제야 들어서 지원하 게 됐다. 아주 겸손하게.
프레인 스티커 붙이고 싶다. 내 맥에.
<나는 덕후다>
'덕후'란 오타쿠를 한국식으로 발음한 ‘오덕후’ 의 줄임말. 어떤 분야에 몰두해 전문가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 입대할 때, '헌트' 홈페이지 모든 글을 워드에 옮겨 인쇄를 했다. 4권에 달하는 책을 만 들었고, 그거 들고 입대를 했다. 머리 밀고 도 닦으러 산에 들어가는 중 처럼.
여동생이 언젠가 빅뱅이 쓴 책을 사고, 빅뱅의 사진을 뽑아 지갑에 넣어두고 다녔던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딱 당시의 내가 그랬다. 휴가 를 나와서는 그간 밀렸던 헌트의 SNS를 정독하고 복귀를 했을 정도였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프레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됐다. 이승봉님, 구연경님, 이지영님, 김정호님 등 많은 분들이 내겐 마블의 어벤 져스에 등장하는 아이언맨, 토르, 헐크같은 주 인공이었고, 퓨어아레나의 탄생, 펜네 프로젝 트, 50/50의 배급, 스티키몬스터랩, 로가디 스와의 수트프로젝트, 김무열님을 만나 탄생 하게 된 PRAIN TPC 등의 이야기들은 마블 히어로들 각각의 에피소드였다.
최근의 헌트 홈페이지는 더 이상 글을 읽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고, 극복했다. 수시로 들어갈 수 있다.
어쨌든, 나의 프레인 이야기는 여기까지.
‘ㅍ’ 들어가는 워드를 좋아하는 것 같으나 나 피망 싫어한다. 피식.
이제 봤네, 이런...
피자에 피망 넣는 것도 싫어하겠군.
피자에 피망은 좋아하는데!!?
뭐야 피자면 다 좋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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