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오늘은 외할아버지의 짐을 정리했다.

in #kr7 years ago

지난 일요일 삼우제를 끝으로 나의 외할아버지를 보내드렸다.

한 평생 나라를 지킨 대가로 그는 현충원에 묻혔다.

아무래도 마음은 놓이지만 마음 한 쪽에 쓴 맛이 묻어나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다. 


많이도 들었던 얘기가 있다. 

그의 집안 사정 상 동생들을 위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시험을 치뤄 군대에 입대했다는 사실이다.


그 덕분인지 그의 동생들을 늙어서도 여유가 있었다.

다만 자신만 빼고.


나는 그가 복무할 당시에는 태어나지도 않았다.

은퇴 후만 기억에 남아있는데, 가장 선명하고

증거까지 확실한 그의 취미가 하나 있었다.


암 수술 후, 재발하기 전 그의 기력이 남아있을 때까지

그는 손에서 펜을 놓지 않았다.


어릴 적 외가에 가면 항상 그가 자랑스럽게 보여주던

한자와 영어로 꽉차있는 어마어마한 두께의 노트 수 십권.

노자, 맹자, 공자 할 것 없이 정리했던 그 노트들.

그것이 그의 자랑이자, 자존심이자, 불꽃이였을까.

그는 펜을 잡지 못하게 된 그 순간부터

끝도 없이 약해져만 갔다.


약해지고 약해져 그가 다시 어려졌을 때,

나의 어머니는 그의 침대 끝자락을 잡고 많이도 우셨다.

그의 심장이 멈추기까지. 그리고 멈추고 나서 한동안.


그리고 나는 오늘 눈물 대신 땀으로 그를 찾았다.

분명 없이 사셨던 분인데,

정리할 것들은 산더미였다.


그의 옷가지 몇 봉지

그가 모았던 가구들

그가 썼던 침대 매트리스까지

나는 녹아내리며

묵묵히 많은 짐들을 혼자서 날랐다.


정리가 끝난 후 

오랜만에 그의 노트를 훑어봤다.

나는 여전히 그것들의 의미를 

읽지도 못하지만,

그의 정신이 서려있는 듯

노트는 뜨겁게 느껴졌다.

Sort:  

의미있게 사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 대단하신 분입니다

훌륭한 분을 외할아버지로 두셨네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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