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고생하신 며느리분들 덕에 즐거운 설 보냈습니다.

in #kr7 years ago (edited)

어렸을 적 명절은 그저 즐거운 날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척들을 보고 같이 뛰어놀 수 있는 시간이였으니까요. 특히 설날은 어마무시한 용돈을 받을 수 있는 날이라 더욱 신났습니다. 설과 추석은 많이 쉴 수 있는 날이며, 친척들과 놀고 용돈도 받아 손 꼽아 기다리는 날 중 하나였습니다.

어른이 되고나니 명절이 그저 즐겁지만은 않더군요. 특히 결혼을 한 지금은 더욱 즐겁지만은 않았습니다. 전에는 몰랐던 고생하시는 분들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죠. 즐거운 명절을 위해 고생해주시는 어른들이요.

제목에서 명절 고생하신 며느리분들 덕에 즐거운 설을 보냈다고 명시했는데, 사위분들도 고생 많이 하시는 것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사위의 입장이니 이해하지 않을 수 없지요. 그래도 현 문화상 며느리들이 더 고생하고, 유독 힘든 명절을 보내지 않나 생각합니다. 명절 며느리 고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명절 준비 중 가장 힘든 제사에 대해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제사는 후손들이 조상의 넋을 기리고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예를 올리는 전통문화입니다. 고려시대 제사 의식이 유입되고 조선시대에 널리 알려지고 정착되었습니다. 제사상은 집안형편에 따라 달라졌으며 제례와 관련된 문헌들을 보면 보통 소박하고 간소한 제사상을 차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사를 지내는 것이 가문의 위세를 과시하는 형태가 되어 점점 화려하고 복잡해졌습니다.

예를들어 조선시대 때 신분에 따라 차등을 두어 제사를 지냈었는데 1품 이상은 3대, 7품 이상은 2대, 일반 서민은 부모에게만 제사를 지냈었습니다. 4대 이상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는 임금님의 허락이 있어야 했습니다.(5대 부터라는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갑오개혁 이후 신분제가 철폐되면서 양반처럼 보이기 위해 고조부까지 4대 봉사에 집착하게 됩니다. 심지어 정부가 허례허식을 경계하여 봉사는 2대까지만 하고 성묘는 간단한 제수로 진행한다고 준칙을 제정했으나 4대 봉사가 지금까지 이어져 온 집안이 많을 것입니다.(현실과 거리가 있는 준칙이었고, 1999년 폐지되었지만 어른분들 말처럼 '당연히 해야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 언급합니다.)

이렇게 힘들게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 이쯤되면 한 번 여쭙고 싶습니다.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어른분들께서 믿어 으심치 않은 공자님이 정말 이렇게 지내라고 하셨는지요.

성인(聖人) 분들이 그러하듯 사후세계에 관해 제자가 묻자 공자께서는 "사람의 일도 잘 모르는데 귀신의 일을 어떻게 알겠느냐? 살아생전 일도 잘 모르는데 죽어서의 일을 어떻게 알겠느냐"하고 답하십니다. 의문이 생깁니다. 제사는 죽은 사람을 모시는 행위가 아닌가요? 정말 공자님이 제사를 지내라고 하셨나요?

네. 제사를 지내라고 하셨습니다.
아니요. 죽은 사람을 모시는 행위가 아닙니다. 나를 낳고 키워 준 조상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행위입니다.

공자님께서 죽은 사람을 모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낳고 키워주신 조상님들께 고마움을 표시하는 행위로 제사를 지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문화혁명 당시 많은 문화가 바뀐 이유도 있겠지만 중국에서는 간단한 음식을 올리고 마음을 올려 제사를 지낸다고 합니다.

먹고 사는것(말 그대로 굶지 않는)에는 문제가 없는 지금도 제사에 대해 이런저런 말이 나오는 데, 풍요롭지 않았던 과거에는 더 많은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요? 재여라는 제자가 공자님께 질문합니다. 조상께 예를 다하는 것 중에는 3년 동안 묘 옆에서 생활을 해야하는 것도 있는데 그럼 누가 농사를 짓고, 뭘 먹고 사냐고요. 공자님의 답은 명쾌합니다. "예는 서민에게 내리지 않는다."

조선 건국 초 양반의 비율은 5% 내외였습니다. 신분이 사라진 지금 수치로 나타낼 수 없는 명예나 권력을 제외하고 연봉을 기준으로 본다면 상위 5%의 연봉은 8,887만원입니다. 양반도 품에 따라 제사를 지내는 것이 달랐으니 양반 중에서도 3대 제사를 모시는 상위 2프로는 현재 연봉상위 0.1% 6억 5500만원을 연봉으로 받으시는 분들이 해당됩니다. 다시 한 번 공자님의 말씀을 되뇌어 봅니다.
"예는 서민에게 내리지 않는다."


제사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 본연의 가치를 잃고, 이렇게 해 왔으니 해오던 대로 해야한다며 무리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제사상 차리는 비용도 맞벌이로 벌어오는 시대에 제사상은 주로 며느리들이 준비를 하니 그것 또한 안타깝습니다. 처가에서야 집안일을 돕는다지만 친정에서는 집안일을 도우면 오히려 색시에게 독이 될까 섣불리 집안일을 돕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번 명절도 즐겁지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보냈습니다. 조상님들을 위해 제사상을 차리며 화목한 집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집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명절 전후로 명절증후군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기사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명절을 그저 즐겁게 보낼 수 없기에 나타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사 중요합니다. 명절 맛있는 음식? 먹을 수 있어 정말 행복합니다. 하지만 명절에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자주 볼 수 없는 친척들이 모여 다 함께 웃을 수 있는 것 입니다. 그동안 묵묵히 희생해주시는 분들덕에 즐거운 명절을 보낼 수 있었지만 언제까지나 희생을 바래서는 즐거운 명절이 계속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명절 고생하신 며느리분들 덕에 즐거운 설 보냈습니다.


주제를 정했을 때, 적으면서도 계속 걱정되어 말을 붙입니다. 실생활을 하며 실제로 만나본 적은 없지만 여성과 남성 사이 사회적 역할에 대한 불만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사회적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이 겪고 있는 불편을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해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겪는 불편만 말해서는 그것이 해결되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서로의 불편에 대해 공감해주고, 이해를 통해 합의를 이끌어 나갈 때 가장 부작용이 없이 해결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색시의 편에 서서 삶을 보려 노력합니다. 색시 또한 제 편에 서서 삶을 봐 줄 것이라 믿기 때문에요. 불편함을 당장 바꿔 줄 수 있으면 그것이 최선이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감사라도 해야겠다 생각합니다. 이 글은 그 시선의 일환입니다.

참고 한 글
제사와 차례는 기복의 일종, 국가기록원, http://theme.archives.go.kr/next/koreaOfRecord/jesa.do
공자가 조상에게 제사 지내라고 한 이유, 오마이뉴스, 김기동,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10822
통계로 보는 조선의 신분제, 통계청, http://hikostat.tistory.com/1934
당신의 연봉은 상위 몇%입니까?, 동아경제, 박재명, http://news.donga.com/Economy/more29/3/all/20171012/86706908/1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명절 연휴 마무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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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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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하는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 시간 자체가 그들에겐 악몽이 될수 있죠. 육체적인 부분, 심리적인 부분 모두... 하지만, 중요한건 서로 조금씩만 배려하게되면 참 즐거운 명절이 될수도 있진 않을까 감히 말해봅니다.

와.. 정말 잠을 조금만 자셔도 되나봐요. 놀랍고 부럽습니다.
즐거운 명절이 이어지면 좋겠는데 주변에서 좋지 않은 이야기들이 들려와 걱정입니다. 말씀처럼 서로서로 배려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좋겠습니다 : )

아핫!! 제 글을 보셨군요..ㅋㅋ 명절동안은 음주를 자주해서 수면 스케줄이 다 엉망이되서, 다시 맞춰야할듯 합니다.^^ 이젠 명절이 끝났으니.. 함께사는 가족들끼리 서로 배려하며 지내면좋을것 같네요.^^ 월요일이네요. 화이팅하세요.^^

반갑습니다 글 잘읽었어요~
팔로우&보팅하고 갑니다~^^
시간나시면 맞팔 부탁 드릴께요!

감사합니다 : )

저흰 제사가 없어요. 그냥 가족들이 만나서 먹고 얘기 나누죠. 제사를 안지내니, 함께 놀러도 자주 갑니다. 음식 만드는 부담도 덜하구요. 아마 사회 전반적으로 점차 이렇게 변화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팔로했어요~

제사가 없는 명절은 @jungjunghoon님 말씀처럼 함께하는 명절이 되는 것 같아요. 제사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모두가 즐거운 명절이 되면 좋겠습니다 : )

저희 집은 사정상 외가 제사상을 어머니가 준비하셨는데 힘드셔서 작년부터 제사상을 안 차리고 납골당만 가요! 조상님들에게 감사함을 표하는게 중요한 거 같아요.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 아니겠습니까?
앞으로 많이 바뀌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

캬! :D 엄청난 글입니다. 사실 저는 아버지께서 독자시라 4인 가족(부모님,
누나, 저)끼리만 명절을 지냅니다. 한편으로는 수 많은 친척들이 모이는 집들이 부러웠지요. 그래서 어머니께서는 명절증후군 이런 것을 모르겠다고 하시고 제사 음식도 즐겁게 부치시더라구요 :)
그러면서 부모님 두 분께서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변하고 시대가 달라졌다. 이제 우리 대까지만 제사 지내고 너희 대에서는 제사 지내지말고 먹고 싶은 음식 모아놓고 기념만해라"
앞으로의 제사 풍속은 어떻게 달라질지도 궁금하네요 :)

부모님의 말씀에서 따뜻함을 느끼네요. 사실 제사 문화를 그만두거나 축소하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닐텐데 대단하십니다. 좋은 글 뿐만 아니라 정성스러운 댓글로 찾아주시니 감사할 다름입니다. 감사합니다 : )

진짜 명절간 고생하신 여성분들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ㅠㅠ덕분에 행복한 설연휴 보낼 수 있었습니다 ㅠㅠ

정말 덕분에 행복한 설 연휴였습니다. 일상으로 복귀가 겁이나네요

업봇&팔로우 합니다.
"덕분에", "감사합니다" 라는 말은 언제나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그 말을 하는 사람까지 빛나게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보팅 팔로우 감사합니다.
말하는 사람까지 빛나게 한다는 말이 멋있네요. 소중하지만 아끼지 말아야 할 말인 것 같습니다.
@doctorfriend님 덕분에 미소짓습니다.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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