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벌고 하루살기] 담배 불 좀 꺼주소?

in #kr7 years ago (edited)


어차피 모두는 하루를 산다. 부자라고 하루를 이틀처럼 살 수 없다. 나의 소박한 하루가 누군가의 간절한 내일이었을 수 있다. 매사, 매사 또 매사를 감사해야한다. 두 발로 걷고 있는 것조차 무릎과 관절이 아프고 나서야 직립보행의 즐거움을 깨닫게 된다.

한 낮의 뙤약볕을 일광욕이라 생각하고 이런 저런 산비탈의 풍경조차 봄나들이라 생각한다. 남들 다 쉬는 빨간 날 한산하게 출근하는 것도 마치 몰래 하는 연애처럼 설레어한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자. 그럼 인생이 행복해지는가?

오늘은 세 명이 함께 가는 일이다. 어제 같던 농수로 일을 삼일 째 계속하는 중이다. 다른 두 사람은 이 현장이 생경하다. 이럴 땐 그 현장을 알고 있는 내가 짐짓 여유로운 척 할 수 있다. 두 사람은 낯선 현장과 낯선 사람들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한다.

한 사람은 육십을 넘긴 작은 체구에 늘 야구모자와 면장갑을 끼고 있는 아저씨다. 아니나 다를까 세 명이 함께 움직인다는 것을 알고 난 후 기회를 봐 슬쩍 내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본다. 다른 한 사람은 무척 말랐다. 움푹 들어간 눈, 튀어나온 광대뼈 ,야윈 얼굴, 낡은 안전화 그리고 그 위의 바지 끝단을 추스르는 각반까지 전형적인 노가다 허당이다.

그는 밖에서 연신 담배를 빤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담배를 사야겠지요?" 하고 묻는다. "이 담배로는 안되겠지요?" 하고 또 물어본다. 근처에는 담배 가게가 없으니 사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한다. 사무실 옆 담배 가게로 들어가려다 손가락 사이에 든 장초를 보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또 깊이 담배를 빤다. 인력소 소장은 슬쩍 내게 잘 데리고 일하라고 당부 아닌 당부를 한다.

어제 저녁 소장에게 여러 번의 문자 메시지를 보낸 모양이다. 문자 그만 보내라고 소장이 그에게 큰소리로 이야기한다. "어디 갑니까? 누구랑 갑니까? 아, 그렇습니까?" 말은 똑똑 부러지지만 사내의 부산억양의 말들은 사무실의 대기와 약간씩 어긋나 있다.

힘없고 구부정한 모습으로 사무실 밖과 안을 오가는 모습과 그의 말들이 점점 사무실에 보태어질수록 사무실 안 사람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하는 중이다. 그렇게 눈에 띄는 부산 사내를 데리고 현장으로 가는 차에 올랐다. 이런 날은 특히 조심해야한다. 가급적이면 저 사내와 함께 일하면 안 된다. 특히 위험한 일을 할 때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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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중한 콘크리트 수로관을 집어올리는 클램프를 채우는 일 따위는 그에게 절대 시켜서는 안 된다. 업자도 이내 눈치를 챘다. 하지만 소장에게 강하게 불평하진 않을 것이다. 이 곳은 어차피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소규모 지역사회다.

역시나 부산사내는 일을 하지 못한다. 아니 않는다. 모든 것이 힘겨워 보인다. 모든 일을 못한다고 한다. 시멘트를 개어서 벽에 바르는 일조차 못한다 한다. 현장에서 업자가 담배를 물고 분주히 일하는 바로 뒤에서 같이 담배를 빤다. 성깔 있는 업자였다면 벌써 집에 가라는 소리가 나오고도 남았다.

하지만 이 업자는 다르다. 그저 허허 웃는 사람이다. 주로 이런 소규모 관급공사를 맡아 하는 모양이었다. 열렬한 태극기 부대의 일원이다. 이렇게 태극기가 있는 조끼를 입고 다닌다. 삼일 째 나를 쓰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가 되면서 식당에서 동의하에 이렇게 사진을 한 장 찍었다. 태극기 부대인만큼 차에 타자마자 문재인 욕부터 점잖게 시작한다. 그런 그가 그저 웃는다. 그런 그를 내가 돌려 칭찬하자 한마디 더 보탠다. 화를 내는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는 열등감이 자리 잡고 있단다. 어제 저녁 난 그랬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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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으러 간다. 물잔을 받고 메뉴를 정하고 간 화장실에서 부산사내를 발견한다. 세면대 앞에서 입고 있는 옷을 씻고 있다. 부실한 이로 소고기 국밥을 허겁지겁 먹는다. 꽤 시장했던 모양이다. 아침에 꽤 많은 동전소리가 그의 몸 여기저기서 들렸던 것을 떠올린다. 식당 종업원을 큰소리로 부른다 오뎅을 더 달라고 한다 추가한 공기밥에 밥풀 묻은 숟가락을 입으로 깨끗이 빤 후 가로지르려한다. 새 숟가락을 건넨다.

같이 일했던 야구모자의 아저씨는 이미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한단다. 업자와 같은 차를 타고 오면서 자신이 전직 교사였고 공무원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는 야구모자 아저씨, 아니나 다를까 내게 자신이 6급으로 퇴직한 공무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마칠 때 얼핏 벗은 야구모자 속의 머리는 분명 전형적인 교장선생님의 그것이다.

막노동하러 와서 자신이 예전에 뭐였네라는 사람의 말을 믿고 안 믿고 간에 그렇게 스스로를 들어내는 이들을 미더워하지 않는다. 그런 말이 오갈법한 술자리도 아닌 작업장갑 끼고 일하는 와중에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치곤 성급하고 안쓰러워 보인다.

아무 탈 없이 무사히 일을 마쳤다. 우리를 태웠던 굴삭기 기사의 카니발 차를 다시 타고 사무실로 향한다. 그 기사가 담배를 물자 어김없이 뒷자리의 부산사내도 담배를 문다. 바람 반 담배연기 반 시골 길 위를 구불구불 지나간다. 잠시 후 창문을 내리고 조수석에 앉은 내 어깨를 부산사내가 툭툭 친다.
"담배 불 좀 꺼 주소?"
곱은 손가락 끝의 얇은 담배꽁초가 그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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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마! 누구셔요? ㅎㅎㅎㅎㅎㅎ 오랜만입니다!

참...그 아저씨 밉상이네요...ㅎㅎ

힘없고 구부정한 모습으로 사무실 밖과 안을 오가는 모습과 그의 말들이 점점 사무실에 보태어질수록 사무실 안 사람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하는 중이다.

소설같아요, 정말. 문장이 유려합니다....잘 읽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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