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라미의 자정 일기: 조직의 부품이 되어 가는 시작_3

in #kr3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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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새로운 매니저가 오고 다음달부터 매달 평가를 시작할 거라는 이야기가 오갔다 ( 뭐 그게 매니저가 하는 일이지.) 그로부터 며칠 뒤 매니저는 그 평가 기준의 문서를 보내주었다. 매니저가 보내준 문서를 읽으며 숨이 막혀 오는 것을 느꼈다. 회사마다 이런 문서가 있는 것은 너무 당연할 수 있다. 그동안 스타트업에서만 있다 보니 이런 문서화된 평가를 받지는 못했던 거 같다. 이 문서를 나를 미치게 했던 이전 사람에게 보내 주고 싶을 정도의 구체성이 있었다. 읽으면서 안 좋았던 그 옛날의 기억이 떠올라 숨이 더 막혔다.

자유로운 듯 자유롭지 않은 듯 그렇게 떠돌다가 문서화된 규격의 톱니에 부품으로 끼워지는 느낌이었다.
이 규격에 맞지 않으면 맞을 때까지 깎고 깎이는 아픔이 있겠구나. 재단의 자가 참으로 세세한 듯 세세하지 않은 듯하다. 처음부터 이런 회사에 입사해서 이 규격에 맞게 내 경력을 키웠다면 나는 남들이 생각하는 사회적 성공이란 걸 했을까? 어떻든, 나와 어울리지도 관심도 없는 그 단어. ( ‘그런데 말이죠. 나는 사회적 성공보다는 자유와 행복이 더 중요합니다. 할 수도 없고…’) 어차피 뭐 일하는 건 크게 변하지 않는다. 과연 그럴까? 뭐 큰 차이는 없겠지만 조금 변화는 있겠지.
어떻든 이런 구체적인 평가서와 기대치가 있고, 앞으로 내 모든 말과 행동과 하는 일들이 이 평가서에 의해 평가될 거라는 생각에 답답함이 밀려온다. 이제 나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이 다른 이들에 의해 판단되고 재단 자로 재듯이 평가받게 되겠구나. 뭐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더 심하고 자세하게… 그나저나 이런 평가를 매달 한다고? 세상에나…

매달 하게 되는 평가 때문인지 팀 미팅 분위기가 완전히 180도 달라졌다. 팀원들 사이 기 싸움이 생겼고 비난의 강도가 살벌해졌다. 그리고 그중에는 서로 컨트롤하려는 분주한 움직임이 보인다. 아마 본격적인 평가가 시작되면 앞으로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마치 다들 발톱을 드러내고 조금의 틈만 보이면 할퀼 준비가 되어 있는 거 같았다.

그나마 그 작은 자유라도 누리겠다고 자유를 찾아 스타트업만 다녔던 나는 이 모든 평가의 기준이 참으로 새롭다. 자유가 떨어져 나가고 재단된 평가가 그 자리에 들어와 돌아가야 하는 톱니바퀴의 부품이 돼 가는 나를 보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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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슬픈말인듯함다... 조직을 굴러가게 하는 톱니바퀴에 비유 많이 하긴 하죠...ㅠㅠ

e7님 안녕하세요? 추석연휴 잘 보내시고 계시기를 바랍니다.
행복한 명절 되세요~

와~ 참 실리콘 밸리에 대해 환상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 바람소리님 글 한번 들 읽어보면 좋을 거 같습니다.
책 한번 내셔도 될 거 같아요. 예전에 "일본은 없다"라는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된 이유가 일본에 대한 환상을 깨면서 재미도 있기 때문에 그랬는데, 바람소리님 글도 그런 느낌이 좀 있어요.

아이고 ^^ 비타이님 말씀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냥 작은 저의 경험일 뿐입니다. ^^
좋게 읽어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아직도 일본은 없다를 안 읽었네요 ㅋㅋㅋㅋㅋㅋ ^^;;
너무 감사드리고요. 늘 찾아 읽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해요~.
즐거운 명절 보내고 계시기를..^^

오호라... 의외네요
역시 뭐든지 실체는 직접 보고 경험해봐야 정확히 알 수 있는 법이네요ㅎㅎㅎ

뭐 부서마다 회사마다 다 다르겠지요. 저는 저의 분야에서 제가 겪은 일들을 조금 적어 보았습니다. 항상 공급보다 수요가 많다 보니 경쟁이 점점 더 살벌해지고 직원들 이동이 많네요. 어떤 분은 직원을 연필에 비유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깍아 쓰고 버리는 연필로 비유 하더군요. ㅠㅠ

팀원들 사이 기 싸움이 생겼고 비난의 강도가 살벌해졌다. 그리고 그중에는 서로 컨트롤하려는 분주한 움직임이 보인다.

서로 감시하게 하는... 이거 익숙한 느낌인데요..
자기 손에 피 안 묻히려, 부하들 손에 칼을 쥐어주며 서로 경계하라는... 그러면서 공식 석상에서 자신은 좋은 모습으로 나타나 달래 주는 척하는... 군주론에 이런 내용 비슷한 내용이 나오는...

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렇군요.
뭐 어디고 다 비슷할 거 같기도 하고요. 강/약이 있겠지만요 ㅠ
쟈니님 즐거운 명절 보내고 계시기를 바랍니다.^^

조직의 부품,, 시리즈를 빠져서 읽었네요. 써클님이 회사에서 겪었던, 또 지금 겪고 있는 일들에 읽는 저도 숨이 턱 막히는 거 같았어요. 모쪼록 얻고자 하시는 자유의 기록이 쓰여지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꺅! 부품 시리즈를 읽어 주셨다니 너무 감사합니다.ㅠㅠ ^^ 자유의 기록 ^^ 너무 멋진 말씀이시네요. 최선을 다 할게요~ 감사해요 솔메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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