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비와 준비

in #kr2 years ago (edited)

1 어제는 작업을 함께하는 사람에게서 온 연락을 확인하고 잠에 들었다. 이번 작업은 완벽을 추구하기보다는 스스로 정한 몇 개의 구체적 목표를 이루는 데 의의를 두기로 했다. 어제의 연락은 그 목표 중 하나와 관련이 있었다. 작업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완벽에 집착하게 되지만 결국은 다시 돌아와 나은 선택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다행이야. 오랜만에 푹 잤다.


2 고질적인 오른쪽 골반통. 11월 초 먼 거리를 달린 후로 통증이 시작되었다가, 달리지 못해 불안한 마음으로 한 무리한 산행 때문에 통증이 심해졌다. 보름 정도 집에서 간단한 운동만 했다. 달리지 못할 정도로 아픈 건 아니었지만, 반복되는 통증에는 문제가 있지 않을까 걱정돼 모처럼 푹 쉬기로 했다.

3 다시 달리기로 계획한 것이 12월의 시작인 내일. 갑자기 추워진 날씨를 느끼며 상표도 떼지 않은 채 넣어둔 겨울 운동복을 꺼내 입어봤다.


4 다가올 겨울을 걱정하며 10월에 운동복 몇 개를 사뒀다. 하나는 세일 기간에 휩쓸려 산 옷이었고, 하나는 추워지면 필요할 것 같아 미리 사둔 옷이었다. 사놓고 한참 후회했다. 세일 때 샀던 옷은 볼 때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얼마 전 사이트에 들어갔다 같은 옷을 할인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냥 돈 좀 더 주고 마음에 드는 걸로 살 걸, 어차피 사놓고 한 번도 안 입었는데 그냥 좀 기다릴 걸- 그런 후회가 들었다.


5 10월엔 옷을 잔뜩 샀고, 11월 들어서는 음악과 관련된 소비가 시작됐다. 이번 작업에 필요할 것 같은 가상악기를 산 것이 지출의 시작이었다. 작업하다 알게 된 어떤 악기, 관심이 생겨 찾아보다 지금이 블랙 프라이데이 기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마음이 급해졌다.

6 할인해도 비싼 가격이었지만, 사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의연한 마음으로 샀다. 그것이 끝일 줄 알았는데, 결제를 시작으로 전부터 써보고 싶던 가상악기와 플러그인이 끝없이 눈에 들어왔다. 심지어는 할인하지 않는 신디사이저까지도 사고 싶어졌다. 이것도 사야 하고 저것도 사야 하고, 정말 만 불은 있어야겠는데. (끝에 가서는 신디사이저를 여러 개 찾아보며 지금 할인하지 않아줘서 고맙다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7 계획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썼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알뜰하게 필요한 걸 잘 샀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모든 가상악기가 일제히 30~60% 할인하는 걸 보면서 앞으로는 11월을 중심으로 돈을 모아놔야겠다고 생각했다.


8 겨울 운동복을 처음 갖춰 입어본 오늘. 기온을 확인하러 잠깐 집 밖에 나갔다 왔다. 마음에 들지 않던 옷들은 가볍고 따뜻했다. 운동복을 입은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구매를 후회했던 것은 한 번도 입고 달려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다. 미리 잘 사둬서 계획한 날에 달릴 수 있게 되었다. 다행이다. 이번 달에 사야 했다면, 다른 지출이 많아 사지 못했을지도.

9 지금보단 나중에 필요할 것을 상정하고 뭔가를 잔뜩 샀던 10-11월. 쏟아지는 영수증을 정리하며 준비와 낭비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나 생각해봤다. 내가 뭘 원하는지, 앞으로 뭘 할 것인지를 알고 있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비싸도 잘 쓰면 되지. 실제로 잘 쓰고 있고, 앞으로 더 잘 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소비로 인해 불필요한 고민의 시간이 줄어든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결정했으면 후회하지 말자.


10 새로 산 가상 악기를 연주해보면 한 차원 위의 사운드가 펼쳐진다. 내가 그토록 원했던 것이 단지 돈을 쓰면 되는 것이었나- 싶은 허탈함이 들지만, 그동안 열심히 해왔으니 그런 감정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이번에 산 가상악기 모두 실제 악기로 사서 써볼 수 있게 더 열심히 해야지. 의지를 불태워본다.

11 달리기 시작한 것이 이맘때쯤이라서일까. 모두가 잠든 캄캄한 새벽, 얼굴을 얼어붙게 하는 차가운 날씨가 나를 다시 설레게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작업도, 달리는 일도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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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님 일기 반갑네요- 보고싶었어요 ☺️ 가상악기도 달리기도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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