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풍경'이 있는 음악. 당대의 삶이 담긴 음악

in #kr-writing7 years ago

"I hate jazz."

영화 ‘라라랜드’에서 미아(엠마 스톤)는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과 썸을 타는 시점에서 이런 말을 한다. 살짝 흥분한 세바스찬은 미아를 재즈 클럽에 데려가 재즈가 얼마나 좋은 음악인지(자신이 얼마나 재즈를 좋아하는지) 열정적으로 설명한다. 미아는 그런 세바스찬의 모습을 좋아하게 되고, 재즈 역시 좋아하게 된다.

그 대사를 들으면서 얼마 전 지인에게 재즈가 싫다는 말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 영화 속의 말과 나의 말은, 문장은 똑같지만 작은(클 수도) 차이가 있다. 영화 속의 대사는 요즘 사람들(젊은 세대)에게 재즈는 낡고 어려워서 듣기 불편한, 인기 없는 음악이라는 뜻이다. 내가 재즈를 싫어한다는 말은 개인적인 사건들을 경험하며 나왔다.

90년대 초, 중반 한국에서는 묘한 재즈 열풍이 잠깐 있었다. 재즈나 블루스를 전문으로 틀어주는 카페들이 생겨났다. 재즈를 좋아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인기를 얻었다. 그 소설 속에는 재즈를 들으면서 하이네켄이나 밀러 병맥주와 함께 땅콩을 까먹는 장면이 멋있게 묘사되었다. 국내 몇 소설에도 하루키를 따라한 듯한 재즈 묘사가 등장했다.

‘재즈’란 이름으로 드라마가 나오기도 했다. 젊은 재벌 2, 3세가 노는 럭셔리한 카페에서는 재즈가 흘러나왔고 인테리어 소품으로 포켓볼 당구대와 다트가 놓여 있었다. 빌리 헐리데이의 음악이 CF에 나오면서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블루스 하우스’는 힙한 공간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에 록과 블루스, 재즈를 들을 수 있었던 흔치 않은 곳이었기 때문에 비싼 맥주값이 부담스러웠지만 자주 들렸던 곳이었다. 하지만 재즈 유행이 살짝 불면서 그곳에 가는 것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예술에 깊은 조예가 있는 것’을 동경하는 사람들은 그곳에서 자신의 지식과 취향을 타인에게 드러내고 싶어 했다. 문제는 그 지식과 취향이 ‘자연스럽게’ 드러나지 않는 것이었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타인의 취향을 ‘계몽’하려고 했다. 조금이라도 강한 록음악이 나오면 ‘모베터 블루스’ 같은 재즈를 틀어달라고 요구하는 식이었다.

‘모베터 블루스’는 분명 좋은 영화이고 좋은 음악이었지만, ‘예술에 깊은 조예를 갖추는 것’을 동경하는 사람들은 단지 자신의 우월감을 과시하기 위한 배경으로(도구로) 활용했다. 재즈는 ‘예술적인 우월감’을 드러내는 도구로 그치지 않고 계급과 신분의 우월함을 나타내는 도구로도 사용되었다. 버클리 음대 혹은 그 대학 주변의 인스티튜트에서 학위증이나 수료증을 받아 오는 것도 일종의 신분을 표시하는 증표가 되기도 했다.

하루하루 살아남아야 하는 사람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신의 생존이 아니라 부모를 부양할 걱정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런 재즈 문화는 다른 세상의 얘기였다.

아이러니하게도(어쩌면 당연하게도) 90년대에 그러한 재즈, 블루스 문화의 유행과 함께 다른 한쪽에서는 새로운 민중음악이 나타났다. 가난한 이웃들을 담담히 묘사한 서정적인 가사와 부드러운 멜로디가 많은 사랑을 받았다. ‘청계천 8가’가 그 대표적인 곡 중의 하나다. 가사에 나오는 ‘가난의 풍경’은 외국 작가의 조각 작품과 매끈한 인공하천으로 깔끔하게 덮여 사라져 버렸다. 풍경은 사라졌지만 가난은 보이지 않는 곳에 여전히 남아 있다.

흑인 노동자들의 노동요였던 블루스, 하위 계층의 애환을 담은 재즈가 90년대 한국에서는 상위 계급을 드러내는, 혹은 상위 계층을 열망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음악이 되었다. 그리고 현재도 그 이미지는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라라랜드’에서의 미아가 재즈가 싫다는 말과, 내가 재즈가(블루스가) 싫다는 말은 그런 차이가 있다. 음악 자체를 즐기지 않고 음악을 자신을 과시하는 도구로, 음악을 계급화해서 소비하는 경향이 싫다는 의미다.

‘예술의 사회경제사’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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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든 팝송이든 인디밴드 음악이든 힙합이든지 간에
모두 대중음악의 하위장르인데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무식함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죠

네. 그렇습니다. 음악을 ‘자신을 높이는 도구’로 이용하는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만 하지 않으면 좋을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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