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임상심리전문가의 정신장애 이야기 #21] 정신장애 진단을 내려놓는 지점에서부터 심리치료가 시작된다

in #kr-psychology6 years ago (edited)

2018년 10월 20일 연세대에서 열렸던 상담심리학회 학술대회에서 들었던 정신과 전문의 이영문 선생님 강의에서 생각의 소재를 얻어 몇 마디 적어봅니다.(몇 마디 적는다고 시작했는데 좀 길어졌습니다.)

듣고 싶었던 강의가 마감이 돼 버려 어쩔 수 없이 듣게 된 강의였는데, 감사하게도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가 생겼습니다.

우선, 저는 심리치료에서 정신장애 진단의 중요성에 관한 의문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진단 기준 자체가 사회문화적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이상과 정상을 가르는 기준의 설정에는 여러 정치경제문화적 알력이 작동하게 돼 있습니다.(이와 관련하여,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 같은 책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임상가라면 한 번쯤 읽어봐야 한다고 강연자가 말했던 푸코의 『광기의 역사』에 고고학적 방식으로 그런 내용이 잘 서술돼 있습니다. 요즘 같았으면 정신과에 입원됐을 사람이 과거 어떤 나라 어떤 지역에서는 주술사나 치료자, 권위자의 역할을 할 수도 있었겠죠. 어떤 때 어떤 지역에서는 그와 같은 사람이 마녀로 몰려 화형 당하기도 했을 것이고요.

예전 같았으면 에너지 넘치고 호기심 많은 아이 정도로 치부되었을 아이들이 ADHD라는 진단명에 갇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정말 약물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아이 스스로나 부모가 모두 고통스러운 경우도 있을 테지만, 불필요한 과잉진단의 우려가 존재하는 게 사실이죠.

진단 기준은 최소한 시대에 따라 유동적이고, 때로는 특정 진단에 해당되지 않을 수도 있는 사람에게까지 확장돼 적용되기도 합니다. 여러 통계적 기법을 적용해서 기준을 보다 세심하게 만듦으로써 진단적 정확성을 높이고자 하지만 불완전하고 오진 가능성이 늘 있습니다. 유동적이고 불완전하고 때론 불필요해 보이기도 하는 그런 진단이기 때문에 진단을 내릴 때는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진단을 내리는 게 환자나 내담자에게 도움이 될까?

제 경험상으로는 공황장애를 포함하는 불안증, 정신병적 증상이 수반되는 우울증, 양극성 장애, 망상이나 환청이 심한 조현병, 일상생활을 저해할 정도의 강박증, ADHD 등(더 있을 텐데 일단 생각나는 건 이 정도..)이 진단을 통해 적절한 약물치료를 받음으로써 증상이 효과적으로 개선됩니다. 이런 경우 진단이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일상생활 기능이 크게 저하되지 않는 신경증의 경우 진단이 크게 중요치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더욱이 앞서 열거했던 정신장애도 진단을 내린 후에는 그 진단을 잊는 것이 좋습니다. 진단이라는 틀에 한 사람을 가둠으로써 정작 그 사람을 못 보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하지만 저도 진단이라는 틀에 한 사람을 가둘 때가 많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면 안 된다고 매번 각성하고 반성할 뿐이죠.)

더욱이 이영문 선생님은, 아마도 푸코 철학의 영향도 받으신 것 같은데, 진단이 구체화될수록 환자와 의사 사이에 권력관계가 형성이 된다고 말합니다. 이런 권력관계에서는 의사가 전문가이니 의사의 말을 따르는 게 최선의 치료이죠.

정신장애의 진단 기준에 근거한 의학적 치료(보통은 약물치료)에는 일장일단이 있습니다. 장점으로, 의사 말을 따르면 급한 불은 끌 수 있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환청이 두드러지는 정신병이나 ‘이제 정말 죽는구나’라고 극한의 공포를 경험하게 되는 공황장애 같은 경우 약물치료를 통해 드라마틱하게 증상이 호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땐 정신과 의사의 말을 따르는 게 최선입니다. 진단을 내리는 게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죠.(물론 정신병을 지닌 경우, 치료가 도움이 된다고 스스로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기 때문에 치료에 대한 가족 동의가 기본적으로 필요하죠.)

하지만 불을 끈 이후의 삶을 다루는 데 있어 의학적 치료는 한계를 지닙니다. 조현병에서 환청이나 망상 같은 양성 증상이 드라마틱하게 개선됐다 하더라도 정서 표현에서의 어려움이 심하고, 일상 생활에서 즐거움을 경험하거나 기대하지 못 하고, 세수하는 것조차도 힘들 정도로 무기력한 등의 음성 증상을 개선하는 약물은 제가 알기로는 아직 개발되지 못 했습니다. 이런 증상은 보다 근본적인 환자의 inner life와 연관되는 것일 수 있죠. 약물이 닿지 못 하는.

이 지점에서부터는 증상을 제거하거나 완화시키는 데 초점을 두는 의학적 모델이 도움이 잘 안 됩니다. 진단이 불필요해지는 것이죠. 보다 근본적으로 환자가 정상/이상 어느 쪽에 위치해 있는지 구분하는 게 의미가 없습니다. 이상에 둔다 한들 뾰족한 수가 나오는 게 아니니까요. 오히려 낙인이 될 뿐입니다.

이 때부터 필요한 게, 진단을 버리고 권력관계로부터 탈피하여 환자 얘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판단중지하고 잘 들으라는 것이죠.

이 때부터는, 쉽지 않겠지만, 전문가로서의 타이틀을 내려놓는 것이 좋습니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만나는 치료가 훨씬 더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죠. 이영문 선생님은 이런 맥락에서 ‘상담에서는 특히 진단을 내리지 말고, 현상학적 방법론으로 상태 파악에 주력하라’고 요청합니다. 상태 파악에 주력하라는 것.. 전 이 말을 환자 말을 잘 듣고 환자가 경험하는 inner life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로 이해했습니다. 현상학적이라는 게, 제가 잘 모르는 인식론의 영역이긴 하지만, 객관적 실체로서의 진실이 있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고 변화하는 한 사람의 마음 강물(혹은 내러티브, 이야기) 그 자체가 진실이라고 보는 것 아닌가요? 진단이라는 객관의 탈을 쓴 진실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마음 강물을 잘 보라는 말 같습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심리적 평형을 유지하려는 힘이 있습니다. 그게 무너졌다고 하더라도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한 사람만 있다면 다시 회복할 수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정신병 환자는 치료 불가라고 얘기했다 하는데, 대상관계 학파에서 그게 아님을 입증했죠. 대상관계 학파의 치료자들 중에 위니콧은 버텨주는 환경(holding environment)를 강조했죠. 이 버텨주는 환경이 다른 게 아니라 내담자 말을 잘 듣고 내담자가 경험하는 inner life를 반영해 주는 거죠. 이런 게 어떤 식으로든 반영이 잘 안 되다 보니 마음 강물이 고여 썩고, 그 결과 내 안과 밖이 구분이 잘 안 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 정신병입니다(물론 정신병 발병에서 유전적 요소의 비중도 크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근본적 치료는 버텨주는 환경과 연관될 것입니다).

어쩌면 진단을 비롯한 판단을 중지하는 시점에서부터 심리치료가 시작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즉, 심리치료가 작동하려면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서 주관적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마음 강물이 흘러갑니다. 내담자 혹은 환자 입에서 (마음)속사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거죠. 심리치료는 기본적으로 talking therapy입니다. 내러티브 혹은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그 이야기를 잘 듣는 과정인 것입니다. 잘 듣는 존재가 있으면 자기 이야기가 스스로 인식이 됩니다. 이영문 선생님이 말하기도 했는데, 인식이 되면 치료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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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밍이라. 진단에 관해서는 신중해야하며 때로는 그다지 도움이 안될 때도 있다는 데 깊이 공감합니다.
정상을 나누는 기준이란 사회맥락적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하기도 하니깐요.
그렇다고 중증환자의 치료효과를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서도^_^; 고민되는 지점일수밖에 없어요.

저의 내담자로서의 경험을 고백하자면, 과거 상담경험이 있었는데 저는 상담선생님을 무척 좋아하고 신뢰했었습니다.
항상 솔직히 상담에 임했고 덕분에 심리학에도 관심갖게 되었고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만 5회기 정도의 상담이 끝나고 그 이후로 찾아가거나 제 입장에서는 상담에 대해 꽤나 회의적으로 변했습니다..
어차피 우리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가든 환자-선생님과의 공적관계란 사실을 깨달았고 어린 나이엔 그것이 조금 상처였습니다.
그것을 거기서 바라면 안된다는점은 별개로 정말 제가 원하는 건 인간적인 관계였거든요.

하지만 어쨌든 잘 들어주는 사람이 있었고 자기인식이 된다는 점에서 여전히 의미가 있는 일이죠.

제가 스팀잇 한 이래 가장 장문의 덧글을 달아주셨습니다. ㅎㅎ 많은 생각을 하다가 지우다가 하네요. 덧글 조만간 커밍순입니다. ㅎ

그 선생님에게 깊이 마음이 가셨던 모양입니다. 5회기가 그리 긴 회기는 아니지만 어린 나이에는 충분히 상처가 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일상에서는 누군가 내 얘기를 그렇게 집중해서 듣는 경우가 생각보다 드물고 그래서 상담자가 내담자 얘기를 잘 들어주는 것 자체가 일종의 선물일 수 있는 것 같아요. 물론 돈을 받고 상담하니 선물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ㅎ

아 맞아요. 섬세함 감정이 넘치던 사춘기 시절인지라 ^^; 돈을 냈다는 사실을 그만 깜빡해버렸어요. slowdive14님 글 꾸준히 잘 읽고 있습니다. 심사숙고한 댓글도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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