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한달 반
1.. 나는 여행은 싫고 이사만 좋아한다. 짐 싸고 푸는 게 너무너무 싫어서 여행은 싫고 이사만 좋다.
홍콩/마카오에서는 겨우 11박 12일밖에 안 있었는데도 숙소를 7번이나 옮겨다녔다... -_- 설명하려고 쓰다가 넘 길어져서 그냥 지웠다. ㅋㅋ 어쩌다보니 그리 되었어. 그랬더니 치앙마이 처음 와서 한달 일주일 살 방을 잡았을 때 너무너무 좋더라. 물론 루프탑 수영장, 짐, 사우나, 코워킹에 화장실 안에는 욕조도 있는 콘도였어서 좋았던 걸 수도 있는데, 여튼 이제 짐을 풀고 싸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참 행복했었지. 그래서 치앙마이에 오래오래 있을까 싶었는데, 한달 일주일이 지난 지금, 약간 아주 약간 질렸다.
2.. 내일 이사간다.
지금 있는 곳이 정말 완벽해서 그냥 좀 더 있으려고 했는데 어차피 수영장은 비 와서 안 가고(안 와도 안 가고) 운동은 절대 안 하고, 옥상 코워킹 스페이스는 인터넷이 약해서 안 가서, 수영장/짐은 없지만는 싸고 넓은 곳으로 이사하기로 했다. 칸쿤 집에도 수영장이 있었는데 단 한 번도 안 들어갔으면서 왜 도대체 수영장이 있는 집을 찾아다녔던 걸까-_- 혹시나 치앙마이에서 살 곳을 찾고자 하시는 분들이 있을까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지금 있는 곳은 치앙마이에서 가장 힙한 님만해민 근처로, 마야 쇼핑몰에서 걸어서 4분 거리에 있는 Play Condo다. 렌트비는 넓이나 층에 따라 다른데, 우리집은 2층이고 가장 작아서 16,000밧(53.5만원). 거실/부엌과 방이 나누어져 있는 원베드룸이고, 전기세 물세는 별도. 둘 합해서 한달에 1,000밧(3.3만원)도 안 나오는 듯하다. 체크인 시 청소비 명목으로 1,500밧(5만원)를 내야한다. 청소비 이게 젤 별로다. 체크인 전 좀 더러운 것 같아 이사 전에 청소를 부탁했는데도 화장실 개수구랑 침대 밑은 더럽더만 왜 나 나갈 땐 청소비를 내라는 거? 여튼 좀 작아서(혹은 덜렁거려서) 툭하면 식탁과 침대 모서리에 부딪혀 멍이 시퍼렇게 들긴 했지만, 이 집에 사는 동안 아 집 좋다!는 말 최소한 백번은 한 듯. 세탁기랑 전자렌지, 빌트인전기렌지에 식기, 토스터, 밥통, 찜통, 조리도구, 청소세제/청소도구, 설겆이세제도 있고 랩이며 위생봉투까지 다 갖추고 있다. 침구도 있는데 죽부인처럼 생긴 기다란 베개까지 있어!
이사했을 때 화장지랑 빨래세제만 샀다. 아 , 칼은 없어서 20밧(670원) 주고 일제 칼도 하나 마련.
그런데 좀 비싼 듯하고 또 자꾸 이 근처나 마야 쇼핑몰에서만 놀게 되는 것 같아 걸어서 15분 거리에 다른 숙소를 잡았다.
3.. 정보를 기록하는 글은 힘들다.
2번에서 저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왠지 디테일이 궁금하실까봐 상세하게 써버렸다... 요전에 댓글로 치앙마이 집값을 여쭤본 분(죄송해요. @eth0619)이 있었는데 아직 답을 안 드려서 미안한 마음이 숨어 있었나보다. 치앙마이 집 값은 동네 별로 집 상황 별로 계약 기간 별로 천차만별인데, 전기레인지가 달린 부엌+세탁기가 있는 원베드룸 형태 중에 이 동네에서 가장 싼 곳은 내가 알아본 바로는 한 달 12,000밧(40만원, 이 번에 이사갈 집). 그런데 저 값에도 전기레인지가 달린 부엌+세탁기가 둘 다 있는 콘도나 아파트는 잘 없다. @gaeteul님이 그랬는데 태국엔 요리할 수 있는 부엌 딸린 집이 잘 없단다. 맞는 말인 듯.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선택하기 전에 가장 고민했던 곳 중 하나는 4,000밧(13.4만원)짜리. 이름 없는 작은 새 건물, 침대 딱딱하고, 침구 없고 부엌 없고 세탁기 없고 베이식한데 깔끔. 무엇보다 가격이 강점. 다른 곳은 The greenery landmark로 7,000밧. 침대 딱딱하고 침구 없고 부엌/세탁기 없고 수영장과 짐 있는 곳. 그런데 가는 길이 공사 중이고 인터넷이 최악이라는 구글 리뷰가 있었어서 제외했다.
지금 사는 곳은 사실 예산(10,000밧, 33만원) 초과였는데 첨 보는 순간 너무 마음에 들어서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조건에 위치까지 완벽해서! 새로 이사할 집도 여전히 만 밧이 넘는데 부엌과 세탁기 있는 집에서 지내보니 그 둘 다 포기가 안 되어서 체크아웃 청소비 1,000밧 포함 한 달 13,000밧. 근처에 6,000바트짜리 후보가 있었는데 방은 부엌은 없지만 진짜 괜찮았는데 그 방 옆 방이 공사 중이고 5층인데 엘베가 없어서... 한참 고민 끝에 포기.
분명 사진이 궁금하신 분들이 있으실 텐데... 마땅한 사진이 없다.. 내일 이사라 지금 집 안은 개판이네...?
구글에 사진들이 있으니 요기 링크... 근데 사진이 더 잘 나오긴 했다.
새로 이사갈 집은 Patitta Apartment. 5층이라 뷰도 좋고 넓다. 사진 링크
4.. 그러니까 집 자랑이나 집 이야기를 하려고 글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ㅋㅋㅋㅋㅋ
번호 일기의 장점이다. 좀 다른 데로 새도 죄책감이 들지 않는군. 치앙마이 생활은 익숙해졌는데, 익숙해지니 비자가 만료되면 다른 도시로 이사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홍콩/마카오서 옮겨 다니는 것에 질렸던 것이 이제 잊혀졌다. 모임에 나갔더니 따로 이야기한 3명이 모두 음식은 말레이시아가 최고라고 해서 말레이시아로 갈까 생각했었다. 쿠알라룸푸르보다는 페낭이 좋다고 해서 페낭으로. 그런데 비자 만료가 9월 중순이라 그 때는 한국이나 일본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오늘내일 급 들고 있다. 방콕발 오사카행 비행기가 편도 13만원이다. 오사카 2주, 한국 3주 정도면 딱이겠다. 한국서 여행자보험도 다시 가입하고. 그런데 일본/한국은 확실히 훨씬 더 비쌀 테니 좀 고민된다.
5.. 치앙마이 사람들
원래는 치앙마이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글이나 하나 써볼까 싶었다. 아니면 먹은 음식이라던가. 사람들을 엄청 많이 만났는데 막상 쓰려고보니 뭘 써야하나 싶네?! ㅋㅋㅋ 한국인은 딱 한 분 만났다. 내가 주최한 스마트캐시 밋업에서 만나 뵈었는데, 20년 트레이딩 노하우로 암호화폐 트레이딩 알고리즘을 짜고 계신다고!
그 외에는 라티노들이나 유럽/미국인/현지인들. 이상하게 난 라티노들을 제일 많이 찾는다.-_- 마치 내가 멕시칸인 양 착각하나 봄. 영어보단 스페인어가 더 편하고 한국어 쓸 때와는 다르게 조심하지 않고 막 말할 수 있어서 좋다(사실 안 그래야 하지만...) 근데 아주 올바른 표현만 쓰는 페루인을 만났는데 처음엔 너 어어어엄청 멕시코인처럼 말한다고 감탄하더니 나중엔 말 끝마다 혼났다. 자꾸 멕시코식 슬랭을 쓴다고 ㅋㅋㅋㅋ
그런데 여기서 디지털 노마드 라티노들을 만나다보면 뭔가 마음이 불편하다. 여기 라티노가 잘 없기도 하지만, 멕시코에 있는 내 친구들 같은 백 퍼센트 멕시칸들이 아니라 다 막 유럽이나 호주 이중 국적이 있다. 일반적인 라티노들이 해외에서 노미딩하며 산다는 게 어렵다는 증거인 걸까.
6.. 내 친구 중 하나는 동남아에 오면 마음이 아파서 더 이상 못 오겠단다. 사실 나도 이토록 싼 값에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는 게 참 감사하면서도, 그럼 이 나라 사람들은 어디가서 작은 왕 노릇하며 살 수 있을까... 잘 없겠지... 싶어서 마음 아프다(그렇다고 작은 왕 노릇이 옳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치앙마이에선 외국인과 현지인이 공존하는 느낌이 난다. 안 가봐서 모르지만 발리 같은 곳은 현지인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이 좀 난다는데, 그건 참 별로다 진짜. 십여 년 전 처음 파타야랑 방콕 수상시장에 갔었을 때 좀 그런 기분이 났었다. 이 나라 사람들은 태국인인데 주객이 전도 되었던 것 같은 느낌. 젊은 태국 여성들을 끼고 다니던 중년의 외국 남성들의 모습도 참 유쾌하진 않았었지. 오늘 본 블로그에선 '집을 사면 태국 여성이 따라 옵니다'라는 광고가 있다는 걸 봤다. @lucky2님이 얼마 전 요즘 기승전돈하신다고 하셨었는데,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여튼 가난하면 가끔 존엄성도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 마음 아프다.
7.. 치앙마이 생활
코 앞에 쇼핑몰이 있다 보니 쇼핑몰 영화관에 세번이나 다녀왔다. 미국 영화 Incredibles 2, 한국 영화 버닝, 그리고 태국 영화 Krut: The Himmaphan Warriors을 봤는데 멕시코에서는 자국 영화도 잘 없고 맨날 미국 영화만 상영하는데, 여긴 여러 나라 영화가 들어와서 무지 좋다. 그리고 외국인 중심적이라 한국 영화/태국 영화에도 영어 자막이 나온다. 한국 영화 경우는 태국어/영어 자막이 함께. 쇼핑몰 서점에 들렀더니 태국어로 쓰인 책은 하나도 없어서 좀 쇼크였다. 우리가 돈 되는 건 알겠지만 너무 관광객/외국인 중심이잖아?? 나는 편해서 좋지만.
버닝은 사실 스팀잇에서 본 리뷰가 너무너무 좋아서 정말정말 보고 싶었었는데 태국에서 개봉을 한다기에 넘 반가워서 개봉 다음날 바로 달려가서 봤다. 지루하다는 평도 꽤 봤는데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바보같은 주인공 캐릭터가 좀 답답했지만. 왜 그렇게 멍한 표정으로 바보같이 달리는 거냐고. 이번에 보고 싶은 영화는 소공녀. 얼른 태국에서 개봉하면 좋겠다.
태국 영화 Krut은 액션/어드벤처/판타지물인데 같이 본 사람은 Pixar나 디즈니에 못 미친다지만 중국인/일본인/한국인은 물론 가끔은 멕시칸/아시아인도 구분 못하는 내 눈에는 아주아주 훌륭했고 내용도 정말 좋았다. Krut은 태국 사원에 자주 등장하는 반인반조의 '가루다'의 태국어인데 뭔가 태국 전설과 관련된 내용인 것 같다. 반인반조가 나타나 외침을 물리치고 끝내 자기 땅을 지켜내는 이야기거든 ㅋㅋ
8.. 이까지 와서 방구석에만 있고 쇼핑몰에만 간 건 아니었다. 코끼리랑 산책도 다녀오고 빠이라고 이웃 도시에도 다녀왔어! 쿠킹 클래스에도 참여하고 일일 명상 코스에도 다녀왔다. 치앙마이 대학 투어도 다녀오고, 반 캉 왓이라는 예술 마을과 곳곳에 사원이 있는 치앙마이 중심지 올드타운에도 다녀오고 그새 맛사지도 여러 번 받았다. 카약 타러 평강에도 다녀왔고 매일매일은 못 먹어도 아직 2일 1 팟타이 실천 중. 태국식 핫팟+고기 부페에도 두 번이나 가서 배 두드리며 배 터지게 먹고 왔다. 그 두달 반이라고 시간 많다고 좀 설렁설렁 다닌 건 사실이었어. 이사하고 나면 8월 말 다른 도시로 이동하기 전에 좀 빡세게 돌아 다녀봐야징.
아, 길다. 두 번에 나눠 쓸 걸 그랬나봐.
나도 뭐지 좀 건조하게 쓰고 싶은데 쓰고 나면 늘 감정 넘치는 글이 된다.
7번에서 포스팅 하심 태국 영화 himmaphan을 줄여서 제 아이디 himapan을 만든겁니다. 히마판은 전설속의 세계로 주로 이종간의 교배물이 사는 세계로 제 포스팅 5-6개월 전것에 보면 나옵니다. 아직도 히마판 이야기를 다 끝내지 못하였답니다. 치앙마이에서 좋은 추억 먼드세요.
술술 읽히네요ㅎㅎ 그곳 물가도 분위기도 조금 느껴볼 수 있구요. 현지인이 주객 전도되는 느낌은
저도 별롤 것 같지만 한번 가보고도 싶은 곳입니다^^
저도 살아보고 싶은삶이당~
이사 잘하고
치앙마이에서 살아가기 좀더 보여줘~ 번호일기 좋다~
태국에서 살고 싶은 1인 입니다.
여전히 바쁘고 활기차게 지내고 계시네요!
서치가 필수 이군요 ... 여러 나라들을 다니시니 각 나라의 합리적인 가격도 대략
짐작 하실거 같아요.. 같은 돈을 가지고도 얼만큼 가치있게 사용할수 있는지
잘 알게 되실거 같아요..
물론 똑똑한 유키님 잘 하시겠지만,
건강 유의하시구요^^ 의미있는 시간들 되시기 바래요! 화이팅!
치앙마이 오래전
몇번가려고 시도만하다 포기한곳인데
이젠 유명여행지가 된듯해요 가서 살아보는것도 좋겠다는생각이 들어요
비지에서 글 써서 비지 보팅 받으려면 비지에서만 수정해야하는데.. Busy는 수정 기능이 잘 작동을 안 한다.. 중간에 1,500밧은 체크아웃시 청소비 명목으로 내는 돈입니다.. 체크인이라고 써놔버렸네.....
오타가 요것 뿐만이 아니네... ㅠ 아오 ㅠ
ㅋㅋㅋㅋㅋ 제가 해봤는데 비지에서 글쓰고 스팀잇에서 수정해도 비지가 보팅해주더라고요~
보팅 받고 수정하는 유연함을 발휘하세요 ㅋㅋ
애나님처럼 노마드이신가봐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발리에 여행간적이 있는데, 솔직히 그런 느낌을 받긴 했어요. 발리 현지인들의 직업군도 그렇고 렌트카 운전해주시는 분이 들려주시는 이야기들도 그렇고 관광객을 위해 존재하는 느낌..
인생을 즐기시면서 사시는 것 같아요.
외국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지내면 참 좋을 것 같네요.ㅎㅎ
글 다 읽고나니 기억나는 건 치앙마이 이사이야기네요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