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m TV #1. 킬러도 동경한 여유로운 삶
TV와 영화에 관한 시리즈는 오래 전부터 예고(?)했으나 그간 컨셉 설정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줄거리 요약을 하는 류의 글을 쓸 이유는 없으며, 그렇다고 딱히 '작품에 대한 평'을 쓰고 싶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늘에야 갑자기, 내 생각에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라고 여겨지는 것에만 충실한 글을 쓰고 싶었다는 걸 깨달았다. 주제는 여러 가지일 수 있으니, 결국 같은 작품이 한 번 이상 등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 컨셉을 잊기 전에 첫 회차를 남겨 보기로 한다.
첫 주자는 동명의 유명한 정치 스릴러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영화로서도 수작인 프레드 진네만(Fred Zinneman) 감독의 1973년 작 자칼의 날(The Day of the Jackal)이다. 간만에 유투브에 멀쩡하게 올라와 있어, 반가운 마음에 쓰게 되었다.
원작 소설을 쓴 프레데릭 포사이스(Frederick Forsyth)는 대중 소설의 모든 요소를 다 균형 있게 넣은 재미있는 작품을 쓰는 작가인데, 행동 중심으로 서술하며 문체도 드라이한 편이다. 개인적으로 그의 오데사 파일(The Odessa Files)과 자칼의 날은 수 년이 지난 후에도 기억이 뚜렷이 남아 있다.
자칼의 날은 간단히 말해서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 골의 암살 작전에 관한 이야기이다. 드 골이 1962년에 알제리를 해방시키면서 생겨난 반대 진영이 그를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실제로 당시 프랑스에서는 OAS(Organisation armée secrète )라는 군인 출신들의 우익 단체가 만들어졌었고, 자칼의 날은 이 단체가 드 골 암살에 실패(역시 실화) 하면서 망명 생활을 시작한 시점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자칼의 날을 정치 스릴러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사실 그게 거의 전부이다. 드 골의 정적들이 고용한 암살자는 정치적 동기가 전혀 없는, 말 그대로 돈으로 움직이는 프로페셔널 킬러이기 때문이다. 코드 네임 '자칼'로 불리는 이 암살자의 치밀한 동선 (그리고 그에 따른 경찰의 추적이) 원작 소설 및 영화의 주를 이루고 있다.
'자칼' 배역을 맡은 에드워드 폭스(Edward Fox)
암살자 '자칼'은 금발 머리의 영국인으로, 꼼꼼하고 차가운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에 대한 개인적 정보는 소설에서조차도 이 정도에 그친다. 정치적 견해가 없음은 물론이고, 도덕, 윤리적인 기준도 없다. 아무런 감정도 내비치지 않으며, 계획 진행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주저 없이, 깨끗(?)하고 신속하게 죽인다.
언뜻 보면 '자칼'에게서는 냉정하다는 것 외에 개인적 특색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처럼 계획으로 이루어지고, 성공이나 실패를 결말로 정해두고 있는 작품에선 으례 주인공인 암살자를 묘하게 응원하게 되는데, '자칼'도 예외는 아니다. 그 말은 곧 '자칼' 캐릭터가 1차원적이지는 않다는 뜻도 된다.
영화 초반부에 OAS 간부들과 드 골 암살 대가를 협상하는 '자칼'
그는 돈을 위해 일을 받아들인다. 그는 드 골처럼 거물의 암살에 대한 대가로 '평생 일을 하지 않아도 될 금액'을 제시한다. 그 정도 거물의 암살에 성공한다면 그만큼 큰 위험에서 가까스로 피한 결과일 것이며, 따라서 앞으로는 절대로 같은 일을 맡을 수 없게 된다는 실용적인 이유에서이다.
타당한 논리임과 동시에, 살인에서 스릴을 느낀다거나, 그 자체로 즐기는 인물도 아니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은퇴를 희망하며 이 위험한 미션을 받아들인다. '자칼'은 자신이 가장 잘 하는 일을, 가능한한 큰 보수를 받고 하고 있는 인물로, 그 일을 하지 않고도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살 수 있다면 그만 두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에게는 '살인'이 일반 직장인의 회사와도 같은 존재임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자칼'에 이입할 수 있게 만드는 그의 가장 사적인 면모는 은퇴 후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사는 목표에서 발견된다. 이는 소설과 영화에서 동일하게 느껴진 요소이다.
소설에서 그는 나름대로의 미식가 면모를 보인다. 음식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이 있다. 저자는 '자칼'의 이런 취향이 정말 까다롭다거나 태생부터 상류층인 인물의 입맛은 아니라고 서술는데, 여기에서 '자칼'의 출신 성분을 엿볼 수 있다. '자칼'의 과거 이야기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도, 여기에서 많은 것이 암시된다. 그는 살인을 통해 그 전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정도의 돈을 벌게 되었고, 그 돈으로 단순히 배고픔을 채우는 것 이상의 즐거움을 느끼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 즐거움에는 음식의 맛과 서비스를 포함한 삶의 방식이 다 포함될 것이다. 드 골 암살에 성공하면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정도의 라이프 스타일이다.
이런 것들은 영화에서는 세세하게 나열하기 힘든 부분이지만, 성공적으로 그렇게 그려진 또 하나의 영화 속 캐릭터로 리플리가 있다. 그 점에서 둘은 상당히 비슷하다. 그러나 '자칼'의 경우 리플리와는 달리 전문적으로 살인을 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영화는 원작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화면상으로 최대한 시각적으로 살릴 수 있는 것들을 활용한다.
가령 영화 속 '자칼'의 의상은 그의 성격과 일을 반영하듯 깔끔하고 절제되어 있는데, 최근에도 패션 시각에서 회자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머리카락과 피부의 색을 고려한 토프-베이지 혹은 블루 계통의 옷에, 넥커치프만 포인트 역할을 하는 모습이 가장 대표적이다. 영화는 최대한의 사실주의를 지향하기 때문에, '자칼'이 챙겨다닐 수 있는 정도의 몇 가지 옷으로 여러 조합을 만들어낸다.
'자칼'이 임무 수행을 위해 선택한 렌트카 알파로메오 2인승 컨버터블도 빼놓을 수 없다. 휴가철의 프랑스 관광객으로 꾸몄다지만, '자칼'의 평소 모습이기도 한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선택한 자가용은 '자칼'을 일종의 007 캐릭터처럼 꾸며주는 영화적인 역할을 하면서도, 원작에서도 드러난 '자칼'의 소비 욕구를 잘 반영하고 있다. 킬러로 살아온 그의 욕망은 어떤 인격의 결함이나 거시적인 목적의 결과로서가 아니라, 취향과 소비 패턴으로 드러난다. 그는 한마디로 댄디한 인간이다.
언제나 그렇듯 누군가의 실수 및 희생으로 인해 '자칼'의 존재는 프랑스 경찰에 알려지게 되어, 일찍부터 추적이 시작된다. 이런 일에 대비해서 그는 염색약과 각종 변장 도구, 알파로메오에 쓸 파란 페인트를 챙겼고, 암살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총은 분리해서 차 밑에 붙이고 다닌다. (사실 알파로메오를 고른 데에는 이런 실용적 이유가 가장 중요하게 작용했지만, 결국 OAS에게서 의뢰 받을 당시의 모습을 바꿀 생각이 없었던 만큼 자연스레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한 결과이기도 하다.)
프랑스 경찰은 '자칼'의 존재를 알면서도 추적을 비밀리에 부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자칼'의 결정적인 실수로 인해 공개 수배를 할 수 있게 되는데, 바로 여자에 관한 실수를 말한다.
'자칼'은 하루 묵은 호텔에서 한 남작부인을 만나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데, 그 어떤 실용적인 목적도 없이 의도한 일이다. 엄청나게 위험한 작전 도중에 상당히 어이 없게 다가올 수도 있는 행동으로, 계획이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에 오만해진 결과이기도 하다. 그의 취향에 맞는 도도한 연상녀를 만나게 되면서 그 오만함이 느슨함으로 연결된 것이다. 이미 은퇴해서 여유롭게 살기 시작한 듯한 착각에 빠진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그때 '자칼'은 매우 위험한 상황까지 와 있었다. 다음날부터 당장 경찰의 추적을 느낀 '자칼'은 숨기 위해 남작부인의 집으로까지 찾아가는데, 그녀가 돌발적으로 그의 총을 발견하게 되어 결국 살인을 하게 된다. 이로 인해 프랑스 경찰은 그를 단순 살인범으로 수배할 수 있게 되고, 결국 '자칼'은 실패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가게 된다.
냉철하고 빈틈이 없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성격적 묘사가 없는 듯한 '자칼'은 이런 장치들로 인해 단면적인 캐릭터에 머물지 않게 되는 것이다. '옷 잘 입는 암살범', '멋진 차를 타는 암살범'으로 영화사에 남은 '자칼'은 관광객으로 분장을 했을 뿐 아니라 실제로 그런 유유한 삶을 선호하고, 그것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결정적 '한 방'을 위해서 위험한 미션을 받아들인 캐릭터이다. 그에 대한 공감이나 이입은 거기에서 시작된다.
[Jem TV] 시리즈에는 일반 영화도 포함시키기로 했다. 어차피 스포일러라는 개념이 성립하지 않을 정도로 예전 것들을 선호하기도 하고, 내가 보는 것들 중에 이야기할만한 TV영화가 많기는 하지만 TV용으로 제작한 영화와 실버 스크린 영화를 매번 구분하기도 귀찮을 뿐더러, 선호하는 TV 드라마는 정말 드물다는 점 또한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영화, TV영화, TV 시리즈, 코메디 등 내가 화면을 통해 보는 것이라면 다 가리지 않고 다루기로 한다.
날이 너무 덥습니다......덥다 ㅠ
저도...날씨가 오늘 심하게 덥네요.
브루스 윌리스의 망작...
아 자칼이라는 영화 들어는 봤는데, 이거랑 연관이 있는 건지는 모름 ㅋ 아마 없을듯
리메이크임;;
암살이 요소란 것 외엔 그닥...위키에 따르면 루즈 리메이크이긴 한데. 아주 루즈한듯
오오.. 고퀄 포스팅입니다!! 저도 영화시청 굉장히 좋아하는데 자주 보러 오겠습니다!!
ㄱㅅ...시리즈가 많아서 언제 다음 회차를 쓸지는 모르겠지만 참다가 쓴거라 자주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ㅎㅎ
자칼
킬러로서의 삶...JemTV 글 감사합니당~ ^^
대문 이미지 브라운관에 반사된 숏이 궁금해집니당~ ㅋㅋ
그 숏안에 또다른 창이 있으며
연결된 또다른 세계~
'스파'시바(Спасибо스빠씨-바)~!
ㅋㅋ생각지 못한 궁금증이네요!
냉철하고 빈틈이없다지만 ..
역시 방심은 금물
후후 제안된 갖가지 이름을 물리치고...
멋진 감상평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이거 한번 봐야겠네요. 아주 어릴때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이야기해준 스토리었는데 나름 흥미진진했었는데.
그랬군요. 실화냐는 질문이 많이 따라붙는 소설 중 하나죠.
Congratulations @jamieinthedark! You have completed the following achievement on Steemit and have been rewarded with new badge(s) :
Award for the number of upvotes
Click on the badge to view your Board of Honor.
If you no longer want to receive notifications, reply to this comment with the word
STOP
To support your work, I also upvoted your post!
자칼은 자동차 도색 전문가군요.ㅋㅋㅋ
도색을 끝내고나서도 바지에는 하나도 묻지 않다니!!!
맥가이버도 해주세요~~ㅋㅋㅋ
맥가이버는 아직 안봤어요.ㅋㅋ
그 명작을 안보셨다니.!!!! ㅋㅋㅋ
전에 주제곡 얘기함서 써놨죠. 유툽에 있는거 같긴 한데 아직 보진 않았다고ㅋ 화질이 너무 심하기도 하고요.
한번 들어본 이야기의 영화인데 보지는 못 했네요. 아론님 댓글처럼 부르스 윌리스가 다이하드로 잘 나가던 시절에 자칼이란 영화가 있었던 것 같은데...
젬티비 다음편 기다리겠습니다.
시원한 하루되세요.
네. ㅎㅎ 브루스 윌리스 영화는 리처드 기어 캐릭터도 그렇고 암살자 외엔 닮은 게 없어 보이네요. 감사합니다. 조금 남은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