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스테이크를 먹는 건 재밌다
한 3개월 가까이 동물성 단백질을 극단적으로 제거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육류, 유제품, 계란까지도 철저히 배제한 식단이었는다. 그다지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건강 상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신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러기로 했다. 그래서 멈추는 것에도 그다지 특별한 이유는 필요 없었다. 고기가 그러워서는 아니었다. 정말 별 다른 이유 없이 스테이크를 먹겠다며 등심을 샀다.
고기를 사서 식사를 준비했다. 우선 고기에 밑간을 하고 감자부터 삶고 냉장고에서 마구마구 꺼냈다. 마늘, 양파, 양송이 버섯, 당근, 아스파라거스, 시금치, 완두콩, 올리브, 자우어크라우트, 버터(냉장고에서 몇 달을 묵혔는데 상태는 좋았다).그리고는 냄비에 물을 끓이고 팬에 올리브 유를 둘렀다. 야채를 손질하고 달궈진 팬에 고기를 올리고 아스파라거스, 시금치를 데쳤다. 그리고는 삶은 감자를 꺼내서 으깨고 고기가 든 팬에는 버터와 월계수 잎, 로즈마리를 넣었다. 고기를 꺼내어 레스팅 하는 사이에 양송이, 당근, 아스파라거스, 양파를 익히고 플레이팅 했다. 그 모든 과정 사이사이에 뒷정리도 틈틈이 해놓았기 때문에 식사를 마친 후에는 팬과 식사에 사용한 식기만 정리하면 됐다.
글로는 표현하기 어렵지만 그 모든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게 굉장히 재밌었다. 예전에 한번에 두 가지를 동시에 하지 않는다며 나를 혼내던 매니저도 생각나고, 한번에 한 가지만 하는 게 옳다며 동시에 여러가지를 못 하게 하던 사장도 생각났다.
가끔 그런 때가 있습니다. 불연듯 떠오른 생각에 어디에 홀리기라도 한 것 처럼 의식대로 행동을 하게 되는 날. 신기하게도 큰 어려움 없이 의식과 행동이 거의 동기화 된 상태로 곧잘 지속됩니다.
저는 그런 것을 반향이라고 부릅니다. 잔잔한 호숫가에 떨어진 돌멩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것이 만들어 낸 물결 하나가 내 삶 전체를 송두리째 바꿀 수도 있을 만한 작은 변화를 지속하게 하죠.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해야하는 건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잠은 잘 잔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고양이를 껴안고 굴러다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