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한 일요일
아침에는 또 눈을 뜨자마자 녀석이 알아차리고 침대에 올라와서 창문을 열어달라며 닫힌 창을 간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들이닥치는 새벽 바람에 너무 추워서 침대에서 바로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일어나서 외투를 입고 주방으로 향했다. 재료를 손질하고 있으니 녀석은 침실 창문에서 내려와 식탁을 타고 내 곁으로 다가오더니 이번에는 주방에 있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나는 또 창문을 열었다. 야채를 씻느라 젖은 손이 매서운 바람에 노출되니 견디기 힘들어 재빠르게 닦아내고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 순간 천둥이 하늘을 찢었다. 녀석은 깜짝 놀라 창틀에서 후다닥 내려오더니 내 얼굴을 슥 쳐다보았지만, 아무렇지 않게 있는 나를 보더니 안심했는지 다시 살금살금 창틀로 올라가서 창 밖을 보기 시작했다. 천둥은 이어졌지만 두 번째부터는 움찔하지도 않고 밖을 내다보았다.
아침은 바질 파스타. 면을 삶는 걸로 시작한다. 팬을 중불로 달구고 기름을 두르고 얇게 썬 마늘과 통베이컨, 후추를 넣는다. 나는 바질 파스타에는 양파의 단맛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양파는 쓰지 않는다. 마늘이 타기 전에 팬에 면수를 한 국자 덜어서 식히며 면을 옮긴다. 갈아놓은 치즈를 일부 넣어서 함께 저어주다가 원하는 농도가 나오면 불을 끄고 잘게 찢은 바질. 올리브를 넣은 후 가볍게 저어주며 마무리한다. 그릇에 옮겨담고 남은 치즈, 찢지 않은 바질 잎, 파슬리, 루꼴라를 얹거나 둘러주며 플레이팅 했다. 사실 여기는 루꼴라보다 시금치가 어울리는데 마침 지난 번에 시금치는 다 먹었고 남은 건 루꼴라 뿐이라 루꼴라를 쓸 수 밖에 없었다.
점심부터 저녁까지는 쉬었다. 며칠 전에도 하루종일 졸린다고 잠만 자놓고 오늘은 또 일요일이라는 핑계로 청소나 하면서 느긋하게 보내기로 했다. 우스운 변명처럼 보이지만 잠만 자는 것과 휴식은 분명 다르긴 하다.
녀석의 상태도 점검했는데, 확실히 가습기를 사길 잘했다. 털 상태가 확실히 좋아졌다. 얼마나 건조했던지 빗질을 할 때마다 정전기에 손이 아플 지경이었고 눈으로 보기에도 털이 힘을 잃는 느낌이었는데 고작 며칠만에 반질반질해진 느낌이 좋았다.
저녁으로는 냉장고를 털어서 부리또를 먹기로 했다. 당근, 양파, 양상추, 밥, 옥수수, 닭가슴살, 치즈, 그 외 눈에 보이는 재료를 마구 집고 보이는 향신료도 마구 뿌리고 다 같이 볶아서 또띠아 안에 넣고⋯⋯. 터졌다. 터질 걸 알면서도 막 쑤셔넣고 억지로 접어서 그랬다. 이미 알고 있었으니 당황할 필요도 없었다. 그대로 넓은 접시에 담아서 터진 그대로 칼로 마구 찢어서 포크로 찍어먹으면 파히타나 다름없다며 먹었다. 내다 팔 것도 아닌데 나만 맛있게 먹었으면 그만이다. 게다가 양파, 양상추, 옥수수, 식은 밥까지도 싹 다 처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밤이다. 일찍 자고 내일은 쉬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