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teem] 문명의 붕괴(Collapse) | 재레드 다이아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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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레드 다이아몬드 문명의 붕괴
위대한 문명은 왜 사라졌나 
Collapse
- 고려해야 할 다섯 가지 요인:
1)환경 파괴, 2)기후 변화, 3)적대적인 이웃, 4)우호적인 이웃의 지원 중단, 5)사회에 닥친 문제에 대한 주민의 반응

재앙의 기본적 패턴
이스터 섬, 아나사지, 마야,그린란드의 바이킹
이미 황폐해지거나 밀림이 우거진 문명의 흔적에서도 고고학적 발굴 자료와 지질학,생물학,역사적 기록, 과학적 연대측정이 더해지면 수천년 전의 과거가 살아난다.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인가?
1. 이스터 섬
지금도 그 흔적이 뚜렷한 운송로는 채석장에서 시작되어, 언덕을 오르내리는 수고를 피하기 위해서 등고선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 (143쪽)
- 이스터섬에 인간이 도래한 직후, 900년경부터 삼림 벌채가 시작되었고, 1400년경에 최고조에 이르렀으며, 지역에 따라 1400~1600년대 사이에 거의 끝난 듯하다. 유럽인이 도착한 1772년에는 3미터가 넘는 나무를 볼 수 없었다.
퇴적물 분석결과 4~20만년 동안 엘리뇨와 가뭄을 이겨낸 나무들이었다
AD900
지배세력들은 경쟁적으로 더 큰 모아이를 만들어 권위를 얻고 상대를 압도하려했다. 석상을 옮기기 위해 큰 나무가 베어져 나갔다. 카누의 재료였다.
섬의 인구
천연두로 많은 사람이 죽고도 2,000명이란 사람이 살아남았으니 전성기의 인구는 1억 5천정도?
숲의 파괴
이후 농지로 개간된 것으로 판단하건대 나무를 베어낸 숲을 개간해서 밭을 만들었다.
또한 석상을 운반하고 세우는 데 필요한 목재와 밧줄을 만들기 위해서 도 많은 나무가 베어졌을 것이다. 그밖에도 많은 이유로 나무가 하염없 이 베어졌을 것이다. 로 혜벤이 상륙한 1722년에는 완전히 끝난 것으로 판단된다. 로헤벤이 3미터가 넘는 나무를 볼 수 없었다니 말이다.
1640년 이후로는 연료로 나무 대신에 풀이 사용된 듯하다,시신 한 구를 태울 때마다 적잖은 나 무가 필요했던 화장은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인간이 이 스터 섬에 정착하고 곧바로 삼림 벌채가 시작되었고, 1400년경에 최고 조에 이르렀다.
삼림 전체가 사라졌고, 모든 수종 이 멸종되었다. 살코기를 제공하던 야생 동물까지 크게 줄어들었으며, 식량 생산까지 곤두박질쳤다. 나무와 새에서 얻던 목재와 밧줄, 천 을 만들던 나무껍질, 깃털까지 사라지거나 크게 줄었다. 바다로 나갈 카누 조차 만들 수 없었다.
- 이스터 섬에서 가 장 큰 산에 붙여진 '테레바카' 는 '카누를 얻는 곳' 이라는 뜻이다.
돌고래의 뼈가 1500년경부터 패총에서 실질적으로 사라졌다. 참치를 비롯한 난바다의 물고기 뼈도 없었다.
곡물의 생산량까 지 갖가지 이유로 떨어졌다. 삼림 파괴는 비와 바람으로 인한 토양 침 식을 부추겼다.
흙이 건조해지고 영양분이 빠져나갔다. 그러나 퇴비로 사용할 만한 나뭇잎, 열매, 작은 나뭇가지를 구할 길이 없었다.
기아와 전쟁
마지막 석상
마지막 아후와 모아이가 세워진 것은 1620년경이었다. 가장 큰 석상도 이때쯤 세워진 것 중 하나였다. 지배계급이 일정한 생산량을 징발해서 석상 제작에 투입된 사람들을 먹였던 고지대의 플랜테이션은 1600년부터 1680년 사이에 점차적으로 황폐화되었다.
일종의 쿠데타가 일어난 1680년경, 씨족들 간의 다툼은 더 큰 석상을 세우려는 경쟁에서 상대 씨족의 석상을 무너뜨리는 파괴로 이어졌다.
똑바로 서 있는 석상에 대한 유럽인의 기록은 1838년에서 끝난다.
마지막 주민들은
1700년대 마지막 나무를 베어낼 때 그들은 무슨 말을 했을까?
카누가 사라지고, 농토가 마르고, 동식물이 사라져 먹을 것이 줄어드는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을까?
그들은 300년전의 숲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들의 섬은 30년 전에 이미 거의 나무가 없었고, 카누도 없어 먼바다를 갈 수 없었다. 큰 나무는 이미 소중한 귀중품이었다. 그리고 지도자들은 당장의 권력투쟁과 사치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지난 250년동안 열대우림과 바다와 대기의 대부분을 파괴했고 완전한 붕괴를 30년 정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무시하는 사람도 많다
망가레바 섬과 핏케언 섬 주민들의 관점에서 보면 헨더슨 섬과 교역 한 다른 이유가 또 있었을 것 같다. 망가레바 섬에서 헨더슨 섬까지의 항해는 폴리네시아의 카누로 4~5일이 걸리는 반면에 핏케언 섬에서 헨더슨 섬까지 가려면 하루면 충분하다. 내 생각에 태평양 원주민들의 카누는 짧은 거리의 항해를 위한 배이기 때문에, 그렇게 먼 거리를 항 해하면 카누가 뒤집히거나 파선되어 죽음을 자초하는 짓이라 여겨진 다. 따라서 그런 카누로 며칠간이나 망망대해를 항해한다는 것은 목숨 을 건 탈출이라면 모를까,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그러나 담배를 사려고 닷새를 카누로 항해하는 요즘의 태평양 뱃사람들에게도 그 정 도의 항해는 정상적인 삶의 일부이다. 따라서 망가레바 섬과 핏케언 섬 에 살던 옛 폴리네시아 사람들에게 1주일 동안 항해해야 하는 헨더슨 섬의 방문은 바다거북과 그 알, 그리고 하늘을 뒤덮은 새들의 고기로 서하으 즈긴 수 있는 신나는 소풍에 불과했을 수 있다. 특히 암초, 잔잔 Pal 실제도 서 분 뀌 둘 는 콰 줄칼 주는 증거 도 블 에 건 당시 연구
망가레바 섬의 가장 커다란 약점은 까뀌를 비롯해 연장을 만들 만한 단단한 돌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양질의 철 광석을 제외하고 웬만한 천연자원을 모두 갖고 있는 미국의 처지와 비슷하 다). 망가레바 석호 주변의 산호섬들에는 양질의 돌이 전혀 없었다. 화 산섬에서도 거친 현무암을 구할 수 있었을 뿐이다. 집을 짓고 받의 담 을 쌓는 데, 솥이나 카누의 닻을 만드는 데, 음식을 빻는 도구 등 거친 연장을 만드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지만 거친 현무암으로 단단한 까뀌 를 만들 수는 없었다. 다행히 핏케언 섬이 이런 부족을 채워주었다. 면적이 2.5평방마일에 불과하고 깎아지른 듯한 사화산 섬인 핏케언 섬은 망가레바에서 남동 쪽으로 48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망가레바 섬 사람들이 카누 에 몸을 싣고 망망대해를 며칠 동안 헤매다가 핏케언 섬을 발견하고, 배를 댈 수 있는 유일한 해안으로 상륙해서 가파른 비탈을 기어올라가 다운로프(Down Rope) 채석장을 발견했을 때 얼마나 기뻤겠는가! 남 동폴리네시아에서 유일하게 흑요석을 캘 수 있는 채석장이었다. 흑요 석은 깔끔하게 절단하는 데 사용되는 예리한 연장, 예컨대 가위나 칼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게다가 해안지대를 따라 1.5킬로미터 남짓 떨어 진 곳에서 양질의 현무암을 지닌 타우타마(Tautauta)를 발견했을 때 그 들의 기쁨은 환희로 변했을 것이다. 그때부터 타우타마는 남동폴리네 시아에서 까뀌를 만드는 가장 큰 채석장이 되었다. 그러나 다른 부분들에서 핏케언 섬은 망가레바 섬에 비해 모든 조건 이 열악했다. 간헐천이 있었고, 먼 바다까지 항해할 수 있는 카누를 만 들 만한 큰 나무들이 있었지만 가파른 지형과 좁은 면적 때문에 농사를 짓기에 적합한 땅이 극히 적었다. 또한 해안선에 암초가 거의 없고, 바 다 바닥이 갑작스레 푹 꺼져 망가레바에 비해서 낚시와 갑각류의 채취 3. 핏케언 섬과 헨더슨 섬 이야기 175
다. 오늘날에도 핏케언 섬에서 살고 있는 '바운티호' 반란자들의 후손 들과 그들의 폴리네시아 친구들을 모두 합해도 52명밖에 되지 않는다. 1790년에 처음 정착한 27명에서 1856년에 194명까지 늘었다. 하지만 194명은 핏케언 섬의 농지 규모로 볼 때 너무나 많은 수였다 : 따라서 영국 정부는 대다수의 주민을 멀리 떨어진 노퍽 섬으로 이주시켰다. 남동폴리네시아에서 세 유인도 중 하나인 헨더슨 섬은 14평방마일로 가장 크지만 가장 멀리 떨어진 한계 지역이기도 하다. 실제로 헨더슨 섬은 핏케언 섬에서 북동쪽으로 160킬로미터 망가레바 섬에서 동쪽으 로 64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망가레바 섬이나 핏케언 섬과 달리, 헨더슨 섬은 화산 섬이 아니다. 융기로 해발 30미터까지 치 "_ 기까다 따라서 헨더슨 섬에는 연장을 만들 만한 현
그러나 헨더슨 섬은 이런 치명적인 결함을 상쇄하기에 충분한 매력 거리를 갖고 있다. 주변의 암초와 얕은 바다에 살고 있는 바다가재, 게, 문어 등이다. 물론 종류가 제한되어 있기는 하지만 다른 어류와 갑각류 도 풍부하다. 안타깝게도 검은입술진주조개는 없다. 그러나 헨더슨 섬 은 남동폴리네시아에서 바다거북이 서식하는 유일한 곳이다. 초록색을 띤 바다거북들이 매년 1월과 3월 사이에 알을 낳으려고 해안으로 몰려 온다. 헨더슨 섬에는 과거에 적어도 17종의 바닷새가 서식한 것으로 추 정되기도 한다. 특히 바다제비가 수백만 마리가 서식해서 어미나 새끼 를 잡기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100명의 주민이 매일 한 마리씩 잡아먹어도 군락의 생존이 전혀 위태롭지 않을 정도로 바다제 비가 말았다 또한 헨더슨 섬에는 터줏대감 노릇을 하던 9종의 육지새
인간이 정착해서 살았다는 다른 증거로는 거대한 패롱이 있다. 남동 폴리네시이에서 가장 큰 패롱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헨더슨 대명 주변의 암초를 통과하는 유일한 통로와 마주 보는 복족 해안을 따라 냈다. 소규모이기는 했지만 으 섬에 정착해서 살았던 사람들이 있었다 는 혼적이었다. 수심여 명의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H' 력했다는 혼적을 찾아냈다. 9879 유골과 치아가 H 증거였다. 남녀로 일부는 40세를 넘긴 듯한 성인 10명 10대의 소년과 소녀 6명, 5~10세 Hu 추정되는 어린아이 4명이 확인되었다. 요즘의 핏케언 대명 주민들도 나무나 해산물을 구하려고 헨더슨 섬을 찾아갈 때는 어린아이를 테러 가지 않는 사실을 감안할 대 어린아이의 유골은 그들이 H 섬에 정착해 살았다는 증거가아닐 수 없다.
찾아냈다. 이런 교역을 통해서 세 섬은 부족한 것을 서로 채워갔다. 교 역된 상품들, 심지어 방사성 탄소법을 적용하는 데 필요한 유기 탄소가 없는 돌들까지도 동일한 고고학적 층에서 발굴된 숯을 근거로 연대 측 정이 가능했다. 이런 식으로 와이슬러는 교역이 늦어도 1000년경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라 추정했다. 달리 말하면 인간이 그 섬들에 정착하기 시작한 때부터 줄곧 계속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헨더슨 섬에서 와 180 문명의 붕괴
은 핏케언 섬과 헨더슨 섬의 붕괴에서 적잖은 역할을 했지만 기후 변화 나 외적의 역할이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세 섬의 이야기 망가레바 섬, 핏케언 섬, 헨더슨 섬은 남동폴리테시아로 알려진 지역 에서 유일한 유인도였다. 세 섬이 없었다면 남동폴리네시아는 관광객 이나 잠시 머물 뿐 누구도 정착해서 살지 않는 나지막한 산호섬들의 세 계였을 것이다. 앞 장에서 설명했듯이 폴리네시아인들이 동쪽으로 진 출하면서 800년경 세 유인도에 처음 정착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세 섬 중 가장 서쪽에 위치한 섬, 따라서 폴리네시아인들이 먼저 정착한 곳에 서 가장 가까운 섬인 망가레바 섬조차 소시에테 제도(타히티 포함)에서 서쪽으로 1,600킬로미터, 마르키즈 제도와는 북서쪽으로 1,600킬로미 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한편 동폴리네시아에서 가장 크고 인구 도 많은 섬들인 소시에테 제도와 마르키즈 제도도 서폴리네시아의 동 쪽 끝에 있는 섬과 1,5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 서 폴리네시아에 인간이 정착하고 거의 2,000년이 지나서야 인간의 정착 이 시작되었다. 따라서 망가레바 섬과 두 섬은 동폴리네시아의 동쪽 끝 에서도 한참 떨어진 고도(孤島)들이었다. 마르키즈 제도와 소시에테 제 도의 사람들이 새로운 정착지를 개척하며 훨씬 멀리 떨어진 하와이와 이스터 섬까지 진출해 폴리네시아에서의 정착을 마무리 짓던 과정에서 세 섬에도 정착한 것이라 여겨진다(114~115쪽, 174쪽의 지도 참조). 남동폴리네시아의 세 유인도 중에서 인간에게 중요한 천연자원이 풍 부해서 가장 많은 인구가 살았던 곳이 망가레바 섬이었다. 이 섬은 직 경 24킬로미터가 약간 넘는 커다란 석호와 그 주변의 암초들, 24개의 사화산 섬들, 면적을 모두 합해도 10평방마일을 넘지 않는 몇 개의 산 호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석호와 주변의 암초들, 그리고 그밖의 바다에 는 어류와 갑각류가 풍부하다. 갑각류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검은입술 3. 핏케언 섬과 헨더슨 섬 이야기 173
. : .- ) 망가레바 섬은 더큰 교역당의 지리적 중심이었다. 망가레바 섬에서 남동쪽으로 수백 길로미터 떨어진 핏케언 섬과 헨더슨 섬까지가 최단 오 살던 이제 폴리네시아 사람들에게 1주일 동안 항해해야 하는 헨더슨 섬의 방문은 바다거북과 H 알, 그리고 하늘을 뒤덮은 새들의 고기로 성찬을 즐길 수 있는 신나는 소풍에 불과했을 수 있다. 특히 암초, 잔잔 한 연안, 맛갈스런 갑각류가 없었던 핏케언 대명 사람들에게 헨더슨 섬은 해변을 거닐면서 물고기와 갑각류를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었을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바운티호' 반란자들의 후손들은 요즘에 작은 섬에서 갑갑중을 느끼면 수백 길로미터나 멸어진 산호섬의 해변가지 휴가 를 증기려고 떡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