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5/10(금)역사단편41-'기자(箕子)'와 '소중화(小中華)'론

in AVLE 일상3 months ago

세상을 인식하는 눈을 '세계관'이라 하고
그 방법을 '철학'이라 한다.
영어로 말하면 '프레임'이다.

대상으로서의 세계는 존재하지만,
그것이 인식되는 순간 이미 주관적 존재의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

역사도 그런 것이다.
누군가의 프레임에 의해 기록된 사건들이다.

기자상2.jpg
<윤두수>라는 조선시대 문인이 그린 기자의 초상화(?)다.

오늘의 포스팅을 시작하기 전에,
단재의 프레임을 먼저 소개한다.

대개 높은 이와 친한 이의 욕봄을 꺼려 숨겨서,
주천자(周天子:주나라 천자)가 종후(鄭侯)의 화살에 상했음과,
노(魯)나라의 은공(隱公)·송공(昭公)등이 살해당하고 쫓겨났음을
춘추(春秋)에 쓰지 아니하였는데,
공구(孔丘:공자)의 이러한 편견이 지나 역사가의 버릇이 되어..

공자는 '군주와 신하의 도리'를 절대적으로 신봉했는데
이것이 도가 지나쳐서,
자기가 보기에 도리를 위반한
수많은 사례들을 전부 은폐하는 악행을 저질렀다고볼 수 있다.
좋게 말하면, '청소년 관람불가'같은 것인데
문제는 그런 악습이 수천년간 지속되었다는 것이니
당연히 공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본다.
적어도'역사'에 관해서는, 공자는 '제멋대로 쓴' 엉터리다.
'공이 있으면, 잘못도 밝혀져야 한다.'

그들이 다른 나라가 사신을 보내면
반드시 내조(來朝:조공왔다)라고 썼음은
지나인의 병적인 자존성에 의한 것이니,
이는 근세 청조(淸朝)가 처음 서양과 통할 때
영(英)·로(露)등 여러 나라가 와서 통상한 사실을 죄다
"모국이 신하를 일컫고 공물을 바쳤다(某國稱臣奉貢)."
고 썼음을 보아도 가히 알수 있는 일이니,
그네의 기록을 함부로 믿어서는 안 된다.
[ 출처:신채호, 조선상고사]

연전에 김택영(金澤榮)의 역사집략(歷史輯略)과
장지연(張志淵)의 대한강역고(大韓彊域考)에,
일본의 신공여주(神功女主)18년에 신라를 정복했다는 것과,
수인주(垂仁主)2년에 임나부(任那府)를 설치하였다는 것을 모두
일본서기(日本書紀)에서 그대로 따다가 적고 그 박식함을 자랑하였다.
[ 출처:신채호, 조선상고사]

장지연(張志淵):황성신문에 쓴 ‘시일야방성대곡’이 유명하다.

지나인들이 자기들 중심으로 역사를 왜곡-은폐한것은
벌써 2천년이 넘은 것이고, 공자가 그 출발점 이었다고 지적한다.
단재시대에는 소위 민족주의자인 '장지연'등조차
일본의 자기중심 역사서인 '일본서기'를 맹신하는 세태를 비판하고 있다.

남에나라 자랑하는 기록은 믿고,
자기나라 자랑하는 기록은 믿지않는
희한한 조선인의 속성이 폭로된다.

이유가 뭘까?
'아'에 대한 자각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주제가 될 '기자'에 대한 수천년간의 인식을
살펴보자.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
사마천(BC 145년경~BC 86년경) 『사기』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

「기자비수무왕지봉이자래조선(箕子非受武王之封而自來朝鮮)」
“기자는 주나라 무왕의 봉함을 받지 않고 스스로 조선에 왔다”
장유(張維, 1587~1638)「만필(漫筆)」

“은 나라의 도(道)가 무너지자 기자가 조선으로 갔다[箕子去之朝鮮]..
그 백성들에게 예의(禮義), 전잠(田蠶), 직작(織作)을 가르치고,
낙랑조선 백성들에게 범금(犯禁) 8조를 만들었는데
살인한 자는 죽이고, 상해를 입힌 자는 곡식으로써 갚게 하고 …
인현(仁賢)의 교화란 참으로 귀한 것이다.
동이(東夷)는 천성이 유순(柔順)하여 3방(三方)의 바깥 지역과는 다르다.
그래서 공자(孔子)가 자신의 도(道)가 시행되지 않는 것을 한탄하여
뗏목을 타고 항해하여 구이(九夷)에 가서 살고 싶다고 말한 까닭이 여기에 있었다.”
후한반고(班固, 32~92)『한서』 「지리지」

“옛적에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하니,
기자가 예의(禮義)와 전잠(田蠶)을 가르치고,
또 「팔조교」를 설치했다. …”
<범엽(范曄, 398~445) 후한서>

“기자는 주 무왕이 감옥에서 풀어주자
『홍범구주』를 설명해준 뒤에 조선으로 도망왔는데,
뒤에 무왕이 기자를 조선왕으로 봉했으나 「불신」(不臣)했다.”
<허목(許穆)『동사』(東事, 1667)>

“후조선 시조 기자는 주(周) 호왕(虎王) 원년 기묘년 봄에
조선으로 도망하여 와서 스스로 나라를 세웠는데,
주 호왕이 멀리 봉하는 명을 내렸다.
사례하지 않기 어려워 들어갔더니
『홍범구주』의 이륜(彝倫)을 물었다.
41대손 준왕이 침탈을 받아 백성을 버렸는데,
928년을 다스리면서 끼친 풍속과 공렬(功烈)이 화락(和樂)하고 순후(淳厚)했다.”
<이승휴, 『제왕운기』(帝王韻紀; 1287)>

이륜(彝倫):사람으로서 떳떳하게 지켜야 할 도리.
홍범구주:≪서경≫의 홍범에 기록되어 있는, 우(禹)가 정한 정치 도덕의 아홉 원칙
공렬(功烈):뛰어난 공적
화락(和樂):화평하고 즐거움.
순후(淳厚):온순하고 인정이 두터움
<출처: 네이버 사전>

'기자'는 기원전 2세기 사람인 사마천이 쓴 사기에 처음 등장했다.
인용된 역사서의 내용을 보면, 두 가지가 바로 눈에 띈다.

(1) '기자'가 무왕에게 신하로 임명되었느냐에 대한 견해차
(2) '기자'가 조선을 교화했다는 것에 대한 동의

'기자'가 계륵같은 존재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유학을 받아들인 후,
한반도에 있던 소위주류학자들의 세계관은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정리되었다.

“우리 동방은 비록 궁벽한 데 위치한 나라이지만
기자 이후 대대로
'소중화小中華'로 일컬어졌다”

주나라-송나라-명나라로 이어지는 계통을
세상의 주류로 인정하고
그것을 닮는 것이 '존재이유'라고 생각하는 프레임이다.

기자가 임명되었다고 주장하는 시기는
대륙에 '한족'이 정권을 잡고 있는 시대이고
기자가 도망쳐온 것이라고 주장하는 시기는
'이민족'이 지배하던 시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중요한 것은,
기자가 무왕에게 조선왕으로 임명되었느냐의 여부가 아니다.

수천년전의 일을 우리가 확인 할 수도 없고,
공자의 역사왜곡 프레임에 의해 쓰여진 지나인들의 기록들을
곧이 곧대로 믿어선 안된다는 것을
단재가 이미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점은,
'기자'가
'이륜(彝倫:사람으로서 떳떳하게 지켜야 할 도리)'을 조선에 전해서,
조선이 비로소 훌륭한 나라가 되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유학자들의 세계관인 '소화(小華), 소중화'의 근거다.

유학자들의 프레임에 갇히면 어떤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살펴보자.
누루하치가 건국한 후금(청나라)가 조선유학자의 종주국인 '명나라'를
멸망시키자 어이없는 '자주론'이 등장했는데
그 사상적 근거라는 것이 한심하다.

병자호란 이후 무너진 조선의 자부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오랑캐인 청나라와는 다른,
보다 고고한 지위에 있음을 내세워,
적어도 정신적으로나마 극복하려 했고,
그래서 찾은 것이 '화이론'에 기반한 문화적 우월감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얕잡아보던 상대에게 치욕을 당하니
그걸 만회하고자 '공자마약'보다 센
'신종마약'이 필요하게 된 셈이다.

'동이'로 불리던 조선인이
'화이론'을 내세웠으니
'공자, 기자'라는 마약에 취한것이 아니면 무엇인가?

유학만이 진리라고 생각했으니
'기자'가 임명을 받은것이 아니라 도망쳐온 '의리파'로 해석되고,
'기자'가 가르쳐준 '윤리'덕택에 지상유일 '중화(中華)국'이 되었다는
터무니없는 자주성(?)을 주장하는 흐름이 생겼던 것이다.

프레임의 힘이 그런 것이다.

이런 한심한 경우가 있나.

대륙의 한귀퉁이에 있었던 '상(은)나라'
그것도 '동이족'이 만들었던 국가임이 증명되었는데
대체,
'기자'라는 인물이 무왕을 피해 '조선'으로 도망쳤고,
상나라의 '윤리'를 가르쳐서 덕분에 '작은 중국'이 될 수 있었다니!

남에나라 기록은 철석같이 믿고
자기조상 기록은 내팽겨치는 전통을 만든자가 누구인가?

김부식이래 강대국에 아부하는 풍토가 정착되면서
정신세계(프레임)까지 종속되어 버린 결과다.

터무니없는 '공자'중심의 프레임은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나라가 망하고 사라져서 수천년을 떠돌았지만
기어이 자신들의 나라를 건국한 이스라엘의 정신을
한조각이라도 동냥해서 얻어와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인심좋은, 순한, 예절을 아는' 등으로 묘사하는 것이
앞으로는 칭찬하는 척 하면서, 뒤로는 비웃고 이용해먹으려는
수작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현실에서는 자신들도 그렇게 하면서
유학자들의 탁상공론에서는 반대로 읊어댄다는 것이
참 가소로운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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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것을 느께게 하는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등산하면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을 날씨같네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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