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6/23(일)역사단편76-평양패수고(8) 낙랑군은 북경근처에 있었다.

in Avle 종교 철학 인문학13 days ago (edited)

마음이 앞서면 무엇하나 제대로 하기 힘들다.
오래전, 전두환이 막 정권을 잡았을때
무엇으로 현실을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것이
세상 전부인것 처럼 느껴지던 날들이었다.

"열혈지사는 학문의 길을 가기 힘들다."

당시에는
현실을 외면하는 기득권자의 자기 정당화로만 느꼈다.

어제내린 비로 폭염도 잠깐이나마 쉬어가는 휴일
오늘도 차분하게 신채호선생의 역사책을 읽어가자.

그 동안의 포스팅에서
역대 지나인들의 수도가 '베이징'이 아닌
양자강 남쪽에 있었음을 상기시켰다.
몽고족의 나라였던 '대원'이 북경을 도읍으로 삼고
명나라 대에 이르러
북방민족의 세력이 약화되자
산해관을 축성하면서 비로소
하북지역이 대륙의 중심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 다음이 청나라이고 지금의 중공으로 이어졌다.

산해관은 명나라대에 만들어진 것이고
원나라 당시까지 그곳에 성곽이 없었다.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후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역사의 변천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진시황의 만리장성(?)은 베이징 서남부 내륙지방에서 끝났다.

초안을 저장하고 관리하는 과정에서
이전 포스팅의 내용이 불안정하게 되었다.
혹시라도 꼼꼼하게 읽었을 분들에겐 불편함을 드렸을거 같아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평양-패수고를 계속 읽어본다.
단어풀이는 <DAUM, 네이버 사전>
본문은 <독립기념관 제공>

수 백년전의 중국역사책에 나오는 '海(해)'는
우리가 생각하는 바다가아니다.
큰 강이나 큰 호수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기억하자.

그 점을 기억해야 오류에 빠지지 않는다.

先儒가 上述한 溫祚 八年(온조8년)의 「樂浪太守」란 語로 因(인)하여,
三國의 本紀에 보인 樂浪 等(낙랑 등)이 다
漢의 樂浪郡을 가리킨 者로 臆定(억정)하고,
大武神王 十五年(대무신왕15년)의 「樂浪王낙랑왕」은 곧
當時의 朝鮮人이
樂浪太守(낙랑태수)를 王으로 誤稱(오칭)함이라고 强解(강해)하였으나,
이는 漢의 樂浪郡이 元來에 遼東에 있는 者인 줄을 모른 妄說(망설)이며,
<출처: 평양패수고>

臆定(억정):억측으로 판단하여 결정함.
强解(강해):억지해석
妄說(망설): 망령(妄靈)된 생각이나 주장

(해석하면)
선배유학자들이 앞서 설명했던
'온조8년의 「낙랑태수」'라는 문구때문에,
삼국의 본기에 등장하는 '낙랑' 들이 전부
한나라의 낙랑군을 가리킨 것으로 억측해서 판단하고,
대무신왕 15년의 「낙랑왕」은 곧
당시의 조선인이
낙랑'태수'를 '왕'이라고 잘못 호칭한 것으로 억지해석 하였으나,
이는 한나라의 낙랑군이
원래부터 요동에 있는 것인 줄을 모르는 망령된 주장이며,

或은 大武神王 二十七年의
「漢光武(한광무) …
伐樂浪取其地爲郡縣(벌낙랑취기지위군현)」의 語로 因하여,
樂浪國이 滅亡(멸망)한 뒤에 그 땅이 곧 漢의 樂浪郡이 된 것으로 아나,
그러나 이는 封建時代(봉건시대)라,
朝鮮 全土(조선전토)[滿洲 東北을 包含(만주,동북을 포함)]에
數個의 辰國(大國의 義)이 並立(병립)하고,
辰國(진국) 하나이면 其下에 多數의 小國이 附屬(부속)하였으니,
<출처: 평양-패수고>

附屬(부속):주(主)된 일이나 물건에 딸려서 붙음.

(해석하면)
혹은 대무신왕27년의
「한광무제가 …
낙랑을쳐서 그 땅을 빼앗아 군현을 두었다」의 문구로 인하여,
낙랑국이 멸망한 뒤에
그 땅이 곧 한나라의 낙랑군이 된 것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러나 이는 봉건시대라,
조선의 전영토(만주, 동북을 포함)에
여러개의 辰國진국(큰 나라의 뜻)들이 나란히 있고,
'진국'하나이면 그 아래에
다수의 소국(小國)이 딸려 있었으니,

낙랑.JPG
<노랑: 한나라 낙랑군 VS 우측원: 최씨낙랑국>
재야사학계 일부에서는 하북성 노랑색 부분으로 비정한다.
해당부분은 '란하(우리하)' 유역이다.
국사교과서에서는 우측 평양지역을 '낙랑군'이라고 주장한다.

단재의 견해는 나중에 확인한다.
이해를 돕기위한 지도이다.

崔氏가 곧 樂浪辰國(낙랑진국)의 王(왕)으로
其下(기하)의 黏蟬·含資·帶方 … (점제-함자-대방)等
各 小國을 統率(통솔)하였다가
高句麗가 崔氏를 滅(멸)하자,
그 各 小國들이 高句麗에 不服(불복)하여
漢의 援兵(원병)을 請(청)하여 高句麗를 막음이니,
「取其地爲郡縣(취기지위군현)」은
誇大(과대)의 辭(사)요,
事實이 아니다.
新羅本紀 基臨(신라본기 기림) 三年에
「樂浪帶方兩國歸服(낙랑대방양국귀복)」의 記事를 보면
樂浪의 辰國(진국)은 비록 滅亡(멸망)하였으나,
그 各 小國은 依然(의연)히 存續(존속)한 明證(명증)이다.
<출처: 평양-패수고>

蟬: 땅이름 제, 매미 선
黏蟬: 점제 또는 점선으로 읽을 수 있다.
誇大(과대): 작은 것을 크게 떠벌림
辭(사): 주장, 말
基臨(기림) :이사금, 신라의 제15대 왕(?∼310).

(해석하면)
최씨(=최리)가 곧 낙랑진국의 왕으로
그 아래에 (점제-함자-대방)등의 각 소국(小國)을 거느리다가
고구려가 최씨를 멸망시키자,
그 각 '소국'들이 고구려에 불복하여
한의 援兵(원병)을 請(청)하여 고구려를 막음이니,
「그 땅으로 군현을 만들었다」라는 문구는
내용을 부풀린 말이고, 사실이 아니다.

신라본기 기림(=이사금) 3년에
“낙랑 대방 두 나라가 귀순해 왔다"의 기사를 보면
낙랑이라는 큰 나라는 비록 망했으나,
속해있던 작은 나라들은 의연히 계속 존재했음을 증명한다.

계속 읽어보자.

『後漢書후한서』 帝紀(제기)에 據(거)하면
「漢光武建武六年 … (한광무건무6년)
初王調據郡不服 (초왕조거군불복)
秋, 遣樂浪太守王遵擊之(추, 견낙랑태수왕준격지)
郡吏殺調降 … 군이살조강
九月赦樂浪大逆殊死已下(9월사낙랑대역수사이하」라 한 바,
建武 六年(건무6년)은 大武神王 十三年(대무신왕13년)이니,
王子 好童(호동)이 樂浪에 娶(취)하던 前 三年이니,
樂浪郡에 何等의 大事가 있어도 樂浪國이 不知하고,
樂浪國에 何等의 大事가 있어도 樂浪郡이 不知하여,
當時 兩 「펴라」의 關係가 이같이 隔絶(격절)하였거늘,
『三國史記』의 謬誤(유오)도 可責하려니와,
後世의 讀史者들도 또한 踈漏(소루)하다 하겠다.
<출처: 평양-패수고>

王調(왕조): 낙랑지역을 점거했던 인물
吏(이): 벼슬아치
赦(사): 죄를 용서하다.
逆(역): 거스르다, 어기다
娶(취): 장가들다
隔絶(격절): 사이가 막히고 끊어짐
謬誤(유오): 부주의나 태만(怠慢) 따위에서 비롯된 잘못
踈漏(소루): 소홀하고 꼼꼼하지 못함

(해석하면)
『후한서』 帝紀(제기)에 따르면
「한광무제 건무6년..
연초에 왕조가 낙랑군을 차지하고 복종하지 않으므로
가을에, 낙랑태수로 왕준을 보내 치게했다.
낙랑군관리들이 왕조를 죽이고 항복했다.
9월에 큰죄를 지은 자들은 죽이고 나머지는 용서했다」라 한 바,
건무6년(서기30년)은 <대무신왕13년>이니,
왕자 호동이 낙랑에 장가들기 3년전이니,
낙랑군에 어떤 큰일이 있어도 낙랑국이 알지못하고,
낙랑국에 어떤 큰일이 있어도 낙랑군이 알지못하여,
당시 양 「펴라」의 관계가 이같이 멀리 떨어져 있거늘,
『삼국사기』의 잘못도 나무랄 수 있겠지만,
후세의 역사가들도 또한 꼼꼼하지 못하다 하겠다.

왕자호동의 일화를 통해
낙랑군과 낙랑국의 명확한 구별을 제시하고 있다.
상식(=합리적 의심)을 이용한 예리한 분석이다.

지나인들은 요동지역에 있던 낙랑군만 알기 때문에,
'樂浪낙랑' 이라고 적었을 것이고,
삼국사기 등에서는
낙랑군과 낙랑국을 구별하지 못해서
지나의 역사책에 있는 '낙랑'이라는 이름이
평양에 있던 낙랑국이라고 착각했을 것이다.

비교분석할 능력이 없거나 잘못된 프레임에 갇혀
역사를 해석한 결과임을 보여준다.
자연과학에서는 실험으로 오류가 증명되지만
인문학에서는 권력이나 명성(벼슬)이
곧 진실이라고 호도되기 때문이다.

인문한 서적을 읽는 사람은
항상
비수를 들이대고
되새김질 하면서 읽어나가야 한다.

그리고 언제라도
오류를 인정하고 수정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신채호 선생처럼
역사책에 광범위하고 예리한 칼날을 들이대는
학자는 보기 드물다.
우리 역사학계의 국보라 할 수 있겠다.

다음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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