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4(토)역사단편237. 정치가 아니라 자기역사를 공부하라.
오늘은 정치적 사건이 있는 날이다.
과정이나 결과가 뻔한 이런 사건들은
사실 20년만 지나면 머리속에서 지워지고
별 의미도 없는 흥분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오늘은 역사의 수수께끼 한편을 소개한다.
대륙의 역사에 5호16국 시대라는 것이 있었다.
위촉오의 삼국시대를 끝낸것은
사마중달의 후손인 사마씨의 진나라 였는데
그것이 얼마가지 못하고 내란에 휩싸였다.
얼마 지나지않아
탁발씨라고 불리는 종족이 '위'나라를 세우고
하북(?)지역을 통일하여
남북조시대가 개막되었다고 역사책에 나온다.
이전의 위나라와 구별하기 위해 '북위'라고 불리는데
북위가 건설되는 과정에 흥미로운 수수께끼가 있다.
언제나 그렇듯,
국가를 처음 세울때는 이전에 있던 나라와 연관이 있다.
북위가 나라를 세우기전에는 진晉나라의 신하(?)였다.
진晉나라가 막 분열되기 시작했을때,
북위의 임금이 도읍을 정하는데
관련 사료를 읽어보면
6년, 성락盛樂을 북부 수도로 삼고, 옛 평성平城을 수리하여 남부 수도로 삼았다.
황제는 평성 서쪽산平城西山에 올라 지세를 살펴본 후,
남쪽으로 백리 더 내려가 누(뇌)수灅水(=灅河)의 북쪽(=위쪽) 황구대黃瓜堆에
신평성新平城을 쌓았다.
진 사람들은 이를 소평성小平城이라고 여겼다.
지명이 몇가지 나오는데
언제나 그렇듯이, 잘 움직이지 않는것
산과 강을 찾아본다.
灅水다.
누(루) 또는 뇌(뢰)로 발음되는데 중요한건 아니다.
고대의 수명으로, 현재 하북성 순화현의 사하이다.
원천은 현 북쪽 만리장성 밖에서 나온다.
위치를 지도에서 찾아보면, 아래와 같다.
역사공부한다는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편리한 방법이다.
그런데,
한자를 설명하는 오래된 책이 있다.
<설문해자>라는 것인데 후한때 허신(58~147경)이 쓴 책이다.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灅)灅水。出右北平俊靡。東南入庚。
우북평右北平의 준미俊靡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흘러 "庚경"으로 들어간다.
역사공부좀 한 사람이라면,
'우북평'이라는 지명을 들어봤을 수 있다.
이 지명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 고대사<고조선, 고구려>의 영토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우북평의 위치 하나가 고대사의 강역을
완전히 바꿔버리기 때문에,
중국의 입장에서 절대 양보할 수 없고
사실은 우리도 마찬가지인데
몇년짜리 정치이슈에는 혈압이 올라가도
이런 영역에 대해서는 백치상태다.
이야기를 계속한다.
현재의 중국측에서는 灅水(=灅河)의 위치를
북경의 동북쪽, 산해관근처에 비정하지만
역사기록은 다르다.
북위의 황제가, 옛 평성을 고쳐서 남쪽 수도로 삼고
다시 100리 이상을 남쪽으로 내려와서
灅水(=灅河)의 북쪽에 새로운 평성을 건설했다고 했다.
먼저 남쪽으로 내려와야 하는 이유가 뭘까?
남쪽에 당시까지 중원의 중심이었던
낙양이 있기 때문이다.
지도를 본다.
짙은 녹색으로 길게 그린 부분은
우리나라의 장백산맥에 해당하는
중국의 태행산맥이라는 거대한 장벽이다.
옛평성이 어디있었는지 검색해보면
지도의 1번이라고 표시된 곳이다.
그것역시 의심스럽지만, 일단 인정하고 생각한다.
북위의 왕이 서쪽산에 올라가서 지형을 살핀후
100리이상 남하해서,
灅水(=灅河)의 북쪽에 새로운 평성을 건설했다면
그림에 있는 화살표 방향으로 이동한 것이다.
지금은 북경이 중심이지만
당시에는 낙양이 중심이었고
당연히 낙양 근처로 이동하는 것이 상식이다.
게다가,
거대한 태행산맥이 가로막고 있는데
그걸 동쪽으로 넘어가서 평성을 세웠다?
중국사서가 너무 많아서
의도를 갖고 특정 주제를 탐색하지 않으면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도 알 수가 없다.
주관을 먼저 갖지 못하면,
미로를 헤매다가 지쳐서
남들이 던져주는 찌라시를 읽고 논문을 써서
학위를 받고 밥벌이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귀찮으면 조상이고 원칙이고 쉽게 내다버리는
한국인의 속성을 끈질기게 지키면서
윤석열, 이재명 하나에 목을매고
악을 써대는 것이
소위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역사앞에서 할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