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100] A.I.
어제는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게 좋은 기분의 상태는 가지에 붙은 나뭇잎이 부드러운 바람에 가볍게 살랑이는 상태 같은 것이다. 별다른 저항 없이, 과장도 왜곡도 없이 주변 환경에 자연스레 반응하면서도 애쓰지 않고 내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상태. 그러니 사소한 변화를 신경 쓸 필요도 없고, 통제할 필요도 없다. 유쾌나 불쾌나 마찬가지다.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면 그냥 두면 된다. 좋은 상태다.
좋지 않은 기분의 상태는 자연스럽지 않은 상태다. 마냥 즐겁고 설렌다고 해서 좋은 기분인 것도 아니다. 자연스럽지 않으면 신경이 쓰이고, 신경이 쓰이면 통제하고 싶어진다. 그게 좋지 않은 기분의 상태다.
아무튼 어제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유 없이 짜증이 일었고, 명치 부근에서 끓기 시작한 냄비가 느껴졌다. 오늘의 운세를 확인했다. 70점. 이 정도면 좋은 점수라 운세 탓을 할 수도 없다. 지하철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고, 에스컬레이터는 고장이었다. 냄비 뚜껑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호르몬이 냄비 아래 장작불을 지피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사실 그게 전부다. 호르몬의 광기를 잠재우기 위해 카페에선 바닐라 라떼를 주문했다. 한 모금 마시자마자 냄비 뚜껑의 들썩거림은 멈췄고, 냄비 속에 끓던 그것이 미지근하게 식었다.
짐짓 심오하게 감정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지켜볼수록 알아차릴수록 인간의 감정이란 참 귀엽고 우습다. 엄청나게 다양하고 복잡한 무엇 같지만, 사실 대부분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고,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의 수가 몇 백 개에 불과한 것을 보면 생각보다 단순한 시스템인 것 같기도 하다. 다만 미세 조정이 가능한 강도의 스펙트럼이 있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신구 할아버지의 분노 단계처럼. 인간성 과연 뭘까? 분노 1단계와 분노 1.1단계의 그 미세한 차이에 인간성이 있을까?
영화 A.I. 속 데이비드가 보여주는 사랑 비슷한 것에는 1단계와 2단계가 없다. 입력한 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출력값을 낼 뿐이다. 당연히 맹목적이다. 내가 아는 인공지능을 다룬 모든 이야기 중 가장 공포스러웠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공포와 불쾌감으로 차오르는 나의 감정 변화를 지켜보는 것은 재밌었다.
저 맹목적으로 빛나는 눈...! 저 오늘 호르몬의 기운 덕분에 오랜만에 로그인했어요! 호호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아니 이게 누구야! 이제 스팀잇에서 채린님 글 읽을 수 있는 거예요? 이건 새해 선물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