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끼 기록 #85
2025.3.27(목)
질 볼트 테일러 박사의 책 <나를 알고 싶을 때 뇌과학을 공부합니다>를 읽고 나서,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전에 썼던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라는 전작도 찾아 읽었다. 이 책에서는 8년간의 뇌졸중 회복과정과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그리고 뇌졸중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소개한다. 뇌졸중을 겪은 질 볼트 테일러 박사는 좌뇌가 회복되는 동안 점점 커지는 걱정, 불안,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두려웠고, 그 감정을 통제하기 위해서 무단히 애를 썼던 것 같다. 질 테일러 박사는 부정적 감정을 적절하게 통제하기 위해 풍요로운 느낌과 감동을 주는 우뇌에 집중했고, 마침내 뇌졸중이 회복되고 난 후에도 좌우 양뇌를 자유롭게 선택하여 괴로움에서 벗어 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추측하건대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몰랐다. 내 감정을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내가 어느쪽 뇌를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그 감정 속에 머무를 수도 있고, 다른 차원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참 흥미롭다. 내가 스스로 괴로운 감정안에 갇힐 필요가 있을까. 불교에서는 화는 참는 것이 아니라 그 화가 나는 원인을 이해해야 한다고 한다. 왜 그런지,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탐구한다. 궁극적으로는 불교의 방법이 올바를 수 있겠지만, 당장 내 감정에너지가 바닥일 때는 일일이 감정의 원인을 파악하고 있기란 쉽지 않다. 그런 경우 내가 내 감정을 가볍게 선택해서 괴로움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유용해 보인다. 물론 근본적인 해결방법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선택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분노, 질투, 좌절과 같은 강렬한 부정적 감정을 느낄 때 그 느낌이 너무 친숙하고 마치 우리가 강한 사람이 된 듯 느껴지는 데에 있다.
화를 밖으로 표출했을 때 그 느낌을 가만히 복기해보면 후련함과 약간의 우월감도 느낄 수 있다. 그것이 습관이 되면 자연스럽게 더 자주 그리고 더 강하게 표출해야지만 직성이 풀린다. 하지만 이런 느낌도 지속적으로 내 심리적 기제(무의식, 아뢰야식)에 쌓이게 되면 내 의식의 통제를 받지않고 반사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그리고 더 큰 후련함과 우월감을 갈망하고 거기에 집착하게 된다. 우리는 언제나 이 문제를 인지할 수 있고 그만둘 수도 있다. 선택이 가능하다. 아니다 싶을 땐 바로 그 자리에서 그만두면 된다.
나의 우뇌에게는 '지금 여기 right now, right here'가 전부다. 고삐 풀린 열정으로 여기저기 뛰어다닌다. 세상에 아무 걱정도 없다. 많이 웃고 아주 친절하다. 이와 달리 좌뇌는 세세한 면에 집착하고 삶을 꽉 짜인 계획표에 따라 운영한다. 나의 진지한 면을 맡고 있다. 턱을 괴고 과거에 배운 것을 바탕으로 판단을 내린다. 경계를 짓고, 모든 것을 옳거나 그른 것, 좋거나 나쁜 것으로 판단한다. 아, 물론, 눈살을 찌푸리는 식으로 판단을 드러낸다.
계획적이고 매사에 진지한 부분은 좌뇌영역이고 낙천적이고 모험을 즐기고 행복을 느끼는 부분은 우뇌영역다. 사람은 우뇌와 좌뇌를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이다. 철저하고 계획적인 좌뇌적 사고를 선택할지 아니면 지금 여기에서 더 고차원적인 의식인 우뇌적 사고에 집중할지는 나의 자유다. 내 신체건강을 위해서는 좌뇌를 가동시키고, 내 정신건강을 지켜야 하는 순간이 오면 자유롭게 우뇌에 집중할 수 있도록 훈련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책에서 이 부분이 참 신비롭게 느껴졌다.
오른쪽 뇌는 빛의 긴 파장을 지각한다. 그래서 우뇌의 시각적인 지각은 다소 불분명해 보인다. 모서리 지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사물들이 서로 어떻게 관련되는가 하는 큰 그림에 집중하게 된다. 또한 배 속의 꾸르륵 소리 같은 자연스러운 생리적 반응이 만들어내는 낮은 주파수 소리와 통한다. 생물학적으로 우리의 생리작용에 주목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와 달리 왼쪽 뇌는 짧은 광파를 지각해 날카로운 경계를 명확히 분간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그래서 가까이 붙어 있는 대상들 사이의 경계를 확인하는 일에 선수다. 또한 좌뇌의 언어중추는 높은 주파수 소리에 민감해서 보통 언어와 관련되는 톤을 감지하고 구분하고 해석하는 일을 돕는다.
질 테일러 박사가 제안하는 뇌를 다스리는 법 중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간단히 살펴보자.
최초의 자극이 있고 90초 안에 분노를 구성하는 화학성분이 혈류에서 완전히 빠져나가면, 우리의 자동반응은 끝이 난다. 그런데 90초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화가 나 있다면, 그것은 그 회로가 계속해서 돌도록 스스로 의식적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 대목을 보면 화가 나는 것은 내 몸 안에서 분비된 호르몬의 영향이다. 즉, 신체 알고리즘에 의한 자동반응이고, 화가 나는 것은 내 선택이 아니다. 불교식으로 생각하면 이것을 타고난 업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90초 (1분 30초)가 지나 혈류반응이 끝나면 그 후에는 우리가 우리의 감정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화가 나는 것은 내가 화 내는 루틴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몰라서 그 루틴안에 갇혀 있을 수도 있고, 알지만 무의식적인 습관을 순간 이겨내지 못하고 그 곳에 머무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은아니다.
격렬한 사고와 감정은 곧장 내 마음속으로 파고들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90초 후 내가 접속하고 싶은 감정적, 생리적 고리를 선택하면 된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분노 회로에 접속하거나 절망의 나락에 떨어져서 보내는지 관찰해보면 정신적으로 튼튼해질 것이다. 예민한 감정의 고리에 오랫동안 갇혀 있는 것은 감정적, 생리적 회로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 몸과 마음의 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감정이 우리 몸에 찾아 왔을 때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그럴 때면 세포들에게 그 감정을 경험하게 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한 뒤 지금 이 순간으로 의식을 되돌리려 애쓴다.
습관적인 루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화가 난다는 인식, 부정적 감정회로에 갇혀있다는 의식, 거기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가 필요하다. 즉, 자동반응으로 감정회로에 갇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매순간 알아차려야 한다. 또한, 나에게 만들어진 감정패턴을 충분히 관찰하고, 이해하고, 그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노력도 중요하다. 결국 사랑만이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품을 수 있다.
왼쪽 뇌를 잃어본 경험에서 하는 말인데, 마음의 깊은 평화는 오른쪽 뇌의 신경 회로에 존재하는 것이 분명하다. 이 회로는 항상 작동 중이고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접속할 수 있다. 평화의 감각은 현재 순간에 일어난다. 과거의 경험에서 가져오거나 미래로 투사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평화를 경험하는 첫 번째 단계는 지금 이 순간에 기꺼이 몰입하는 것이다.
눈을 감고 조용히 긴장을 풀고 모든 감각에 귀를 귀울이며 주변의 장대한 에너지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 이렇게 주변과 내가 하나가 되는 마음의 깊은 평화적 몰입을 느껴본다. 호기심을 가지고 내 몸 구석구석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관심을 가져본다. 웃음이 피식 새어나오는 가벼움으로 내가 원하는 이곳, 저곳을 마음껏 흘러간다. 잠시 쉬고 싶을 땐 멈춰서 주변의 모든 에너지를 온몸으로 느낀다. 온 몸에 생명을 불어넣으면 내 몸에 있는 50조개의 세포 하나하나가 꽃봉우리처럼 터지고 개별적으로 살아나 나와 교감한다. 혼자가 아닌 느낌. 흘러가고 멈추고 합져지고 분리된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그 무엇도 아닌 느낌.
내 마음에 드는 공포의 정의는 '진짜처럼 보이는 그릇된 예상'이다. 모든 생각이 그저 스쳐가는 생리적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면, 내 이야기꾼이 흥분하여 공포회로를 가동할 때 덜 흔들리게 된다. 그리고 내가 우주와 하나임을 기억하면 공포는 힘을 잃는다. 공포, 분노반응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되도록 공포 영화는 보지 않으며, 걸핏하면 분노 회로를 가동하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나의 회로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선택만 한다. 유쾌한 기분을 좋아하므로 나의 기쁨에 응해주는 사람들과 어울린다.
나는 가능한 뉴스를 보지 않는다. 잔인하거나 공포스러운 영화도 보지 않는다. 가능한 긍정적인 에너지가 가득한 환경에 나를 두려고 신경 쓴다. 그런데 가끔씩 평화롭다고도 할 수 있고 지루하다고도 할 수 있는 이런 생활을 계속 하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너무 세상과 단절되어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럴 때는 자극적인 기사나 유튜브를 찾아 본다. 참 재미있다. 그리고 몇 일 동안 그런 생활을 하고나면 다시 머리 속에 생각이 많아지고 후회하고 조용한 생활로 돌아간다. 계속 반복적이지만 조용한 생활을 유지하는 기간이 점점 늘어난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사람들을 만나는 문제는 쉽지 않다. 매일 사무실에서 부딪히는 많은 사람들 중 대부분이 걱정, 분노 회로를 돌리는 사람이다. 그 중엔 나도 포함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바쁜 현대사회를 살아나가려면 생각없이, 계획없이 산다는 것이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다. 게다가 내가 하고 있는 기획업무는 특성상 제한된 시간 내에 다양한 시나리오(걱정)를 고민하고 그에 대해 대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걱정, 불안, 각성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요즘은 어느 순간 내 머리 속에 너무 생각이 많아지면 의도적으로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고 한참 동안 멍하게 머리를 식힌다. 현재까지 내 해결책은 그 방법이 유일하다.
죽음은 우리 모두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여러분이 오른쪽 뇌 깊은 곳에 영원한 평화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 몸을 낮추고 평화로운 은혜의 상태로 돌아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고마워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매사 고마워하면 당신의 삶은 정말 멋질 것이다!
세상에는 고마워할 일이 참 많다. 하지만 매사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기에는 세상이 너무 바쁘게 돌아간다. 그러다보니 점차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지는 것 같다. 감사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 삶의 탬포를 조금 늦추고 일상의 세세한 것에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면 모두가 연결된 평화로운 상태로 들어갈 수 있다. 느긋하게 살기.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겠다. 바쁜 일상 중간에 1분 명상루틴을 잠깐씩 끼워 넣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다.
뇌 신경해부학자인 질 볼트 테일러 박사가 좌뇌 뇌졸중을 겪으면서 우뇌의 시각만으로 세상을 경험한 이야기는 참 신비롭고 놀랍다. 해탈이라는 성인의 경지는 특별한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이미 우뇌에 보유하고 있는 능력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뇌는 쓰는만큼 발달한다. 그래서 질 테일러 박사도 뇌졸중에 걸리고도 8년의 회복기간을 보낸 후에 다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바쁜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우뇌와의 연결이 약해진다. 삶이 팍팍하고 힘들 때에 우뇌와의 연결을 강화하고 평화로운 은혜의 상태에 머무는 연습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질 테일러 박사가 소개한 뇌 다스리는 법은 마음의 여유만 가진다면 생활 속에서 매우 유용할 것 같다.
- 분노회로에서 벗어나기 선택
- 분노를 관찰하고, 이해하고, 감싸주기
-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해서 오른쪽 뇌에 연결되기 (분노회로에서 벗어나기)
- 긍정적인 환경에 머무르기
- 매사 고마워하는 마음 갖기
<식사메뉴>
- 소고기야채스프 & 밥
- 야채크림스프 (Crema de Vegetales)
- 샐러드
- 주스

긴글이지만 정독했습니다. 도움이 많이 되는 글 감사합니다.
두서없이 적은 글을 정독해주셨다니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리네요..^^;;
방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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