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ing buskers/unlimited] 물속에서

in #stimcitylast year

물속에서, 바닷 물속에서, 소년은 보았다. 일렁이는 수면 위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소녀. 그러나 두 눈을 모두 감고 있는 소녀를 보았다. 소녀는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두 눈을 모두 감고 있었다. 아니 두 눈을 모두 뜨고 있었다. 성냥개비 같아 보이는 가느다란 나무 조각 같은 것으로 눈꺼풀을 억지로 벌려 놓고 있었다. 그러나 검은자위가 보이지 않았으므로 소년은 소녀가 눈을 감고 있다고 생각했다.



소년은 소녀를 불렀다. 물속에서 눈을 뜨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눈을 떠도 죽지 않는다고, 자신을 보라고 이렇게 물속에서도 눈을 뜨고 있지 않냐고, 죽지 않고 숨 쉬고 있지 않냐고 물속에서도.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소년의 음성은 물속에서 웅얼거릴 뿐 내뱉어지지 않았다. 소년은 순간 깨달았다. 인어공주가 왜 목소리를 잃었는지.



소녀는 보지 못하지만 말할 수는 있었다. 두 눈을 모두 감고 있어 보지 못하는 걸 자신은 원래 보지 못하는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태양을 피해 고개를 숙이고 바닷물 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누군가 자신의 눈을 뜨게 해주지 않을까 빌면서 매일 바닷가에 나와 소리쳤다.



"보고 싶어. 보고 싶어."



소년의 귀에 소녀의 목소리가 또렷하지 않게 들려왔다. 하지만 의미를 알 수는 있었다. 그리고 소년은 생각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소녀가, 보고 싶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까? 보고 싶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누구를 말하는 걸까? 소년은 소녀의 눈을 지탱하고 있는 나무 조각을 떼어내 주고 싶었다. 소녀는 그 나무 조각이 자기 눈꺼풀을 받히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볼 수 있으나 말할 수 없게 된 소년은, 볼 수는 없지만 말을 할 수 있는 소녀와 자신이 원래 하나였으나 나누어진 존재라는 걸 이내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은 가질 수 없는 것. 서로가 가지지 못한 것은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것이라는 것도. 소년은 마법사에게 묻고 싶었다. 두 눈을 뜨면 목소리를 잃어야 하는 것인지, 목소리를 얻으면 두 눈을 잃어야 하는 것인지. 그러나 마법사는 사라졌다.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부를 수도 없는데.



소녀는 얼굴을 수면 가까이 내밀었다. 혹 저 아래에서 자신의 눈을 뜨게 해 줄 누군가의 목소리가 조그맣게라도 들려오지 않을까 싶어 얼굴을 수면 아래로 더 가까이 가져다 댔다. 소년은 필사적으로 수면 가까이 헤엄쳐 올랐다. 최대한 소녀에게 가까이 가서 눈을 뜨라고, 나무 조각 따위는 치워버리고 숨어버린 검은자위를 제자리로 돌려놓으면 보일 거라고, 세상이, 내가, 보일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물 밖으로 나설 자신은 없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그러다 자칫 소년과 소녀의 위치가 뒤바뀌어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소년과 소녀는 수면을 가운데 두고 서로 마주 보게 되었다. 소녀는 무언가 따뜻한 시선이 얼굴에 와 닿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소년은 무언가 익숙한 목소리가 자신의 귀에 닿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년은 소녀를, 소년은 소녀를, 와락 끌어안아 버리고 말았다. 소년은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소녀는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어떻게 됐나요?"



마법사는 달빛이 영롱하게 비치는 호수를 내려다보고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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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마법행전 2부 6장 물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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