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바다에 관한 소개
★ 교토바다
시인 詩人 / 2010 ~ ?
마법사 멀린의 時적 자아. 윤동주가 담바 픠우던 교토의 바다를 통해 이 세계로 들어왔다. 언제나 자신이 떠나온 어머니의 대지를 그리워하며, 주유하고 있는 이 세계의 정경을 눈에 담고 시로 토해낸다. 그의 가슴은 늘 그렁그렁하다.
저서 : <외계인도 카라멜 프라푸치노를 마시는가?>, <그림 없는 그림책2>(연재 중)
그는 빈센트의 다른 생입니다. 빈센트는 2010년 늦가을 이 세계를 떠났습니다. 37년간의 생을 마감하고 말입니다. 그는 그의 全生에 그랬던 것처럼 몇 개의 작품만을 남겼는데 그중 하나가 <그림 없는 그림책>의 첫 번째 시즌입니다. 그리고 미발표된 여행기가 하나 남아 있습니다. 빈센트의 삶은 이번 생에도 세상에 드러나지 못했습니다.
교토바다는 빈센트의 다시 태어난 이름입니다. 그는 빈센트가 떠나간 교토의 윤동주의 바다를 통해 이 세계에 진입했습니다. 2010년 늦여름의 일입니다. 그는 빈센트의 前生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개인의 공간을 벗어나 세상으로 나아오고 있습니다.
그는 시와 소설 그리고 수필을 씁니다. 그는 말을 할 줄 모르고 글을 쓸 줄만 압니다. 그는 소통하기보다 전달합니다. 그가 느낀 21세기의 인간 生을 느낀 그대로 내뱉고 토설합니다. 그래서 그의 글은 시이거나 소설이지만 기록에 가깝습니다.
그는 수줍고 말이 없지만, 주의 깊게 관찰하고 전심으로 대상에 다가갑니다. 전해오는 감정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다시 토해 놓습니다. 그 과정은 잔혹하고 고통스럽지만, 쏟아져 나온 그것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그의 가슴이 늘 그렁그렁한 이유입니다.
나에게는 그를 세상에 내어놓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나는 그의 탕기 아저씨이기 때문입니다.
'어제 탕기 아저씨를 만났어. 그는 내가 막 완성한 그림을 가게 진열장에 걸었어. 네가 떠난 후, 그림 네 점을 완성했고 지금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중이야. 이 길고 큰 그림들을 팔기는 어렵다는 걸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나중에는 사람들도 그 안에서 야외의 신선함과 편안함을 느끼게 될 거야.'
_ 영혼의 편지, 빈센트 반 고흐
前生의 빈센트에게는 동생 테오 말고도 후원자가 한 명 더 있었습니다. 그는 줄리앙 프랑수아 탕기(Julien Francois Tanguy)로 그가 후원한 많은 화가들에게서 페르 탕기(Pere Tanguy), 탕기아저씨로 불렸습니다. 그는 물감 상점의 주인이었으며 가난한 화가들에게 돈 대신 그림을 받거나 외상으로 주기도 하며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지하고 후원하였습니다. 모네, 세잔, 고갱, 르누아르, 피사로 등등 많은 화가들이 그의 도움과 후원을 받았고 그는 그들의 작품을 보존하고 세상에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들 중 누구도 자신들이 어떤 작품을 그리고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단 한 사람 탕기 아저씨를 빼고는 말입니다. 그는 빈센트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던 생의 마지막 시절에도 함께 했는데, 빈센트의 쾌유를 기대하며 노력했을 뿐만 아니라 빈센트의 정신병원 시절에 그린 마지막 작품들을 가져다 자신의 가게에서 전시하기도 했습니다.
탕기 아저씨가 부자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도 부자들은 그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부자들은 작품을 사는 게 아니라 가격을 살 뿐입니다. 그건 어느 시대에나 동일합니다. 대가를 알아보는 이는 대가의 눈을 가진 또 다른 대가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에게는 그를 세상에 내어놓을 의무가 있습니다. 그는 아마도 이 우주를 떠나기 전까지 계속 글을 쓸 텐데, 그것이 쌓이기만 하다 썩지 않고 인류의 바닷속으로 흐르도록 내어놓고 전시할 의무가 나에게 있습니다. 그것은 마법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가능성을 가진 이 공간은 이제 단순 채굴장으로 격하되어버렸습니다. 前生의 빈센트 역시 한때는 채굴장의 광부들에게 복음을 전하던 선교사였습니다. 보리나주(Borinage)의 탄광 지역에서 그는 탄광 노동자들의 삶을 헌신적으로 돌보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지하갱도의 삶은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의 삶보다 훨씬 비참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전도를 하기보다 그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는 동료들에게서 '광산의 예수'라고 불렸으며 에밀 졸라는 그의 작품에서 그를 '청년 예수'로 묘사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의 헌신이 교회의 품위를 떨어뜨린다며 그의 직위를 박탈했습니다.
슬픈 빈센트는 떠났고 돌아온 이는 교토바다입니다. 그리고 교토바다는 더이상 청년 예수가 되고픈 선교사 지망생이 아닙니다. 그는 묵묵히 생을 경험하고 글을 쓸 뿐입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탄광의 동료들 대신 탕기 아저씨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건 나의 몫입니다.
나는 그의 작품활동을 지원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공간에서 그것이 가능한 방법은 이제 채굴뿐입니다. 빈센트는 채굴 노동자의 삶에 복음을 전하려 했지만, 교토바다는 묵묵히 글을 쓸 뿐이니 채굴은 나의 몫입니다.
이때를 위해 하늘이 내려준 만나 중 절반은 그의 작품활동을 위한 채굴 비용으로 사용하려 합니다. 이것은 보팅서비스에 임대될 것이고 채굴로 만들어진 자금은 교토바다의 작품을 세상에 내어놓는 비용으로 사용되어질 것입니다.
이 공간의 많은 가능성은 갱도와 함께 무너졌지만, 덕분에 우리는 @upvu와 같은 최고 효율의 채굴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스팀시티]가 <스팀만배 존버 프로젝트> 와 <스팀문학전집> 을 시도하며 사용하려던 '셀봇'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눈치 보며 머뭇거렸고 이 공간은 아직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 공간의 창작물들을 모으고, 그것에 <스팀만배 존버 프로젝트>로 모인 임대스파로 과감히 셀봇을 하여 <스팀문학전집>을 발간해 가려고 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공론화의 과정이 필요했으나 3년이 지난 지금의 현실은 무너진 공론의 갱도 속에서 최고 효율의 채굴기들이 등장한 상황입니다.
이제 이 공간의 창작자는 자신의 작품에 보팅해줄 누군가를 기다리기보다, 자신의 작품을 위해 채굴기에 스파를 임대하고 채굴된 그것을 팔아 작품을 세상에 내어놓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채굴된 그것의 가치는 누구도 보장해 주지 않지만 말입니다. 또한 작가와 독자의 상호작용은 일단 뒤로 밀어두어야 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마법사와 춘자, 그리고 [스팀시티]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 시스템을 활용하려 합니다. 많은 이들이 손들고 나가떨어졌지만 약육강식의 세상보다는 아직 이곳에 온기와 가능성이 더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더럽다고 떠나온 공간들에서 얼마나 많은 도시가 세워지고 또 다른 착취가 반복되고 있는지, 결국 떠나왔으면서 배고프다고 다시 돌아가는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땅은 쟁취하는 자의 것이고 지켜내는 자의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스팀잇은 아직도 기회의 땅입니다.
교토바다 @kyotobada는 <그림 없는 그림책>의 시즌2를 연재 중입니다. 연재가 끝나면 채굴된 스팀을 팔아 단행본으로 발간할 예정입니다. 이 시대에 시를 쓰고 소설을 쓴다는 것, 게다가 그것을 단행본으로 묶어 낸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암호화폐만큼이나 내재가치가 없어 보이는 일입니다. 게다가 그것을 내달라고 어디엔가 투고하는 일은 염치없고 민폐를 끼치는 일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무모한 것은 둘째치고 말입니다. 그러나 나의 것을 내가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누가 나의 것을 돌아봐 주겠습니까? 자신의 것을 천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그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창작자가 견뎌내야 할 말들입니다. 그것은 지하 갱도의 어두움보다 더 지독하지만, 모든 창작자들은 그것을 견뎌내야 합니다. 빈센트처럼. 그리고 나는 나의 첫 번째 독자, 나의 첫 번째 구매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의 작품을 내가 사지 않으면 아무도 사줄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에 그것은 비참함이 아니라 용기입니다.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어 마법사 멀린의 時적 자아인 교토바다의 작품을 사려고 합니다. 그간 목숨을 부지하기에도 힘겨워 그의 작품을 살 여력이 없었으나, 때를 따라 내려준 만나와 그것의 가치를 배가시켜줄 최고 효율의 채굴기들이 있기에 그것을 최대한 활용해 보려 합니다. 그리고 그것의 잉여물이 생겨나거든 또 다른 누군가의 탕기 아저씨가 되어보겠습니다. 그것은 마법사의 할 일이니까요.
교토바다는 이 세계에 얼마나 머물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늘 떠나온 어머니의 대지를 그리워합니다. 이 공간에서의 순간순간들이 그에게 고통일지 슬픔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남은 여백들을 기쁨과 환희로 채워줄 몫은 나에게 남아 있습니다. 그건 온전히 나의 몫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여러분의 몫까지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바람입니다.
조금 더 파 내려가 봅시다.
지치지 말고 멈추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