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거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in #stimcity4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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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매스 미디어 시대의 개막



100년 전이다. 1922년, 백악관에 라디오가 처음 설치되었고 영국에는 BBC가 설립되었다. 1924년, 미국 대통령 쿨리지의 첫 라디오 연설이 있었다. 그는 대통령 선거에 라디오를 적극 활용한 첫 인물이었다. 같은 해 영국의 조지 5세는 대영제국박람회의 개막사를 처음으로 라디오를 통해 연설하였다. 그는 자신의 아들 조지 6세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의 아들은 공교롭게도 말더듬이였다.)



"이 괴물(라디오) 때문에 모든 게 변할 거야. 옛날 왕은 위엄있게 군복 입고 말에서 떨어지지 않으면 됐지만 이젠 집집마다 찾아가 환심을 사야 해."



신문과 잡지, 책이 있었지만, 문맹률을 생각하면 여론이라는 것은 식자층의 전유물이었다. 국민국가가 성립되면서 투표권을 가진 개개인에게 호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라디오가 대대적으로 보급되고 활용되었다. 드디어 본격적인 매스 미디어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개인은 누구의 말과 글을 통해서가 아닌 육성으로 직접 권력자의 메시지를 전달받을 수 있게 되었다. 개인에 의한 단일 권력 체재를 가능케 한 괴물, 매스 미디어를 탄생시킨 건 라디오의 보급을 통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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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이 누구나 성경을 읽을 수 있게 함으로써 종교 지도자의 권위를 해체시켰듯이, 매스미디어는 읽고 쓸 줄 아는 소수 지배층의 권위를 해체시키고 그것을 조종하기 쉬운 한 명에게 몰아주었다. 라디오 스타를 탄생시킨 것이다. 첫 번째 라디오 스타는 누가 뭐래도 히틀러이다. 그는 독일 국민을 글이 아닌 말로 결집시켰다. 그에게 항전을 선포한 처칠의 통치 행위도 의회를 통한 절차가 아닌 라디오 대국민 연설을 통해서였다. 매스 미디어의 위력을 실감한 것은 조선의 백성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라디오에서 터져 나온 히로히토 일왕의 항복선언은 조선의 백성들에게 광복의 기쁨을 실시간으로 가져다주었고, 5년 뒤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은 백성에서 국민으로 신분이 변한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 주었다.



"서울 시민 여러분, 안심하고 서울을 지키시오. 적은 패주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여러분과 함께 서울에 머물 것입니다."



한강대교가 폭파되기 전날, 대통령의 이 라디오 연설은 3차례나 반복되었고, 100만 서울 시민의 발을 묶어버렸다. 그리고 폭파된 다리와 함께 대한민국의 국민은 엄청난 트라우마에 갇혀 버렸다. 라디오가 거짓말을 하다니. 라디오가 아니었다면 그들 중 상당수는 그날 밤 다리를 건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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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의 영예는 길지 않았다. 전쟁과 함께 시작된 라디오의 시대는 전쟁이 끝나자 TV에 그 권좌를 내주고 2인자로 물러나게 되었다. 반세기 만에 강력한 도전자를 만난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등장한 TV는 듣는 것만으로는 믿을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보고 듣게 함으로써 도망칠 수 없는 권위를 부여하게 만들었다. 음성은 이미지로 강화되었고 브라운관을 통해 보고 듣는 메시지는 그것 자체로 강력한 진실이었다. 모두가 같은 메시지를 듣고 같은 장면을 보고 들음으로써 전 세계인의 뇌가 동기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권력자는 자기가 원하는 메시지를 주입하면 그만이다. 생각은 매스 미디어가 대신 해주고 사람은 기계처럼 반응할 뿐이다. 매스 미디어는 전 세계적 스타와 영웅을 만들고 같은 이념과 같은 취향을 강요했다. 아니다. 같은 것만 듣고 같은 것만 보니 새로울 게 뭔가? 개성의 자리에 주입된 조작된 메시지는 컨베이어 벨트를 돌아가는 대량생산품처럼 같은 인간, 같은 생각, 같은 취향을 반복해서 찍어냈다. 얼마나 쉬울까? 권력은 입력이다. 권력은 미디어다. 미디어는 권력자를 교체할 뿐 권좌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다. 매스 미디어 그것은 그것 자체로 괴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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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게임, 권력은 프로듀서로부터



소설이 원작인 이 영화는 매우 흥미롭다. 디스토피아를 그린 영화 속 도시들은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듯하나 매우 현대스럽다. 13개의 구역을 정복한 캐피톨의 독재자는 현대의 그것처럼 매스 미디어를 통해 시민들을 억압하고 조종한다. 시민들은 의무적으로 TV를 시청해야 하고 미리 조작된 게임 프로그램을 반강제로 시청함으로써 공포와 무력감을 주입받는다. 독재 권력이 어떻게 매스 미디어를 활용하여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결집시키는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이 독재 권력의 오른팔은 군대의 장군이 아니라 매스 미디어를 귀신같이 활용할 줄 아는 방송 프로듀서이다. 그러나 그를 고용한 듯 보이나 실은 그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는 권력자들은 악하든 선해 보이든 모두 제거당하고, 프로듀서만이 살아남아 새로운 독재자를 탄생시킨다. 자신이 조종당하는 줄도 모르면서 권력에 취할, 꼭두각시 권력자의 스카웃 권한은 프로듀서에게 있고 그것이 그의 능력이다. 매스에 잘 중독될 인간을 고르는 일 말이다.



그것이 현대인의 꿈이 되었다. 매스에 간택 받기 말이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노래가 아이들 사이에서 동요로 자리를 잡은 순간부터 모든 아이들의 꿈은 그것이었다. 매스에 주목받는 사람이 되는 거 말이다. 그건 직업과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작가도 가수도 회사원도 심지어 종교인도 과학자도, 모두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을 인생의 최종 성공으로 삼고 어떤 분야에 종사하건 모두 그것을 향해 달려간다.



"엄마 나 티비 나왔어!"



서울대도 연대도 고대도 아니다. 이 시대에는 티비에 나와야 한다. 명문대생도 티비에 나오지 못하면 이름값을 내밀지 못한다. 그러나 티비에 나오면 그것쯤 한방에 상쇄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찌감치 티비에 나온 스타들은 굳이 대학에 가지도 않는다. 오히려 대학이 모셔가기 바쁘다. 학벌사회라고?



실력이나 성취도와는 별개이다. 그것은 포장하기 나름이다. 브라운관에 적당하면 그뿐이다. 물론 프로듀서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매스 미디어의 공식에 능통한 프로듀서들은 누구를 데려다 놓아도 스타의 반열에 올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잘 포장해서 자꾸 노출시키면 실력과 능력 따위와는 아무 상관 없이 스타가 되고 성공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스타와 권력자 주변의 수많은 떨거지들이 빨대를 꽂고 먹고살고, 그것이 산업이 되어 20세기 내내 잘도 뽑아 먹었다. 매스 미디어의 노예가 된 백성들은 이것이 민주주의라고 선동을 당하며 엄한 놈들을 권좌에 앉혔다. 매스 미디어가 보여주지 않은 진실은 묻히고, 거짓도 매스 미디어에 보도되었단 이유로 진실의 옷을 입었다. 권력은 매스 미디어에 충성하면 그뿐이다. 뒤도 앞도 그들이 알아서 잘 봐준다. 필요한 것은 연기력이지 실력이 아니다. 매스는 권력을 지속하기 위해 포장하기 좋고 말 잘 듣는 꼭두각시들을 여론조사로 모아들이고, 수치는 조작하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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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탈탈 털어먹은 매스미디어는 21세기가 되자 이제 개인들에게도 성적표를 매겼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온 도전자들만 점수를 받는 게 아니다. 이놈의 SNS에는 왜 팔로워와 좋아요가 점수로 표시되는 걸까? 시청률은 표시하지 않으면서 조회수와 추천수는 왜 까발리는 걸까? 개개인도 모두 자신의 흥행점수를 온 세상에 표시해야 하고, 매스 미디어는 이를 인간화, 사회화, 성공의 척도로 내세우기까지 했다. 읽지도 않고 누른 '좋아요'를 여론의 척도로 삼고 버튼만 누르는 특공대를 조직했다. 자, 이제 프로듀서는 진짜 사령관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실수였을까? 방관이었을까?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이 욕심을 향해 치달을 때에는 제 발목을 잡기 마련이다. 인간을 좀 더 세세하게 조작하려고 들던 매스 미디어가 멋모르고 판도라의 상자, 마이크로 미디어의 세계를 열어버린 것이다. 아니 그것은 기술의 변화에 따라 저절로 열렸고 그들은 그게 뭘 의미하는지 몰랐다. 그것마저 이용하려 들었을 뿐.



그들은 실수했다. 개인까지 점수화하여 평가하려 들고, 대중의 Pick이라며 개개인의 취향까지 조작하려 들던 만행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한 것이다. 권력자와 꼭두각시 스타의 등에 빨대 꽂는 것도 부족했는지 범인들의 일상에까지 빨대를 꽂으려 들다 빨대가 부러져 버린 것이다. 바닥까지 털어먹으려 들면 뭐든 탈이 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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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 미디어의 탄생



매스 미디어는 마이크로 미디어의 시대에 그것, 프로듀서 직을 개인에게 넘겨주지 말았어야 한다. 그들은 매스의 힘만 믿고 한가하게 바라보았다. 마이크로 미디어의 시작을 그냥 방관했다. 개인들은 프로듀서의 능력과 권한이 얼마나 막강한지 직접 맛을 보자 마구 빠져들기 시작했다. 자신의 채널을 갖는다는 것. 그것은 하나의 세계를 갖는 일이다. 왕이 되는 일이다. 비록 초라한 숫자의 백성을 거느리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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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게임의 프로듀서



미디어의 왕은 프로듀서 자신이다. 이 마이크로 미디어 세계의 프로듀서는 배우와 작가를 겸하고 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릴 수 있다. 물론 승부는 취향과 세계관이고 그것의 퀄리티이다. 매스 미디어에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몇 개 되지 않은 채널들은 적당히 수위를 유지했고 누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 인기를 얻으면 카피해버림 그만이었다. 그것도 서로 해대니 그다지 비도덕적인 일도, 저작권 위반 시비도 없었다. 짜고 치는 고스톱의 룰이 공정해 봐야 얼마나 공정하겠는가? 그러나 1인 1채널 아니 1인 다채널의 마이크로 미디어의 시대가 열리자, 매스 미디어의 세계에는 없었던 경쟁이란 것이 시작되었다. 코웃음을 치던 거대 매스 미디어는 유치원생 아이의 채널 하나만도 못한 수준으로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독점과 조작에 맛 들린 매스 미디어는 진화와 발전을 게을리하고 있었으니, 간과하는 사이 마이크로 미디어의 진격을 눈치도 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이크로 미디어의 세계를 그들이 열어준 것은 아닐 테다. 자본주의는 그런 면에서 공정하다. 돈이 된다고 하면 전통과 관습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원한 권력은 없다.) 언제든 돈이 될 새로운 도전에 손을 선뜻 내민다. 권력을 내놓을 생각이 없었다면 그것 마이크로 미디어는 진작부터 싹을 잘라버렸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게으른 예측과 지나친 자신감은 전복의 싹을 방관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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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 미디어는 20세기 내내 권력과 시장을 모두 독점하고 있었다. 권력과 시장은 매스 미디어의 눈치를 봐야 했고 그들의 입김에 따라 자신의 생사를 판결받아야 했다. 그러므로 시대변화에 민감했다면 마이크로 미디어, 그것은 안 될 말이다. 어디 마이크를 내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그것들에게 넘겨줄까? 만일 그들이 이 새로운 미디어를 진작부터 위협으로 인식하였더라면, 우리는 페친과 인친, 팔로워를 그들의 공인을 받지 않고 유치할 수 없었으리라. 공정성을 시비로 댓글과 '좋아요'는 무자비한 검열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이제는 그러고 싶어 하나보다)



1기 소셜 미디어(블로그/카페/트위터 등)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라면 그들은 개인에게 권력의 펜을 넘겨주었다. 2기 소셜 미디어(페이스북/인스타그램/팟캐스트/유튜브 등)는 라디오와 TV처럼 개인에게 직접적인 언론권을 부여했을 뿐만 아니라 지지자와 팬덤을 모을 수 있게 해주었다. 권력집단을 만들어 준 것이다. 그럼 3기 소셜 미디어는 무엇을 가져다줄까? 요즘 뜨고 있다는 <클럽하우스>는 그것을 가늠해 볼 수 있게 해 준다.



너의 왕은 나의 왕이 아니야



매스 미디어가 마이크로 미디어에게 권좌를 내어주자, 권력은 빠르게 분산되기 시작했다. 그나마 '실시간 검색어'로 마지막 권력의 끈을 붙잡고 있던 매스 미디어는 이제 더 이상 자신들이 미는 꼭두각시를 대중의 스타, 권력자로 만들 수 없게 되었다. 개인은 이제 자신만의 채널, 자신만의 스타를 가지게 된 것이다. 내가 열광하는 스타는 너의 스타가 아니고 그들이 우상처럼 떠받드는 권력자는 나에게 듣보잡일 뿐이다. 대중은 더 이상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너 어제 그거 봤어?"

다만 이렇게 말해야 한다.

"너 OOO 아니? 요즘 OOO 커뮤니티에서 핫한데 말이야."



그렇다. 마이크로 미디어는 국민 미디어가 아니다. 그것은 개인 미디어이고 추종자와 팬들만의 미디어이다. 그들은 매스 미디어 시절처럼 열광하고 떠받들고 분노하고 내치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세상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옆 동네의 일일 뿐이다. 권력은 인구수만큼 분산되기 시작했고 지지를 얻는다 한들, 저마다 자신의 취향과 세계관을 뽐내느라 정신이 없는 이 70억의 프로듀서들을 하나로 모으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세계 독재자가 나타날까? 대부분에게 듣보잡일텐데. 백신도 거부하는 마이크로 미디어의 추종자들이 그에게 표를 주기는커녕 그의 이름을 알기나 할까?



"대세라고? 난 이름도 못 들어봤는데?"



2기 소셜 미디어까지는 아직 매스 미디어의 자리가 남아 있었다. 개인으로 분산된 미디어는 응집의 힘이 약하고 저마다 자신의 프로듀싱 능력을 뽐내기에 바쁘니까. 30% 정도의 지지를 얻으면 어떻게 권력과 시장을 간신히 움직여 볼 정도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3기 소셜 미디어의 시대는 다르다. 그들은 개인을 넘어 집단으로 연대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소셜 미디어 <클럽하우스>의 개념은 그래서 신선하다. <클럽하우스>는 1인 미디어의 장기자랑 뽐내기 채널이 아닌 듯하다. 컨셉 중심의 이 채널은 블로그나 유튜브처럼 혼자 떠들 수는 없다. (기록을 남겨서는 안 되고 아카이빙도 되지 않는단다.) 자신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취향과 세계관을 명확하게 간판으로 내 걸지 않으면 일단 시작을 할 수가 없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고 최소한 2인이라도 청자와 스피커가 있어야 한다. 그간 혼자 떠들고 혼자 주장하느라 힘을 뺀 개인, 특히 팔로워 기근에 시달리다 못해 자포자기하던 마이너 프로듀서들이라면 자신의 취향과 세계관의 지지자들을 모아볼 수 있겠다. 세상에 없는 줄 알았던, 같은 취향과 세계관의 동지들과 기쁨의 조우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더 마이크로 하다. 모두가 떠들 수 없고 아카이빙 되지 않는 라이브니 멍청하게 듣기만 하는 유저들에게는 라디오, 팟캐스트보다 못하다. 대화 자체에 집중해야 하고 뭐라도 참여해서 얘기를 하지 않으면 듣기만 해서는 흥미가 떨어지니 주제는 더더욱 취향과 세계관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겠다. 그렇다고 동시접속 수만 명, 이런 게 성립 자체가 되지 않으니 더 마이크로 해질 수밖에. 살롱처럼 대화가 가능한 소수 위주의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이를 기반으로 1기와 2기의 마이크로 미디어가 연결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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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매스 미디어는 어떻게 사람들을 선전, 선동할까? 뉴스도 보지 않는 대중들, 실시간 검색어가 듣보잡으로 채워지는 시대에 누가 이게 대세라고 우겨댈 텐가? 게다가 권력에 비해 보상이 형편없던 월급쟁이 프로듀서들은 대거 마이크로 미디어로 망명하여 자신들만의 왕국을 건국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망명자 중에는 미국의 대통령도 있다. 매스 미디어에 탄압을 받은 트럼프는 마이크로 소셜 미디어에 자신만의 채널을 열었지만, 그마저도 폐쇄당했다. 자 트럼프, 탄핵도 면했는데 그의 캠프는 <클럽하우스>에 차려질 것인가? 그럴까 두려워 중국은 아예 이 서비스를 폐쇄시켜 버렸다. 그리고 비슷한 류의 서비스가 또 생겨날까 봐 법으로 막아버리기까지 했다.



이제 정치와 사회는 본연의 자리로 돌아갈까?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조작된 정보와 편집된 보도에 의존한 매스 미디어 독재 공화국은 막을 내리고, 하나의 현상에 대해 취향과 세계관에 따라 다양한 평가가 쏟아지고 그 안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진짜 민주주의의 시대가 열릴까? 섣부른 기대일지 모르지만 어쨌든 매스 미디어는 공중파의 몰락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갈 것이다. 그렇게 염려하던 메이저 신문과 언론, 종편이 아직 소셜 네트워크에 연결되지 못한 기성세대의 마이리틀텔레비젼으로 영향력이 쪼그라들었듯이.



소셜 미디어, 그러나 더 잔인해진 헝거게임



헝거게임의 승자는 1등뿐이다. 1등만이 살아남고 1명만 남을 때까지 게임은 계속된다. 그런 의미에서 매스미디어를 밀어내고 새로 권좌에 앉은 이 소셜 미디어, 마이크로 미디어는 헝거게임을 멈추었을까? 그들은 오히려 세뇌당할지언정 구경꾼이던 개인들까지 무한경쟁의 헝거게임에 몰아넣고 있는 것이 아닌가? 팔로워와 구독자, 좋아요와 조회수를 기준으로 1등만이 살아남고, 나머지는 자신의 시간과 노력, 생각과 취향, 사생활까지 셀럽들에게 공물로 바쳐야 하는 더 지독한 헝거게임을 시작한 것이 아닌가? 매스미디어의 시대에 대중은 세뇌되고 선동될지언정 최종 판결자이고 언제든 꺼내어 사용할 수 있는 전복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새롭게 권좌에 오른 소셜 미디어는 1인 미디어라는 미명 아래 대중을 개인 단위로 갈가리 찢어놓고는 헝거게임의 한복판으로 몰아넣어 버렸다. 계정 하나를 열어주고는 너의 사생활을 팔아 전쟁을 치르라고, 너의 생각과 감성을 팔아 플랫폼에 공물을 바치라고 유혹하고 있다. 왜 나의 사생활을 팔아야 하는가? 팔리지도 않는 나의 감성을 왜 공개해야 하는가?



안 하면 그만인데 모두가 한다. 모두가 하면 안 할 수 없는 대중의 심리를 이 소셜 미디어 플랫폼의 설계자들은 기가 막히게 이용하고 있다. 우리는 왕을 선택하는 프로듀서인가? 자신이 왕인 줄로 착각하는 멍청한 플랫폼 노동자인가? 이 교묘한 조작 사이에서, 매스 미디어에서 매스 플랫폼으로 영역을 확장한 악마의 프로듀서들은 여전히 우리를 비웃고 있다.



"시민 여러분, 안심하고 미디어의 주인이 되십시오. 매스 미디어라는 괴물은 패주하고 있습니다. 플랫폼은 여러분의 인정투쟁을 위한 뽐내기 경연을 일 년 열두 달 헝거게임으로 개최하고 있습니다."



"이 괴물(소셜 미디어) 때문에 모든 게 변할 거야. 옛날 개인은 위엄있게 집에서 TV나 보고 리모콘만 떨어뜨리지 않으면 됐지만 이젠 계정마다 찾아가 좋아요를 눌러줘야 해. 숫자뿐인 조회수와 팔로워를 늘리기 위해."



마이크로 미디어의 개인 권력자들은 더 잔인해졌다. 엄혹한 매스 미디어의 시대에도 암묵적 합의와 관례로 거론하지 않던 상대의 과거를 낱낱이 찾아내 대가를 지불시킨다. 인정사정없는 그들은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을뿐더러 경쟁을 위해서는 없는 사실도 있는 사실로 둔갑 시켜 폭력을 조장한다. 매스 미디어의 횡포에 익숙한 그들은 자신들이 받던 탄압을 그대로 학습해 고대로 서로를 향해 난사해대고 있다. 강화된 진정성의 시대는 소급적용에 거리낌이 없고 마녀사냥은 그들의 강력한 최종 무기이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이 새롭게 업그레이드된 NEW 헝거게임 시즌 2에서 팔짱을 끼고 웃고 있는 이들은 그들 플랫폼의 프로듀서들뿐이다. 기하급수로 늘어나는 가입자 수와 접속율로 급상승 중인 주가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 중이다. 자신들은 미디어가 아니라며.



인류는 진보하고 있는 걸까? 퇴보하고 있는 걸까? 인류는 헝거게임을 벗어나 새로운 민주 세계를 건설 중인가? 더 간교한 조작의 늪에 빠져들고 있는가?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3기 소셜 미디어는 이 잔인한 헝거게임을 끝내 줄까? 영화 속 헝거게임은 프로듀서가 건재함으로 여전히 반복될 듯하나, 모든 개인이 마이크로 언론사의 총수가 된 21세기에는 팍스 마이크로 미디어 공화국의 시대가 열리는 걸까? 마이크로 미디어의 시대, 그것은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의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우리는 이곳 중앙이 없는, 룰도 기준도 없는 극단적인 마이크로 미디어 공화국 '스팀잇'에서 그 미래를 미리 경험했다. 취향과 세계관에 따라 마구 분화된 마이크로 커뮤니티는 금권으로 무장한 고래들의 공격에 어떻게 대항할까? 삼삼오오 모여들어 패거리를 구성하기 시작하는 마이크로 커뮤니티들은 자본주의 초기의 갱단과 다르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는가? 매스 미디어가 통합시켜왔던 여론의 기능은 권좌를 넘겨받은 개인에게서 변질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가진 무기라곤 '진정성'(기회가 없어서 진실될 수밖에 없었던) 밖에 없는 서민들이 자신의 미디어로 촉발시키고 무분별하게 선동하는 마녀사냥은 어떻게 통제될 수 있는가? 우리는 이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마이크로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어떻게 균형을 찾고 진실과 진정성을 구분할 것인가?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다시 왕을 세워달라고 청원하게 될까? 매스 미디어는 그때에 다시 권좌로 복귀하게 될까? 많은 질문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스팀잇의 현재는 그 미래를 보여주는 듯하다. 고래전쟁이 끝나고 무엇이 남았는지.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고 미약한지. 인류는 어떻게 진화하고 어떻게 컨센서스를 쌓아왔는지. 그것은 환경을 파괴시켰을 지언정, 퇴보가 아니고 발전이었음을 한편 되새기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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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잇이 실패한 도전을 <클럽하우스>는 성공하길 바란다. 매스 미디어가 사라진 공간에서 읽지도 보지도 듣지도 않으니, 저마다 제각각 읽고 보고 들으니 합의 자체가 불가능한 마이크로 미디어의 한계를 벗어나, 한 방에 모여 지금 대화하고 함께 의견을 나누니, '넌 뭘 들었어?' 할 지언정 '그런 말이 적혀 있었어? 제목만 보고 좋아요 눌렀거든' 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문맹률은 낮지만, 문해력은 점점 떨어지는 사회에서 그걸 꼭 말로 해야 알아듣는 인간들과 공존하려면 말이다.



그러나 각성한 이들이라면 마이크로 미디어를 통해 개인에게 주어진 언권을 매스 미디어 시대의 그것처럼 헝거게임용으로 소비하지 말고, 같은 취향과 같은 세계관을 가진 동지들을 만나는데 그리고 나아가 다른 취향과 다른 세계관을 가진 형제자매들과 화합하고 연대하는 데 활용하기를 바란다. 헝거게임을 멈추어야 우리의 배고픔이 해결된다. 헝거게임은 그대의 인정욕구를 절대 충족시켜주지 않는다. 그것은 그대의 결핍을 에너지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싸가 되고싶다면,



"Happy Hunger Games!
May the odds be ever in your favour.
해피 헝거 게임!
확률이 언제나 당신과 함께하기를."



이봐, 살아 있어?
기다려,
곧 달려갈 테니.
한 손에 죽음을 쥐고.
이봐, 거기 있어?
기다려.
이제 곧 네 앞이야.
알고 있잖아?
오직, 하나만 남아야 해.

_ 수잔 콜린스 <헝거게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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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리릭~






[위즈덤 레이스 + Movie100] 009. 헝거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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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 대부분이 이 신정욕구의 늪에 빠진듯 해 걱정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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