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린's 100] 몰아치는 인생

in #stimcity3 years ago (edited)




성취를 경험하는 이들 일부가 가진 습관을 보면 주기적으로 자산과 에너지를 제로 세팅한다는 겁니다. 그들은 잔고를 주기적으로 바닥냅니다. 그래야 자신이 움직인다는 걸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가장 확실한 일이기도 합니다. 공포는 행동력의 중요한 에너지원이니까요. 문제는 방향이고 목표일 겁니다. 분명한 목표 없이 떨어져 가는 잔고만큼 후달리는 게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목표가 있다면 떨어져 가는 잔고는 전투력을 급상승시켜 주는 자양강장제 역할을 해주기도 하죠.



그를 안 지는 꽤 오랜 시간이 되었는데, 그는 주기적으로 자신의 잔고가 제로가 되었음을 알려 왔습니다. 기대 없이 한 연락은 당연히 마법사가 그에게 금전적 도움을 줄 수 없음을 알면서도, 몰아치는 인생의 루틴에 따라 자신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모든 이들에게 연락을 돌리는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매번 미안하다며 내가 돈이 어디 있겠냐며 마음을 전하면서도, 그가 다시 무언가를 해내리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고 나면 또다시 어떻게 기회를 얻었는지 그는 무언가를 해내고 또 지속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여지없이 잔고가 제로가 되었다는 연락이 반복되었습니다. 물론 여기서 제로는 마이너스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가혹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괴롭혀서 얼마나 즐거울까 싶기도 합니다만, 즐거움이라는 것이 반복 경험의 동기라면 그는 제로 세팅을 매우 즐겨 하는 것일 겁니다. 물론 적어도 두려워 피하지는 않는 것이겠죠. 그것도 중독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게 즐겁거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다면 절대 근접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권태로운 일상을 사는 이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이러다 죽겠다 싶은 순간까지 다가서는 것 말이죠. 그걸 하고 있습니까? 해본 적이 있습니까?



몰아치는 인생을 사람들은 안타까워하고 부정적으로 여기지만, 뭔가가 있다는 말이 아닙니까? 몰아칠 만큼 매료된 무언가가 없이 어떻게 극한에까지 반복적으로 자신을 밀어붙일 수 있습니까? 그건 말 그대로 행복입니다. 자신의 에너지를 총동원할 만큼 매료된 그것. 그것을 가졌다는 사실 말입니다.



목에 칼이 들어오면 누구나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공포에 질려 꼼짝없이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순간은 잠깐이고, 인간은 잠시 틈이라도 나면 돌파구를 찾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주는 그 돌파구 뒤에 엄청난 선물을 한 아름 들고 기다리고 있구요. 멍청한 인간은 어떻게든 잔고를 제로로 만들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만, 정작 잔고가 제로가 되는 순간 밀려오는 안도와 평화 그리고 그 뒤를 잇는 생각지도 못한 기적의 순간들은 경험해본 이들만 아는 비의입니다. 그걸 알고 나면 세상이 만만해집니다. 그러다 결국 죽어도 그는 매료된 채로 죽은 것이니 얼마나 복에 겹습니까? 추구하다 죽어가는 일 말입니다. 주저하며 죽지도 못한 채 연명하는 삶보다야.



마법사를 자극하는 그는 이번에도 제로포인트에서 바닥을 치고 상승 중입니다. 원수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나를 도와주면 형님으로 모시겠다고 간청할 용기를 가진 그는, 다음 해의 기적을 예상하지 못한 채로 지난해 거리 위에서 뜨거운 태양과 차가운 빗줄기를 버텨냈습니다. 그리고 우주는 기다렸다는 듯, 그간 그에게 미뤄두었던 빚을 모두 상환하는 중입니다. 몰아치는 인생에 미지급된 보상 말입니다.



아마 그는 이번에도 차후, 노후 따위는 생각지 않은 채 끝 간 데 없이, 더 높이 날아오르다 다시 제로 포인트로 회귀할 겁니다. 그걸 몇 번쯤 더할지는 모르겠으나 그러다 어느 날 그의 부고를 알리는 연락을 받게 되거든, 마법사는 그의 영정 앞에 짧은 인사말을 올릴 생각입니다.



수고했습니다.
행복하셨습니다.



비상하는 용기와 함께 날아오르는 일만큼 행복한 경험이 없습니다. 마법사는 매번 비상하는 용기, 몰아치는 인생들을 찾아다녔고 그들과의 순간, 모험, 도전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그래서 마법사 역시 그들과 함께 제로포인트로 회귀했지만, 후회가 없고 뿌듯함만 가득합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한번의 고꾸라짐으로도 공포에 질려 바닥 근처 어딘가에 권태라는 가지를 붙들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지만. 몰아치는 인생을 사는 이들이 가끔 있습니다. 밟아도 풀이 뻗는 잔디 풀 같은 이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는 일. 마법사는 그것을 사랑이라 말하고 삶이라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의 핵심은 '다함'에 있습니다. 잔고가 제로가 되어도 좋을 만큼 매료된 일이라면 '다하는 일'이 두려울 리 없습니다. 불행에 대비하기 위해 다하지 않은 채 남겨놓은 그것은 죽을 때 가져가지도 못하고 살아서 써보지도 못합니다. 그건 그저 잉여로 남아 대대로 썩어갈 겁니다. 탈대로 다 태우고 가는 인생, 그게 실패일 리 없지 않습니까?



여름의 끝자락에 다시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멀린's 100 (season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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