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포탈들] 숨겨진 인연들 열다섯에 하나,
"아니, 사람을 불렀으면 무슨 얘기를 해야지, 언제까지 그러고 춤만 추고 있을 거요?"
"왜요? 얼마나 좋은데요. 마법사님도 그렇게 앉아 있지만 말고 저처럼 춤을 춰봐요. 날아갈 것 같단 말이에요."
발레인형은 멈출 수가 없다. 발로 오르가슴을 느끼기 때문이다. 발레인형은 춤을 춘다. 가만히 있으며 느낄 수 없는 그것이 걸으면 느껴지고 춤을 추면 날아오른다. 기분이, 감정이, 정신이. 그래, 당신이 느껴본 적 없는 그것, 오르가슴이 증폭되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쉴 새 없이 걸었다. 발이 지면에 닿을 때마다 발목을 타고 척추를 거쳐 뇌의 송과선까지 신경을 타고 승천하는 그것은, 밀교에서 말하는 차크라를 관통하는 쿤달리니 어쩌고 하는 그것이라고 발레인형은 확신했다. 그러다 심지어 춤을 추게 된 발레인형은, 아예 멈출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쾌감의 극치를 맛보았으니.
"그게 하다 말다 해야 좋은 게 아닌가요? 그렇게 계속 느낄 수가 있어요?"
"마법사님, 술 드셔 보셨죠? 그게 마시다 말다 해야 취기가 오르는 게 아니잖아요? 그냥 쭈욱 달리는 거예요."
"아하, 그렇군요."
발레인형은 춤을 추며 빙글빙글 회전하고 있고 발은 끊임없이 지면으로부터 자극되고 있다. 그리고 영혼은 육체를 떠나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것이다. 발이 땅에 밀착하고 에너지를 흡수할수록 영혼이 몸으로부터 자유를 얻고 쾌감을 만끽하게 된다니. 몸 쓰는 걸 좋아하지 않는 마법사로서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암튼, 뭐 좋다니 멈추라고 하는 게 미안하긴 합니다만, 저기 기다리는 사람들 생각도 좀 해주시죠."
춤추는 발레인형 주위에는 외다리 병정들이 쭈그리고 앉아 홀린 듯 발레인형을 지켜보고 있다. 빙글빙글 회전하는 발레인형의 에너지에 이끌려 모여들었지만, 그들은 다리가 하나뿐이어서 춤을 출 수가 없다. 하나의 다리로는 빙글빙글 회전할 수 없으니까. 회전이란 원심력과 구심력의 균형이 맞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의 다리로는 뱅그르르 돌다가 이내 쓰러질 수밖에 없다. 서로 손을 맞잡고 회전하지 않으면. 손에 손을 잡고 함께 회전하면 언제까지라도 회전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한 번도 춤을 춰 본 적이 없는 이들이라 시작을 할 수가 없다. 몇몇 외다리 병정들이 발레인형을 따라 춤을 춰보려고 애를 써보지만 한두 바퀴를 돌다 넘어지고 마는 것이다.
춤추는 발레인형은 처음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그저 팬클럽이 결성된 줄 알았다. 하지만 자꾸 넘어지고 자빠지는 그들이 점점 가여워 보이기 시작했다.
'저들도 나처럼 춤을 출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 좋은걸.'
발레인형은 마법사에게 어떻게 하면 저들도 자신처럼 춤을 출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것이 오덴세의 한 공원으로 마법사를 소환한 이유였다.
"혼자서는 출 수가 없어요. 외다리로는"
"마법사님은 마법사잖아요. 뭔가 마법이 있지 않을까요?"
"마법이라, 뭐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닌데."
"그게 뭐죠?"
"그 유리구슬 말이에요. 당신 몸을 지탱하고 있는 그 유리구슬, 그걸 깨면 될 수도."
"네? 유리구슬이요? 그럼 저는 균형을 잃고 말 텐데요."
발레인형의 몸에는 9개의 유리구슬이 달려 있다. 빙글빙글 회전하는 발레인형의 몸을 잡아주는 균형추 역할을 하고 있는 9개의 유리구슬. 그것을 깨야 한다고 마법사는 말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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