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회 zzan 이달의 작가상 응모작 -수필] 산당화 그늘

in #steemzzang8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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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당화 그늘


여자가 움직일 때마다 옷자락에 붙은 빨간 스티커가 흔들렸다.
그 빨간색이 봄마다 피는 산당화를 연상하게 한다. 가시나무에 선홍색으로 피는 꽃은 꽃 가운데 노란 꽃술이 있어 더 화려했다. 꽃을 꺾어가고 싶었지만 날카로운 가시 때문에 감히 손을 뻗지 못했다. 화려한 꽃은 멀리서 바라보아야 하는, 접근을 허락하지 않은 채 봄이 지나갔다.

여자는 헤어드라이어를 켜면서 무언가 말을 했는데 소음 때문에 들리지 않았다.
상대가 알아 듣는지 모르는지 여자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러다 왜 대답을 하지 않느냐고 쫓아온다. 하나도 안들린다는 말에 헤어드라이어를 끈다. 친구 딸결혼식에 다녀온 얘기를 한다.

봄이 오는 석촌호수 근처에서 결혼식을 했는데 신랑 얼마나 아름다운지, 양가 집안이 얼마나 대단한지, 음식은 또 얼마나 잘 나왔는지 스포츠 중계를 하는 아나운서처럼 쉬지 않고 말을 이어나가고 마지막에는 언제나 그렇듯 자기 자랑으로 마무리를 했다. 나는 별로 공감가지 않는 얘기에 그냥 간간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응수했다.

머리 손질을 마치고 거울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다시 한 번 자기의 모습을 확인한다. 그리고 오늘도 바쁘다며 스케줄을 줄줄이 꿰어 자랑을 한다. 세상 욕심을 다 내려놓고 봉사하는 낙으로 산다는 여자의 스케줄은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도 한 여성단체나 사회단체의 이름들이었다.

코트에 한쪽 소매를 걸치려고 했다. 아무래도 말을 해줘야 할 것 같았다. 옷자락에 붙은 스티커를 떼어야 할 것 같다고 말을 했다. 여자는 무언가 들키기라도 한 듯 스티커를 떼어 거울에 붙이고 코트를 입고 가방을 들고 나갔다.

여자가 떠나간 자리 잠시 정적이 흘렀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바쁘다고 하는지 알 수 없는 얘기는 정적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렇게 봉사를 낙으로 알고 잠시 여자들과 마음 편하게 수다 한 번 떨 시간도 없다는 사람이었다. 뚜렷이 하는 일도 없었다. 이렇다 할 봉사를 한다는 소리도 못 들었다.

행사 때마다 내빈들과 사진을 찍을 때만 보인다는 여자는 남의 경조사에 열심히 참여하고 하객들 챙기고 대접하는 일에도 열심이었지만 축의금을 낸 적은 없다는 얘기도 들렸다. 어쩌다 시간을 낼 수 없어 축의금을 대신 전달해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전달이 안 된 적도 있다는 얘기도 들렸다.

여자가 거울에 붙이고 간 산당화 꽃망울 같은 스티커가 원망스런 눈길을 보내는 것 같았다. 스티커를 떼어 쓰레기 통에 버린다. 여자의 행적을 지우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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