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 든 • 손
아침마다
책가방 메어주시며
선상님 말씀 잘 들어라
선상님이 아니라 선생님이라고
열 두번을 말 해도
그때뿐인 엄마가 부끄러윘다
친구 엄마들
파마머리에 곱게 화장하고
예쁜 옷 입고 오는데
상복차림에 나무비녀 꽂은 엄마가 부끄러워
김밥도 먹기싫었던 소풍 날
소낙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빗물처럼 주룩주룩 울며
떠는 딸을 보다못해
딸 데리고 먼저 가겠다고
선상님, 선상님 하며 허리를 굽히는 엄마 때문에
일부러 흙탕물을 튀기며 걸었다
그날의 엄마보다 더 나이가 들어
또박 또박 선생님이라고 하면서
엄마의 반만큼도 못따라 가는
부끄러운 나를 발견했다
어머니의 그륵 __ 정일근
어머니는 그륵이라 쓰고 읽으신다.
그륵이 아니라 그릇이 바른 말이지만
어머니에게 그릇은 그륵이다.
물을 담아 오신 어머니의 그륵을 앞에 두고
그륵, 그륵 중얼거려 보면
그륵에 담긴 물이 편안한 수평을 찾고
어머니의 그륵에 담겨졌던 모든 것들이
사람의 체온처럼 따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학교에서 그릇이라 배웠지만
어머니는 인생을 통해 그륵이라 배웠다
그래서 내가 담는 한 그릇의 물과
어머니가 담는 한 그륵의 물은 다르다.
말 하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말과 하나가 되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어머니는 어머니의 삶을 통해 말을 만드셨고
나는 사전을 통해 쉽게 말을 찾았다.
무릇 시인이라면 하찮은 것들의 이름이라도
뜨겁게 살아 있도록 불러주어야 하는데
두툼한 개정판 국어사전을 자랑처럼 옆에 두고
서정시를 쓰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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