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침침한 창작자의 고민

in #sct5 years ago

피곤하다. 눈을 감는다. 주위의 세계와 단절된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다. 멍 하니 아무런 생각도 없는 명상에 잠긴다. 잠시 눈을 감는 것만으로도 편안한 느낌이 든다.
어제 저녁에 책을 읽으면서 잤더니 눈이 침침하다. 나도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눈의 피로가 쉽게 오는 것을 느낀다. 아내는 나한테 루테인이 많이 들어있는 음식을 먹으라고 권한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서 이름을 잘 알지 못하는 채소를 꾸역구역 먹었다. 과연 내 눈이 더 나빠지지는 않을까?

그런데 퇴근해서 집에 와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소파에 누우면 다시 이북 리더기를 눈에 가져가게 된다. 누운 자세에서 글을 보는 것이 더욱 눈을 피로하게 하는 것임을 알지만, 눈이 침침할수록 더 늦기 전에 책이라도 보아서 글쓰기 실력을 높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아직 아내한테는 내가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내는 내가 소파에서 누워 뭘 하는지 잘 모른다. 그저 인터넷 서핑을 즐기거나 쓰잘데기 없는 내용을 뒤적거리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내가 읽고 있는 소설들이 모두 별 의미 없는 시간의 낭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책을 아무리 읽어봤자 막상 글을 쓰려고 하면 한없는 두려움이 앞을 가리고 도저히 내 나름대로의 글을 쓸 수 없다.

유명한 소설가의 창작기법을 모방하려고 하지만, 요즘은 글을 읽어도 내 기억속에 남는 것은 거의 없다. 역시 나이가 문제다. 내 나이쯤에는 기존에 읽고 경험했던 것을 풀어내는 데 주력을 쏟아야지, 새로운 내용을 입력해서 소화시키려고 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자꾸 들어온다. 내가 갖고 있는 것이 얼마 없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고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루었던 독자적인 세계가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세계를 모방하려고 하지 말고, 이미 내 안에 있는 것을 그저 정직하게 펼쳐보이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

내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 세계?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른 사람이 구축한 소설의 세계를 기웃거리기만 하다가 결국 아무런 소설도 쓰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엄습해온다. 결국 지금은 읽는 것보다는 억지로라도 글을 써제끼는 것이 중요하겠다. 그래 내 나이가 이미 50이 가까웠다. 이 나이에 뭘 더 배워서 얼마나 거창한 것을 추가할 수 있을까? 이미 나에게 있는 것이 빈약하다면 그것으로 포기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자신을 정직하게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만 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나는 글을 더 이상 읽지 않고 온전히 "글쓰기"에만 집중한다고 하더라도 한편 두려운 것이 있다. 그것은 내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내가 경험했던 것들은 평범한다 못해 진부하다. 나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재담가는 못 된다. 다들 나와 얘기를 나눌 때에는 따분해한다. 말을 글로 전환했다고 해서 얼마나 사람들을 즐기게 할까?

일리야드와 오딧세이라고 하는 소설은 세계 최고의 소설이다. 이 책들을 쓴 소설가가 기존의 작가를 읽고 모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해 들은 이야기와 자신의 머릿속에서 창작을 바라는 이미지를 그저 언어로 풀이한 것에 불과했지만, 역시 예술의 최고 경지에 올랐다. 나한테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나는 눈을 감으면 깊이 생각한다. 내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이야기에 집중하려고 한다. 내 무의식의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는 놀라운 에너지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낀다. 아. 나는 여태껏 알지 못했던 마음의 심연에 모든 인류가 공통적으로 경험한 엄청난 스토리를 응축하고 있었다. 나는 이제 그것을 끄집어내기만 하면 된다. 나는 나의 독특한 경험이 아니라, 모든 인류가 겪는 보편적인 경험을 이미 하고 있었다. 나의 특수성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인류의 보편성으로 녹여지는 재료에 불과했다.

앞으로 펼쳐진 수많은 이야기는 결국 인간이 주어진 조건에서 필연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 경로를 추적하기만 하는 작업에 불과하다. 그래 나는 여자가 될 수도 있고, 어린아이도 늙은이도 될 수 있다. 사장이나 하인도 될 수 있다. 선량한 사람도, 흉악한 죄인도.. 무엇이든 다 될 수 있다.

눈을 침침하게 하면서 타인의 글을 읽을 것이 아니라, 지금 나에게 주어지는 스토리를 그저 풀어낼 통찰력만 가지면 되었다. 그 통찰력은 이제 글을 만들어내는 연습으로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연습의 켜가 쌓이면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이며 내가 알지 못하는 환상의 세계로 나를 이끌어갈 테지..

손가락 연습을 위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자판을 두드리기로 결심했다. 손가락이 아플 때 소설을 읽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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